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너는 괜찮아", 김준희, 하양인, 2017

▲ "역시! 너는 괜찮아", 김준희, 하양인, 2017. (표지 제공 = 하양인)
“역시! 너는 괜찮아”는 김준희 씨가 5년간 도담대안학교 무료 교장으로 봉사하면서 아이들을 먹이고 가르친 시간들을 담은 카툰에세이다. 고온다습한 여름 장마철처럼 쉽게 열받고 눈물도 많은 청소년들에게 쉼표 하나를 선물한다. 무엇이든 “싫어!”라고 먼저 말하는 중2 시러군과 “몰라요, 안 돼요~”라고 말해도 사실은 잘하고 싶어 하는 앙대양, 그리고 “절대 돼!”라며 여유 있는 버팀목이 되어 주는 삐삐쌤이 이 책의 주인공들이다.

해야 할 공부는 많고 갈 길은 먼데 눈을 들면 어떻게 넘어야 할지 모를 벽들이 가로막고 있다. 시험은 늘 얼마 안 가 다시 오고, 점수와의 싸움에 지치는 학생들에게 친구들은 경쟁자다. 미래에 대한 막연한 걱정과 두려움에 짓눌려 쉽게 무기력해지고, 자신 안에 매몰되다 보면 다른 사람을 돌아볼 여유가 없어 대인관계도 어려움을 겪는다. 이런 처지에 놓인 아이들은 종종 외롭고 우울하고 짜증난다. 자신의 감정을 돌볼 줄 몰라 참고 참다가 결국 분노나 울음이 터진다. 삐삐쌤은 친구처럼 다가와 아이들에게 “괜찮아?” 라고 물어 주고, 두서없는 마음 이야기를 들어 준다. 그리고 “괜찮아.”라며 문제를 돌아볼 수 있도록 생각을 전환시켜 준다. 감당하기 버거운 현실의 짐을 함께 지고, 어둠을 한 꺼풀 거둬 줌으로써 변화의 물꼬를 터 준다. 고립에서는 어둠만 보이기에 우리에겐 ‘내가 보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빛을 비춰 줄 사람이 필요하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성인에게도 청소년기에서 자라지 못한 자기 모습을 성찰하고, 스스로에게 삐삐쌤이 되어 성장으로 나아가도록 도움 줄 것이다.

사람 사이의 문제는 대개 겉 보고 판단하기, 불평불만, 비교, 험담하기에서 시작된다. 그 원인은 일차로 자신이 속한 공동체(가족부터 나라까지)로부터 자신이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지지 못해서 생긴 거절의 분노에 있다. 그리고 그럴지라도 인정받고 받아들여지고자, 그러니까 살고자 남의 기준에 자신을 맞추려 몸부림친 불안에서 배운 자기방어와 위안을 찾는 방식이다. 아이들은 어른의 세상에서 차별당해서 차별을 배우고, 어른이 내린 기준대로 서로와 자신에게 잣대를 들이밀고선 거기에 꼭 맞춰야 한다는 강박이 생긴다. 두려움이 클수록 판단이 병적으로 일어나고, 다른 사람을 이해하려거나 받아들이기 전에 배운 기준대로 옳고 그름부터 따져 모든 잘못을 외부에 돌린다. 왜 그래야 하는지 뭐 때문인지 생각할 틈 없이 세상이 정한 틀대로 숨 가쁘게 달리다가 어른이 되고, 자기 자신으로 있는 것-진정한 쉼은 모른 채 고착된 판단의 습관과 그에 따른 불평불만 늘어놓기, 비교와 헐뜯기가 자기 생존 수단으로 굳어져 자신뿐 아니라 모두의 행복을 뒤틀어 버린다.

▲ "역시! 너는 괜찮아", '자기 사용설명서', 123쪽. ⓒ왕기리 기자

다행히 아이들은 이런 비인간적 신호에 민감해서, 뭔지 모르지만 짜증부터 나고 울음을 터뜨리거나 안절부절못한다. 자신을 기형적 체제에 순응시키거나 자기 자신으로 있기를 선택하는 기로에 놓일 때, 대부분 사람들은 알든 모르든 전자의 길로 휩쓸려간다. 하지만 삐삐쌤은 여기서 자기 자신을 잃지 않도록 “각자 ‘나’를 칭찬해 주자고!”, “사람은 다 달라. 창의적으로 꿈꾸자.”라며 아이들로 하여금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보게 하고, “좀 더 너그러워지자!”, “그럴 수도 있어.”, “소소한 즐거움을 찾아보자!” 라며 친구 간에 서로 돕기에 주력하도록, '함께하는' 지혜로 이끈다. 아이들은 자신의 악보를 그려 보고 친구들과 함께 화음 맞추기, 자기 사용설명서를 쓰고, 서로 알아가며 원하는 방법으로 잘 대해 주기, 그리고 긍정, 믿음, 희망, 사랑, 감사로 평화와 행복을 얻는 법을 배워 나간다. 책 마지막에 “졸업, 사랑이었단다.”라는 한 줄은 끝나지 않던 오르막길이 돌아보니 꽃길이었음을 보여 주는 듯하다.

▲ "역시! 너는 괜찮아", 147쪽. ⓒ왕기리 기자
공부와 씨름하는 시러군과 앙대양에게 필요한 건 자기에 대한 자신감과 여유였다. 성장은 청소년에서 어른이 되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어른이 되어도 성숙한 사람이 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크고 작은 선택의 때를 위해 삐삐쌤이 늘 강조한 너그러움을 기억할 필요가 있겠다. 너그러움은 작은 겨자씨 한 알이 자라 많은 새들을 깃들이는 나무 같은 쉼이다. 우리는 비겁한(사전 뜻을 따라가 보면 비겁함은 너그럽지 못함과 관련 있다) 길을 선택하지 않기 위해 성인이 된 뒤에도 언제나 ‘쉼 얻기’ 숙제를 해야 한다. “다른 사람과 경쟁하는 것만큼 나하고도 경쟁하면 어떨까? 과거의 나와!”(147쪽)라는 메시지처럼, 성숙해지려면 나를 성장하지 못하게 막는 과거의 나와 싸워야 한다. 과거의 나는 부정적 기억과 경험에 의해 늘 무언가에 집착하고 바쁨으로써 불안을 떨치려는 나, 또는 어떤 것에도 희망과 의욕이 생기지 않는 회의적인 나다. 성장하는 나는 좋은 열매의 씨앗을 품고, 사랑과 믿음으로 평화롭게 자족한다. 매일이 성장의 시간이니 이제 진실한 나가 되기 위해 자신에게 눈을 돌려 과거의 적폐를 찬찬히 쓸어 보자. 방법은 삐삐쌤이 챙겨 준 쉼표 하나에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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