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하는 시 - 박춘식]

▲ 하늘 (이미지 출처 = Pixabay)

하늘빛 추억

- 닐숨 박춘식


한창 신명 나게 강의하는데 - 몇몇 학생이 수군거린다 - 뚝 멈추고 창 너머 하늘을 바라본다 - 쉿 - 조용 - 교수님이 야단치시려나 - 하고 긴장하는 그 순간 - 칠판에 ‘하늘’을 크게 적는다 - 하늘이라고 하면 생각나는 것을 말해 보세요 - 희망 멀다 그리움 잠자리 고향 구름 비행기 하느님 엄마 기다림 눈물 할머니 기도 등등등 - 칠판 가득하게 적는다 - 앞에 앉은 한 여학생이 노트에 열심히 베끼는데 - 궁금하여 이유를 묻는다 - 백 개 넘는 단어를 잘 이으면 시가 될 것 같아요 - 멋있고 놀라운 생각입니다 라고 그 여학생을 칭찬해 주었던 - 오래전의 생생한 추억 -

그때 그 여학생에게 하늘빛 시인이 되라고
우리 모두 큰 박수로 격려하자는 말을 왜 못했던고
따뜻한 추억을 왜 아름다운 추억으로 만들지 못하였던고
깊은 자책으로 십자고상을 바라본다.
만약 성당에서 강연할 때 ‘성호경’이란 말에 무슨 생각이 나는지
여쭈어 보면 ‘밥상’ 단어가 밥풀처럼 툭툭 튀어나오겠지

그 여학생이 지금 시를 쓰고 있다면 얼마나 놀라울까
그 추억이 아련한 아픔으로 다가온다



<출처> 닐숨 박춘식 미발표 시 (2017년 7월 24일 월요일)

시간은 그저 단순하게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시간은, 어떤 사건을 어느 공간 안에서 만들면서 여러 가지 경험을 우리 뇌세포에 심어 주는 것이 아닐까 그리고 숱한 경험이나 기억을 소중하게 이어 주면서 우리 삶을 우아하게 만들어 가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하느님을 믿고 하느님과 함께 살아가야 하는 우리는 하느님에 대한 추억을 많이 많이 가져야 하는데, 과연 그럴까, 조금 의아스럽습니다. 성직자와 수도자는 신자들에게 하느님 기억을 아주 많이 만들어 주어야 하는 사람들인데, 과연 그렇게 열심히 노력하는지 조금 궁금합니다. 지금이라도 가정이나 성당에서 신앙적 기억(추억)을 많이 만들도록 노력해 보시기를 권하고 싶습니다. 하느님에 대한 추억은 그 어떤 추억보다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느님에 대한 추억은 그 즉시 하느님의 손을 새롭게 잡는 은혜이기 때문입니다. 성모님은 평생 가브리엘 대천사의 추억(말씀)을 하루도 생각하지 않는 날이 없었다고 저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닐숨 박춘식
1938년 경북 칠곡 출생
시집 ‘어머니 하느님’ 상재로 2008년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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