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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물과 쇼핑몰[박병규 신부] 7월 16일(연중 제15주일) 마태 13,1-23

씨뿌리는 사람의 비유는 예수의 경제관, 혹은 사회관의 단면을 살펴볼 수 있는 소중한 가르침이다.

씨가 뿌려지는 곳이 다양한 만큼 다양한 삶은 우리에게 주어져 있다. 다양한 삶은 저마다의 능력과 신념이 자유롭게 펼쳐질 사회여야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 다양한 삶이 경쟁의 틀을 벗어나지 않는 한, 경쟁은 획일화된 사회를 만들고 획일화된 사회는 차별과 소외 현상을 반복적으로 보여 줄 수밖에 없다. 어쩌면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를 통해서 우린, 보다 많은 열매, 좋은 열매를 맺어야 하겠다며 또 다른 경쟁 모드로 우리 삶의 자세를 곧추세우려 할지 모른다. 다른 삶에 대한 걱정과 배려는 여유있는 자들의 기부나 봉사, 혹은 영웅들의 희생으로 돌린 채.

이 글을 쓰는 나는 캄보디아에 있다. 몇 개 우물을 파 준 것으로 과한 환영과 쑥스러운 대접을 받고 있다. 가난한 이들을 위해 비교우위적인 부를 나누는 것이 찬사받아야 하는 현실 앞에서 나는 얼마간의 분노와 얼마간의 슬픔을 느낀다.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생명은 그 자체로 하느님의 작품이며 사랑받아야 할 존재라는 사변적 이념은 캄보디아의 시골길을 지나며 산산이 부서진다. 분배정의니, 기부니, 봉사활동이니 하는 정연한 가르침들은 거대한 현실의 불평등 앞에 속수무책으로 무너져 내린다. 그럼에도 이쪽 저쪽 시골길의 먼지를 마다 않고 다니시는 수녀님들의 노고는 그런 불평등을 어떻게든 극복하려는 전투로 느껴져 성스럽기까지 하다.

   
▲ 캄보디아에 파 준 우물. (사진 제공 = 박병규)
수녀님들의 전투는 개인의 희생이나 수도자로서의 가난, 그 가난을 통한 연대의 삶에 대한 찬사나 존경으로 치부되어선 안 된다. 수녀님들의 고생이야 두말하면 잔소리겠지만 그 고생이 개인에 대한 문제로 고착되어선 안 되기 때문이다. 수녀님들이 벌이는 전투는 사회적인 것이다. 캄보디아 수도 프놈펜엔 거대한 쇼핑몰이 있다. 한국의 그 어떤 쇼핑몰에도 뒤지지 않는 화려함과 거대함을 지닌 프놈펜 쇼핑몰은 우물 몇 개 파 준 것으로 고마워하는 이들에겐 다른 세상이다.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하나의 나라에 극단의 두 세상이 존재함으로 캄보디아 사회는 놀랍게도 하나가 된다. 더 돈을 벌고, 더 성공하고, 더 잘살고 싶은 욕망은 프놈펜 쇼핑몰로 향하게 한다. 사회적 차별과 소외는 쇼핑몰에 들어가야 하느냐, 마느냐의 문제로 귀결되고, 쇼핑몰은 모든 사회적 삶의 기준이 된다. 그 기준에 부합하지 못한 채 뒤쳐지기만 하는 사람들의 삶은 철저히 소거된다.

씨가 좋은 열매를 맺어야 한다는 가르침은 개인적 문제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 씨 뿌리는 사람과 좋은 땅과의 관계와 만남이라는 사회적 문제다. 사회의 경쟁이나 권력에의 집착이 만들어 낸 계급 격차와 차별이 있는 한, 좋은 열매는 기대하기 힘들다. 예수가 비유로 말하고 싶은 것은 개인의 노력이나 희생, 혹은 영웅적 삶의 준거가 아니다. 말씀을 듣고 깨닫는 열린 마음과 관계 지향적 삶에 대한 사회적 연대다. 사회의 주류에 자의든 타의든 따라가지 못하면 죽는다는 현실에 대한 획일적 세뇌와 집착이 좋은 열매를 맺을 가능성을 애시당초 차단한다. 부자든 가난한 이든 현실 논리에 대한 과도한 합리화와 정당화에 모두가 사로잡혀 있는 한, 시골에서 개, 돼지처럼 사는 것과 화려한 쇼핑몰을 끼고 사는 건, 실은 하나다. 하루 벌어 하루 먹는 삶에 지쳐 가는 민중이 재벌만을 챙기는 권력에 부복하고 그 재벌의 삶을 갈망하는 것과, 어떻게든 좋은 열매를 많이 맺어 지긋지긋한 가난에서 하루빨리 벗어나고자 하는 것이 하나이듯 말이다.

수녀님들은 배불리 먹고 사는 삶을 위해 캄보디아에 사시는 게 아니다. 획일화된 삶의 기준에서 소거된 이들을 위해 수녀님들 스스로가 사회적 경쟁과 그로 인한 사회적 차별에서 해방되셨다. 그 해방의 길은 실은 간단하고 쉬운 것이다. 캄보디아의 한 수녀님은 얼마 전부터 씻고 먹는 데 세제를 쓰지 않는다고 쑥스럽게 말씀하신다. 환경을 위해서란다. 하루 살고 먹고 자는 데, 우린 얼마만큼 타존재를 생각하는지.... 그 소박한 생각이 세상의 다양한 삶을 위한 최대한의 배려일 수 있겠다는 생각으로 다시 나는 한국을 향한다. 좋은 열매를 맺고 안 맺고는 ‘나만 사는 게 아니다’ 라는 생각이 사회 안에서 공유될 때 가능하다.

 
 

박병규 신부(요한 보스코)

대구대교구 성서사도직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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