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글이의 과학다반사]

'디지털'(digital) 하면 많은 이들은 첨단, 컴퓨터 그리고 아날로그의 반대 개념으로 떠올린다. 디지털 시대를 가능하게 했던 것은 무엇이며 무엇이 중요하며, 앞으로 어떤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지 생각해 보기 위해서는 학교 시절 왜 배웠는지 잘 모르는 수학에 대해서 생각해 보려고 한다.

컴퓨터 데이터를 설명하기 전에 항상 두 가지 문제를 물어본다. 첫 번째 문제는 열 손가락만으로 표시할 수 있는 최대의 숫자가 몇인지 물어본다. 기억하거나 기록하지 않고 손가락만으로 1. 하나의 수는 유일한 표현 방법이 있어야 하고 2. 다른 사람이 보아도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문제를 들으면 익숙하게 1부터 10까지 세어 보기도 하고 손가락 마디 구분을 이용하기도 한다. 그러나 열 손가락을 이진법으로 이용하면 1111111111 (2)  = 2047 (10) 까지 표현할 수 있다. 두번째 문제는 서울의 지하철의 차량번호를 2호선의 첫 차인 경우 20001라 붙이고 순서대로 20002, 20003.... 식으로 부여한다고 할 때 지하철 10호선이 개통되면 10호선 열차의 차량번호는 어떻게 붙일 것인가 물어본다. 많은 이들은 간단하게 100001로 한다고 한다. 그러나 다른 방법으로 A0001로 붙일 수도 있다.

숫자의 체계를 고려할 때 한 자릿수에 몇 개의 기호를 쓸 것인지 정한 약속을 진법이라 한다. 10개의 기호를 사용해서 10이 되면 자릿수를 늘리기로 약속한 것을 십진법이라 하고 두 개의 기호만 사용해서 2가 되면 자릿수를 올리기로 한 약속을 이진법(binary)이라고 부른다. 0부터 9까지의 숫자들은 십진법을 편하게 쓰기 위해 약속된 기호다. 따라서 익숙한 숫자 대신 알파벳이나 특정 기호들을 대신 쓰고 약속을 해도 문제가 없다. 자릿수는 영어로 digit이다. 그리고 digit의 어원인 라틴어 digitus는 손가락이나 발가락을 나타낸다. 손가락은 구부리거나 펴는 것 말고 표현할 수 없다. 만약 외계인이 있고 손가락이 열두 개이고 구부리고 펴고 뒤로 젖힐 수도 있다면 외계인이 표현할 수 있는 최대의 숫자는 몇인지 생각해 보아도 좋을 것이다.

디지털 시대는 인간의 자료를 저장할 수 있는 방법이 변화한 것이다. 책이나 편지와 같은 기록의 방법에서 컴퓨터가 인식하고 관리할 수 있는 저장 방법이 생긴 것이다. 데이터를 저장할 수 있는 가장 큰 변화의 주인공이 바로 이진법이다. 인간의 자료는 세 가지 특징을 가져야 한다. 1. 표현되어야 하고 2. 전달되어야 하고 3. 이해되어야 한다. 첫 번째 문제의 두 가지 조건 중 전달만 제외하고 동일하다. 언어나 상징을 컴퓨터가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은 쉽지 않다. 아무리 숫자 0부터 9까지 발명을 하고 자랑을 해도 컴퓨터는 알아들을 수 없기 때문이다. 다행이지만 자연은 ‘존재하지 않는다’와 ‘존재한다’의 두 가지 상태는 구별된다. 반도체 산업을 비롯한 다양한 산업 발전을 통해서 ‘존재하지 않는다’와 ‘존재한다’를 구별하고 심지어 제어할 수 있는 방법까지 개발을 하고 이진법을 저장 방법으로 사용할 수 있었다.

▲ 이진법은 데이터를 저장하는 좋은 방법이다. (이미지 출처 = Pixabay)

디지털 시대에 이진법이 중요한 이유는 이진법만이 데이터를 표현하고 전달하고 공통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을 구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앞서 존재하지 않는다는 전기가 흐르지 않을 때, 존재한다는 전기가 흐른다로 생각을 한다면 반도체를 통해서 인간이 원하는 데이터를 이진법으로 표현하고 저장도 가능하게 된다. 디지털 시대를 가능하게 했던 것은 전기가 흐른다 안 흐른다를 이진법으로 표현하고 이 표현을 인간이 알 수 있는 형태로 표현하는 컴퓨터를 만들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인간이 만든 언어, 기호 등을 이진법으로 이루어진 데이터로 표현을 하도록 약속을 하면 된다. 예를 들어 알파벳 A는 컴퓨터에서 01000001로 약속한다고 정하고 인간이 컴퓨터를 통해 A를 입력하면 컴퓨터는 이를 약속된 이진법으로 저장하면 된다.

이진법은 데이터를 저장하는 데 장점을 가지지만 인간이 이해하기에는 자릿수가 너무 많다. 그래서 프로그래밍이나 데이터 표시를 위해서는 16진법을 사용한다. 16진법은 한 자릿수에 16개의 기호를 사용하는 것이다. 두 번째 문제에서 알 수 있듯이 9 다음에 알파벳 A-F를 사용해서 16개의 기호로 표시한다. 16진법은 이진법과 직관적으로 변환되기에 사용된다. 예를 들어 17FB(16)라는 16진법은 각 자릿수를 이진법으로 표시해서 나열하면 된다. 17FB(16) = 1(16)7(16)F(16)B(16) = 0001(2)0111(2)1111(2)1011(2)다. 컴퓨터 해상도나 메모리 용량 등을 보면 1024나 256 등과 같은 숫자가 많은 이유도 이진법과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이진법이 데이터를 저장하는 데 좋은 방법임은 이미 디지털 시대가 증명해 주고 있다. 그런데 이진법만이 유일하게 데이터를 저장할 수 있는 방법일까. 데이터를 표현하고 전달하고 이해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을 생각해 본다. 전기가 흐른다/흐르지 않는다의 두 가지 상태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더 많은 상태가 존재한다면, 한 자리에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이 0과 1이 아닌 더 많은 기호가 가능하다면 이진법이 아니라도 가능할 것이다. 생명체 안에 있는 DNA를 생각할 수 있다. DNA는 생명의 유전정보를 가지고 있는 유기 화합물이다. A(아데닌), T(티민), G(구아닌), C(사이토신) 의 4가지 염기 순서와 배치에 따라서 인간의 생명활동과 질병에 영향을 주고 궁극적으로 유전정보를 다음 세대에 전달해 준다. 4가지 염기들을 4진법에 사용되는 기호라고 생각하면 DNA는 4진법으로 데이터를 저장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다.

몇 가지 조건이 있다. DNA를 우리가 원하는 순서대로 저장을 하고 편집도 가능하고 이를 전달하고 해석할 수 있어야 데이터를 저장할 수 있다. DNA 염기 서열을 분석하는 것은 많이 발전되었고 원하는 순서대로 염기서열을 만드는 것도 가능하다. 최근에는 편집하는 방법도 어느 정도 가능하게 되었고 DNA를 데이터 저장 방법으로 사용하는 연구도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만약 모든 것이 기술적으로 가능하다면 데이터를 세균에 저장하고 DNA 복제도 하고 전달도 가능해진다. 생명체 안에서 유기적 데이터 저장이 가능하게 된다. 이런 미래에는 컴퓨터의 형태나 기술도 전혀 달라질 것이다. (참고 기사 : 영문 https://goo.gl/pKJ97o 한글 https://goo.gl/V3knKg)

"그리고 남은 빵 조각과 물고기를 모으니 열두 광주리에 가득 찼다."(마르 6,43)

성경에는 열둘에 대한 언급이 많은 것을 볼 수 있다. 삶에 큰 영향을 미치는 주기와 진법은 밀접한 관계가 있다. 예수님의 열두 제자가 정확하게 열두 명이 있었던 것인지 아니면 십이진법의 영향으로 꽤 많은 제자의 수를 대표한 것은 아닐까 생각하기도 한다. 어떤 시대에도 인간의 기록이나 데이터에 대한 가치는 항상 중요했다. 지금은 디지털 시대에 살고 있기에 이진법으로 만들어진 디지털 데이터가 중요하다. 그러나 어떤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데이터 저장 방법이 만들어질지 모르지만 항상 모든 기술의 기초는 수학이다.

 
 
몽글이
데이터를 통해 세상을 이해하고
컴퓨터를 통해 통찰하고 싶은
과학을 사랑하는

곰 닮은 과학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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