그의 삶과 죽음을 통해 한국 사회가 거듭나길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선택한 죽음의 방식은 자살이었다. 노 전 대통령의 갑작스런 죽음은 노 전 대통령을 압박해 정치적·도덕적으로 파산 상태로 만든 검찰과 '조·중·동' 등의 비대(肥大) 신문들로서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을 것이다.

놀란 것은 검찰과 비대 신문뿐이 아니었을 것이다. 검찰 뒤에 버티고 있는 청와대도 적잖이 당황했을 것이다. 청와대는 노 전 대통령에 대한 검찰의 수사가 검찰의 독립적인 판단과 결정에 의해 이뤄지고 있다고 누차 강조했지만 대한민국 검찰에 그런 기개와 강단이 있다고 생각하는 국민들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청와대와 검찰, 비대 신문들이 펼친 공동 작전은 거의 성공했다. 그들의 계획대로 유일한 근심거리이던 친노 세력은 정치적으로 완전히 거세당했을 뿐만 아니라 노 전 대통령은 재기불능의 정치적·도덕적 상처를 입었다.

그러나 결정적인 순간에 청와대와 검찰, 비대 신문들은 계산을 잘못했다. 그들은 노 전 대통령에 대해 주류 사회가 지니고 있는 사적인 원한이라고 밖에는 해석할 수 없는 이유로 전직, 그것도 직전 대통령과 가족들의 인격을 사실상 살해했다.

설령 백보를 양보하여 노 전 대통령과 그 가족들이 윤리적 비난을 넘어선 사법 처벌을 받을 행위를 했다 해도 노 전 대통령에게 퍼부어진 정치적·윤리적·사법적 매질은 민주공화국 아니 문명사회에서 일어나서는 안 될 일이었다.

물론 한국 사회의 주류는 노 전 대통령이 자살을 선택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도 못했을 것이다. 그만한 일로 자살을 결행한다는 것은 파렴치함과 뻔뻔함이 뼛속 깊이 체화된 한국 사회 주류에게는 상상 밖에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한국 사회 주류에게는 없는 것이 노무현에게는 있었다. 그중 하나가 부끄러움을 아는 능력이었다. 적어도 노무현은 부끄러움이 무언지를 아는 사람이었다. 비록 부인이 받았고 그 사실을 나중에 알았다 해도 그가 국민들과 지지자들에게 그리고 무엇보다 스스로에게 느낀 부끄러움은 죽음에 이를 정도로 깊고 큰 것이었다.

얼마 전 그는 자신의 홈페이지 '사람 사는 세상'에 진한 회한을 담아 '좋은 세상을 만들고 싶었지만 세상은 별로 변한 것이 없다'고 고백한 바 있다. '반칙과 특권이 없는 세상', '상식이 통하는 세상'을 만들고자 자신의 모든 것을 걸었던 그로서는 자신이 이룬 정치적 업적이 모조리 훼손당하는 현실을 견디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런 마당에 드러난 윤리적 흠결과 인격 살해에 이른 검찰과 언론의 공격은 그의 자아가 견딜 수 있는 임계점을 넘어서게 만들었다. 철학과 가치, 정책을 둘러싸고 벌이는 싸움을 그는 즐겼고 그런 싸움에서 패배한 적이 별로 없을 만큼 강했지만, 그가 지닌 윤리적 염결성은 유리처럼 깨어지기 쉬운 것이어서 결국 그를 죽음으로 몰고 갔다.

대한민국은 일찍이 그런 대통령을 가진 적이 없다. 쿠데타로 헌정을 유린하고 대한민국을 동물의 왕국으로 만든, 비정상성이 일상을 지배하게 만든 박정희가 자신의 행위에 부끄러움을 느꼈다는 말을 들어본 기억이 없다.

권력에 눈이 어두워 제 동포들의 무고한 목숨을 숱하게 빼앗고 재벌 총수들을 겁박해 수천 억 원을 치부하고도 만고에 떳떳한 전두환이나, 한반도를 전쟁 일보 직전의 상황으로 만들고 외환 위기로 나라를 파산하게 만들고도 태연한 얼굴로 주제넘은 훈수를 일삼는 김영삼과 노무현을 비교하는 건 그 자체로 죄악이다. 부끄러움을 느끼지 못하는 능력을 측정한다면 대한민국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힐 MB를 노무현에게 견줄 텐가.

비단 노무현은 전·현직 대통령과의 비교에서만 도덕적 우위를 점하는 것이 아니다. 자신들이 가진 부동산과 펀드를 불려 줄 적임자로 MB를 선택한 국민들, 뉴타운 공약에 현혹돼 한나라당 후보들에게 몰표를 던진 유권자들, 자신과 고작해야 가족밖에 모르는 사람들, 박정희교 신도들이 우글거리는 대한민국에서 노무현에 앞설 윤리적 감수성과 도덕성을 갖춘 국민은 찾아보기 어렵다.

노무현은 정의를 향해 힘겹게 나아갔고 부끄러움을 이기지 못해 죽었다. 그의 삶과 죽음을 통해 국민들이 염치를 알고 정의에 눈 뜰 수 있게 될까. 꼭 그리 되었으면 좋겠다.

이태경 / 토지정의시민연대 사무처장

<기사 제공: 뉴스앤조이 http://www.newsnjoy.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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