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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과 소통하는 도시[시사비평 - 박병상]

지독했던 가뭄 뒤의 단비는 순식간 장마로 이어졌다. 이런 날씨에 농작물은 잘 버틸지 모르겠는데, 하천의 생명들은 위기를 맞았다. 가뭄을 이기려 농부는 물을 찾아 작은 하천 바닥을 파헤쳤는데, 국지 호우로 이어진 이번 장마는 바싹 말랐던 강바닥을 휩쓸지 않았나. 강줄기가 제 모습을 찾으면 민물고기도 안정을 되찾을까? 확신하기 어렵다. 이번 장마와 관계없이 우리의 크고 작은 하천은 대부분 썩어 가는 4대강의 본류와 이어지지 않았나.

장마가 끝나지 않았건만 근린공원에서 매미들이 운다. 장마가 곧 마무리될 거라는 듯 다부지게 운다. 혹독한 가뭄과 예년에 없던 국지성 장마가 들이닥쳐도 계절은 어김없이 변한다. 그걸 매미는 예측하는데 도시에서 유난히 목청이 높다. 밤에도 우는 건 물론이고 비가 내려도 멈추지 않는다. 그만큼 도시에 나무가 적고 불빛이 강하기 때문일까? 장마 뒤 무더위가 한풀 꺾이면 귀뚜라미가 바통을 잇겠지.

자연의 소리는 사람에게 안정감을 선사한다. 어려서 자연에서 뒹굴던 기억은 나이 들어 상상력을 북돋고 이웃을 배려하는 마음을 확장한다. 생물이 다채롭게 어우러지는 자연에서 사람도 태어났기 때문일 텐데, 도시에서 태어나 도시를 벗어나지 못한 요즘 어린이들은 자연을 거의 모른다. 자동차 소음에 시달리고 텔레비전 스피커와 휴대폰과 이어진 이어폰에 매달릴지언정 자연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못했다. 도시에 오래 산 성인의 사정도 비슷하다. 매미가 시끄럽다는 민원은 아파트 완충녹지의 나무를 밑동까지 잘라 내게 만들지 않았나.

도시의 매미는 무던하다. 아니 대안이 없는 걸까? 매미 유충을 끌어안았던 나무들을 베어 낸 자리에 일제히 외래 수종을 심었지만 아파트 단지의 매미 소리는 진정되지 않았다. 다행이라 여겼는데, 언젠가부터 장마철에 맹꽁이가 운다. 올해도 어김없는데, 어디에서 왔을까? 사람들이 잘 다니지 않는 녹지의 후미진 곳에 빗물이 고이나 본데, 그 빗물이 마르기 전, 보통 보름 정도의 기간이면 맹꽁이는 알에서 올챙이로, 올챙이에서 성체로 변태해 주변의 녹지로 퍼질 것이다.

   
▲ 맹꽁이 (이미지 출처 = flickr)

혹독했던 가뭄은 국지성 장마가 만든 물구덩이를 금방 마르게 했는지 빗소리에 장단 맞추며 며칠 울던 맹꽁이가 다시 조용해졌다. 짝을 찾은 걸까? 알 하나하나가 동동 떠서 빗물을 따라 흐르다 웅덩이에 멈추며 올챙이로 서둘러 변하는 맹꽁이는 올여름에 나타난 국지성 장마에 이은 뙤약볕에 속수무책일지 모른다. 물웅덩이가 금세 마를 테니까. 그래서 그런지 억수 같은 빗속에 참으로 우렁차게 울었다. 어떤 때는 낮에도 울었다. 오랜만에 자연의 소리 속에서 단잠을 이룰 수 있었는데, 이상타. 맹꽁이가 울던 완충녹지에서 석유 냄새가 난다.

맹꽁이 소리가 시끄럽다고 누군가 석유를 뿌린 건지 알 수 없지만 분명한 건 이후 맹꽁이가 울지 않는다는 점인데, 장마는 소강 상태에 접어들었고 매미는 벌써부터 목청을 가다듬었다. 매미는 온전할 수 있으려나. 어떤 소음 전문가는 매미 소리를 자동차 소음과 비교해 측정 수치를 들먹이던데, 이른 봄이면 짝을 찾아 나무 사이를 바삐 오고 가며 울어 대는 까치는 인천의 한 아파트 단지 녹지에서 수난을 당했다. 시끄럽다는 민원으로 전봇대처럼 나무 중간 부분을 모조리 잘라 낸 게 아닌가.

터전을 잃은 까치들은 근린공원으로 이어지는 녹지에서 우왕좌왕하며 길을 하얗게 만들었다. 그 길을 지나는 이들은 까치 똥을 조심해야 하는데, 그 옆 아파트 단지에서 생각하기 끔찍한 사건이 발생했다. 학교를 일찌감치 그만둔 16살 소녀가 초등학생을 유인해 살해하고 신체의 일부를 떼어 내 인터넷에서 만난 선배 언니에게 전한 사건이었다. 유복한 집안에서 자란 소녀는 지능이 비상했다는데 자연의 혜택에서 멀었을지 모른다.

   
▲ 자연과 소통할 수 있는 도시에서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 보자. (이미지 출처 = Pixabay)

초등학생 살해 사건이 까치가 쉬던 나무를 잘라 낸 행위와 뚜렷한 인과관계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자연을 잃은 사람은 자연과 가깝게 사는 사람에 비해 이웃과 소통하기 어려워하고 참을성이 약한 건 분명해 보인다. 대도시 고층 건물의 후미진 골목에서 낯모르는 이와 눈이 마주치면 얼른 피하지만 녹음이 풍성한 산에서 눈을 마주하면 반갑게 인사하며 지나간다. 녹지가 풍부한 도시는 그렇지 않은 도시보다 범죄율이 낮다. 친구보다 휴대폰이나 인터넷에 마음을 빼앗기는 청춘들은 맹꽁이와 매미 소리를 시끄러워 할까?

이문재 시인은 최근 <경향신문> 칼럼에서 별이 총총 빛나는 밤하늘을 지저분하다고 투덜대는 유치원생 소식에 안타까워했는데, 우리는 지금 자연에서 너무 멀리 떨어진 게 아닐까? 속도와 목표만 숭상되는 회색 도시에서 성공을 위해 “친구가 적”인 세상을 만들어 놓은 건 아닐까? 도시에서 생활 속의 감성을 되살려 인간과 인간, 인간과 자연, 그리고 인간과 기계에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 보자고 그 시인은 제안했는데 방법은 무엇일까? 자연과 소통할 수 있는 도시가 아닐까?

자동차가 늘어나면 아무리 도로를 늘려도 소용없다. 자동차 속도에 일상을 맞추는 시민들은 막히는 도로에서 짜증을 내지만 대중교통과 걷기에 리듬을 맞추면 생활에 한결 여유가 생긴다. 5분 걸어 다정한 이웃을 만날 수 있는 녹지가 확보된 도시에서 범죄는 크게 줄어들 게 분명하다. 유럽의 유서 깊은 도시의 모습이 그렇다. 온갖 나무가 울창하고 물고기가 노는 습지가 있는 녹지를 자주 찾는 시민은 맹꽁이와 까치를 싫어할 리 없다. 반짝이는 별을 지저분하게 생각할 리 없다. 범죄가 난무하는 회색도시에서 시급한 일은 무엇일까? 더 높은 빌딩과 더 빠른 도로일까?

 
 
박병상 

인천 도시생태, 환경연구소 소장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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