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영식의 포토에세이]

▲ 1969년, 고리에서 집단 이주했던 골매 마을은 사라졌다. 핵발전소 때문에 또 다시 신암 마을로 집단 이주를 한 것이다. 초등학교 3학년 때 부모님 손에 이끌려 골매 마을로 이주했던 최성근 씨는 지금도 골매 마을에서 밭농사를 하며 생활하고 있다. 최성근 씨가 47년 동안 살았던 그의 허물어진 집터에서 나를 바라보고 있다. ⓒ장영식

2017년 현재 골매 마을은 철거되고 사라졌다. 골매 마을 주민들의 집단 이주도 끝났다. 고리 마을에서 집단 이주했던 40세대 중에 14가구는 이주보상비를 다른 곳에 쓰거나, 돈이 모자라 집도 못 짓고 흩어졌다. 골매 마을에 이주한 26가구 가운데 어업에 종사하지 않던 6가구는 신고리 핵발전소 3, 4호기가 들어선다는 계획이 발표된 뒤 마을을 떠났다. 남아 있던 20가구 가운데 2가구는 개별 이주를 하였고, 18가구가 신암 마을로 다시 집단 이주했다.

골매 마을에서 부모님을 모시고 살았던 최성근 씨(57)는 초등학교 3학년 때, 고리에서 골매 마을로 집단 이주를 와야 했다. 때문에 길천초등학교에서 서생초등학교로 전학했다. 47년이 지난 뒤, 그의 집은 신고리 핵발전소 5, 6호기 건설 부지로 편입되어 사라지고 집터만 남았다. 모두들 신암 마을로 떠났지만, 그는 아직도 골매 마을에서 밭농사를 일구고 있다. 한때는 고리한수원 통근 버스를 운전하기도 했지만, 골매 마을로 돌아와 주낙 등으로 생업에 충실했다. 골매 마을에서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 신암 마을로 이주하는 집은 장자의 몫이었다. 그는 신고리 핵발전소 주변에서 혼자 살고 있다. 그는 찬핵도 탈핵도 아니다. 찬핵이 무엇이지 탈핵이 무엇인지 모른다. 그가 알고 있는 것은 지금도 왜 고리에서 쫓겨나야 했고, 왜 다시 골매 마을에서 쫓겨나야 했는지를 모른다는 것을 알고 있을 뿐이다.

그는 지금도 골매 마을 폐허 위에서 우리 모두에게 질문하고 있다. 왜? 무엇 때문에?

 
 

장영식(라파엘로)

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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