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 자정이 넘어 봉하마을에 갔다. 경남 김해시 진영읍 본산리 봉하마을. 이제는 이 세상에서 사라진 제16대 대통령 노무현의 고향이자 영욕의 삶을 마감한 장소이다. 자정 넘어 처음 찾아가는 길이었지만 어딘지 물어보지 않아도 멀리서부터 길이 밀리고 있었다. 혹시나 번잡스러울까봐 자정 넘은 시간을 택했지만 예상은 초반부터 보기 좋게 빗나가고 있었다. ‘봉하궁’이라 보수언론이 부르는 노대통령의 집이 있는 마을은 본산논공단지라는 중소공장들이 밀집한 지역을 거쳐 가야 했다.

낮에 폭우 같은 소낙비가 내렸다고 하지만 도로 곳곳에 물웅덩이가 있었고, 덧칠한 포장도로는 요철이 심했다. ‘궁’으로 가기에는 재미없는 길이었다. 그런 길을, 멀리서부터 사람들은 차에서 내려 끊임없이 말없이 걸어갔다. 길가에는 그를 추모하는 현수막과 함께 촛불이 타고 있었다. 아니 스스로 몸을 녹여 세상을 밝히고 있었다. 누군가 그의 마지막 목소리가 생각났는지 담배에 불을 붙여 촛불 곁에 놓아두었다. 담배는 오랫동안 소리 없이 타들어갔다. 마을 삼거리 이정표가 나타났다. 오른쪽으로 가면 생가이고, 왼쪽으로 가면 봉화산이라는 화살표와 함께 불이문(不二門)이라 새겨져 있었다. 마치 그가 태어난 자리와 그가 죽은 자리를 가리키는 엇갈린 화살표와 함께 그것이 결코 둘이 아니라는 선문답을 말하고 있는 듯했다.

마을로 들어서자 마을회관에 “우리는 당신을 영원히 기억할 것입니다”란 큰 현수막이 걸려있었다. 건물 안에는 노대통령과 권양숙여사의 사진과 함께 그의 상징이었던 지난 대선 때의 돼지저금통에 관한 포스터가 붙어 있었다. 당시의 노무현 후보가 생각났다. 그리웠다. 한 때 그는 모두는 아니었을 지라도 많은 이의 희망이며 시대의 상징이었다. 그와 우리는 그렇게 한 시절을 살았다.

빈소가 눈에 들어왔다. 자정이 넘은 시간에도 20명씩 줄을 서서 문상을 할 정도로 사람들의 끝은 보이지 않았다. 이날 하루만도 10여만 명이 넘는 사람이 다녀갔다고 했다. 제배를 올리고 분향을 해야 하지만 흰 국화꽃 한 송이의 헌화와 목례로서 그에게 인사해야 하는 소박함에 죄송했지만 그는 영정 사진 속에서 말없이 보고만 있었다. 그저 “다 이해 한다”고 말하듯이... 빈소 옆에 노대통령과 평생 동지였던 권양숙여사의 캐릭터를 뵙기가 정말 미안하고 안쓰러웠다. 혼자서 보수언론과 드악한 정치세력과 맞서 외롭게 싸우던 그를 지켜주지 못한 우리의 잘못이 크다.

어둠속에 앉아 길을 떠나는 노대통령의 영정사진을 멍하니 본다. 어딘지 알 수 없는 길, 어디서 시작해서 어떻게 끝이 나는 지 종잡을 수 없는 길을 봉화산 부엉이바위에서 빈 몸 날려 빈손으로 길을 떠나는 사람. 우린 그를 바보 노무현이라 불렀다. 아, 슬픈 날의 시작이다.

저기 사람이 가네

가시꽃이 흐드러지게 핀
봉화산 아래에서
사람들은 눈물을 흘렸다
부엉이가 사라진 새벽
깎아지른 바위 끝에서
한 사람이 몸을 날렸다
공중에 뜬 그의 외로움과 절망의 끝이
아예 체기가 되어 끝내 내려가지 않는다

초를 태워 몸을 녹이고
담배를 태워 한을 사른들
그의 탄식
그의 애달픔
그의 흐느낌을
나의 탄식
나의 애달픔
나의 흐느낌은 감당해내지 못한다

청컨대,
그의 슬픔과 나의 슬픔이
넘치고 넘쳐 어즈버
새소리이기를
노래 소리이기를

부엉이가 밤 이슥해 눈을 뜬다
저기 사람이 지나간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

저작권자 ©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