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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과 영성
성 베네딕토와 성 이냐시오가 전하는 복음의 기쁨[삶이 담긴 전례력을 따라 - 박유미]
박유미  |  editor@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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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7.10  11:0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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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식별(discretio)을 통해 공동체로서, 세상 안에서 그리고 세상 끝까지 복음선포

그리스도의 수난과 부활로부터 이어지는 뜨거운 사랑의 구원사 흐름을 지나 이어지는 연중시기. 마침 7월에는 교회사 안에서 시대적 변화에 대응해 큰 변화를 이끌었던 두 수도회 창립자들의 축일이 시작과 마무리에 자리 잡고 있다. 베네딕도 수도원의 창설자 누르시아의 성 베네딕토와 예수회 창설자 로욜라의 성 이냐시오. 5-6세기의 베네딕토 성인은 한곳에 정주하며 공동체로서 복음을 선포하는 삶의 규칙, "수도 규칙"으로 많은 수도공동체와 수도생활을 원하는 이들에게 영감과 지침을 주었고, 15-16세기의 이냐시오 성인은 "영신수련"을 통해서 공동체를 넘어, 세상 안으로, 세상 끝까지 나아가 복음을 선포할 투사, 복음 선포자들에게 하느님께 더 큰 영광이 되도록 살아가는 힘과 기쁨의 원천을 제시하였다.

세상의 변화 속에서 오늘까지 교회 쇄신과 함께 성장하며 변화해 온 두 분의 가르침의 시대적 배경과 의미를 새겨 보면 오늘 우리 사회와 세상에서 그리스도인으로서 복음의 기쁨을 살아가는 데에 또 다른 지침을 얻을 수 있다. 교회의 전통으로 자리 잡은 축일들이 그리스도교 이전의 문화에 대한 토착화 과정이었듯이 성인들의 삶과 가르침 또한 그분들이 살았던 시대에 대한 성찰과 식별을 통해 이루어진 것들이기 때문이다. 막연히 개인적인 삶 안에서 거룩한 삶을 추구한 것이 아니라, 오늘날의 방식으로 바꾸어 표현한다면 당시 '시대의 징표'에 따라 적극적으로 세상의 복음화를 위한 방법을 찾으신 것이다.

   
▲ 수바이코 지역 동굴에서 홀로 은수 중인 베네딕토 성인. (이미지 제공 = 박유미)
지구적 위기에 직면해서 현대의 생활방식에 위기감을 느끼며 대안적 공동체를 추구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성 베네딕토 또한 혼란의 시기에 살았다. 1, 2세기 로마의 최고 인구는 100만 명에 이르렀지만 그 뒤 지진과 도시관리 부진으로, 그리고 4, 5세기 북유럽 민족의 공격과 6세기에 창궐한 전염병으로 6세기 후반 로마의 인구는 겨우 4만 명 정도였다. 이런 상황에 지도적 위치를 차지하는 사람들, 그리고 이를 계승할 학생들 중에도 타락한 이들이 많았다. 교회는 분열되어 갈등이 있었다. 이런 상황에 염증을 느낀 베네딕토는 로마를 떠나 한적한 곳을 찾는다. 엔피데라는 곳에서 은수자들 공동체의 환대를 받지만, 그곳에서도 두드러진 그의 모습에 찾아오는 사람들이 생기자 그곳을 떠나 수비아코 지역 동굴에서 홀로 은수자 생활을 한다.

사람들을 떠나고 교회도 떠나서 로마노라는 수도자만이 그에게 먹을 것을 가져다 주고 그와 접촉하였다. 성서와 수도자들의 삶에 대한 연구를 하며 하느님을 체험하면서 그는 스승을 중심으로 모이지만 각각 살아가는 은수자들의 영성보다 초대 사도적 공동체의 모범을 따라 그리스도와 제자들의 공동체를 이루며 살아가는 것이 초대 사도적 공동체를 활기 있게 한 정신을 회복하는 길이라고 보았다. 아우구스티노와 파코미오의 전통을 받아들인 것이다. 신분이나 사회적 배경에 관계없이 평등하게 서로 봉사하며 공동소유와 형제애로 살아가는 초대교회 공동체 모습에서 나아가 아빠스와 수도자들이 그리스도와 제자들을 모범으로 살아가도록 구체적 삶의 규칙을 정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가능하게 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기도이므로, 거룩한 독서와 함께 공동기도가 하루 생활의 중심을 이룬다. 이렇게 베네딕토는 "수도 규칙"을 통해서 혼란한 세상 안에서 하느님의 길을 찾고 세상을 변화시키는 데에 한 사부 밑에 모인 은수자 생활보다 수도원에 머물러 함께 기도하고 사랑의 삶을 이루어 가는 수도원적 공동생활이 필요하다는 것을 분명히 하고 있다.

당시 시대적 배경에서 복음화 방식에 대한 식별이었다. 그리고 수도원의 이런 기도와 일의 영성이 일반 신자들에게 가르침이 되고 방문자들에 대한 환대로 하느님을 만날 수 있는 장소를 제공했다. 혼란스러운 사회 안에서도 사람들 간에 화목, 대자연과의 화목생활을 보여 주고, 성경과 영성과 문학을 기록하고 발전시키는 장소가 되었다. 한 지역에 정주하며 지역과의 관계에 집중하는 베네딕토 수도원의 영성은 시대의 징표에 따라 각 수도원의 소명에 대한 식별과 쇄신으로도 나타난다. 생태 농법과 가공으로 수도원의 경제활동을 전환해서 지역사회가 생태적 발전을 이루어 가는 데에 중심이 된 독일 플랑크슈테텐 수도원이나 난민수용에 앞장선 딩크라게 성 수녀원, 그리고 성주 사드배치 반대에 중심이 되고 있는 왜관수도원의 움직임 등을 생각할 수 있다.

   
▲ (왼쪽) 성 이냐시오, (오른쪽) 성 베네딕토. (이미지 제공 = 박유미)

그리고 천 년의 시간이 흐른 뒤인 이냐시오 성인의 시대 또한 격변기였다. 십자군 전쟁으로 이슬람 지역의 문물이 들어오면서 의학, 과학, 상업이 발달하고 도시가 발달하며 봉건사회 구조가 내적으로 변화하면서 근대적 국민국가가 탄생한 시기, 이런 배경 위에서 이탈리아에는 르네상스가 일어났고, 발달된 항해술을 바탕으로 신대륙을 발견하고 식민지 쟁탈전이 일어났으며 전쟁이 이어지면서 교회에서도 후스, 위클리프 등 다시금 초대교회로 복귀하려는 개혁운동이 이어지다가 종교개혁이 있었다. 사교계에서의 명성과 부와 명예를 위해 프랑스와의 전쟁에 참가했으나 지나친 명예욕으로 전쟁에도 참패하고 큰 부상을 입었던 이냐시오, 고통 중에 성서를 대하면서 삶의 방향이 바뀐다. 부와 명예를 버리고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가겠다는 마음으로 성 프란치스코를 모범 삼아 순례를 떠나 만레사 동굴에 머물며 영적으로 하느님의 위로와 실망을 체험했다.

하느님의 현존을 느끼는 기쁨과 자신의 뜻 안에서 그분의 존재를 잃어버리는 실망을 체험하다가 하느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시던 손길로 자신을 비춰 주심에 위로를 느끼면서 자신과 다른 영혼들까지 치유됨을 체험했다. 카르도날 강가에서 오성이 열리며 영적으로, 신앙적 학식으로 많은 것을 새롭게 보고 깨닫게 되는 강렬한 조명이 있었다. 모든 것 안에서 하느님을 보게 되었다. 하느님이 어떻게 피조물 안에 계시는가를 본 것이다. 모든 피조물이 어떻게 연결되어 있고, 또 그 피조물들 안에서 '나'를 위해 어떻게 일하시는지를 깨달았다. 그리고 다른 이들을 돕기 위해 공부하면서 무엇이 하느님의 뜻에 부합하는 것인지 식별하고, 사랑으로 실천하도록 하는 과정을 "영신수련"으로 기록하였다.

   
▲ (왼쪽) 만레사 동글에서 머무르고 있는 이냐시오 성인. (오른쪽) 카르도날 강가에서 깨달음을 얻다. (이미지 제공 = 박유미)

공부하며 뜻을 함께하는 사람들과 수도원을 설립하면서 시대의 요구에 따라, 정주하는 수도공동체가 아니라 사제로서 교황의 뜻에 따라서 세상 안에서, 신대륙 발견과 함께 세상 끝까지 파견되어 하느님의 더 큰 영광을 위하여 일할 수 있는 열정과 각 지역에서 필요한 것을 식별하고 적응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사람들을 양성하는 형태를 택했다. 그래서 예수회의 행동양식은 세상 어디서나 필요한 것을 식별하고 사랑으로 실천할 수 있도록 회원 각자에게 사도로서의 큰 자유를 주되 금전적 보수 없이 활동하도록 한다. 그리고 예수회 전체, 또는 그 행동방식에 속하는 어려움이 있을 때에, 곧 시대적 징표에 따라 전체총회를 거쳐서 활동에 대한 결정을 한다.

이런 점에서 세계 각 지역의 문제들을 접하면서 1990년대에 이미 총회에서 더 정의롭고 독립적인 국제사회 질서를 위하여, 더 정의로운 세계 질서, 부유한 나라들과 가난한 국가들과의 연대 확대, 그리고 인권과 자유에 기초하는 평화 유지를 진작하도록 하는 일에 비폭력의 증거자로 함께하며, 가난을 양산하고 문명 파괴를 위협하는 군비경쟁을 끝내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결의하였고, 성장 위주의 발전이 가져오는 필연적 결과로서 불의와 환경파괴를 지적하며 이에 대한 활동을 촉구하였다.

   
▲ 환경 문제에 대한 예수회 우선 선택의 기초. (이미지 제공 = 박유미)
시대를 넘어 이어오는 수도원 창설자들의 카리스마, 개인적 부르심과 하느님 체험에 바탕을 두고 시대의 징표에 대한 식별에 따라 복음의 기쁨을 선포하고 하느님나라를 이루기 위한 열정을 펼쳐갈 방식을 찾았던 두 분의 가르침이 오늘까지 이어져 오는 것은 시대마다 삶에 부딪치는 크고 작은 문제들, 시대의 징표에 대한 공동의 식별과 실천으로 실현되어 왔기 때문이다.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 안에서 사도로서, 공동체로서 하느님의 뜻을 식별하고 실천하는 수도자들, 그리고 함께하는 평신도들을 보면서 우리가 당면한 수많은 정의와 평화의 문제들을 생각한다. "모든 것이 네게 달려 있는 것처럼 그렇게 하느님을 신뢰하라. 그리고 마치 모든 것이 하느님께 달려 있는 것처럼 그렇게 네 자신을 투입하라!"

이냐시오 성인의 삶의 모토를 축복으로 받아들이며....

 
 
박유미 프리랜서(수산나)
서강대 사회학과, 독일 본, Friedrich-Wilhelm-Uni. 종교사회학 전공, 가톨릭사회론 제1 부전공, '빙엔의 힐데가르트 성녀에 대한 시대별 반향으로 본 교회와 사회와의 관계 연구'. 학문과 일상생활, 교회 안의 신앙생활과 일상의 간격에 다리를 잇는 교육과 프로그램에 깊은 관심이 있으며 전례력과 성인들의 가르침에 담긴 사회적 배경 인식과 성찰을 통해서 사회교리의 보편성과 사회영성 일상화를 나누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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