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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우리의 가장 깊은 상처는 무엇인가[서평 - 강변구] "국민은 적이 아니다", 신기철, 헤르츠나인, 2014
강변구  |  editor@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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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7.04  10: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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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흔히 말하듯이 전투가 중지되었을 뿐, 정전협정 이후 전쟁 자체는 여전히 진행 중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전협정이 평화협정으로 대체되고 남북 간 긴장이 사라진다면 과연 한국전쟁은 진정한 종전을 맞이할 수 있을 것인가? 그렇지 않다. 한국전쟁이 정치적 차원에서 종결된다 하더라도 우리 사회는 전쟁의 ‘살아 있는 상처’들을 여전히 감당해야 할 과제가 있다. 그 살아 있는 상처들이란 무엇일까? 무엇보다도 전쟁에서 피해를 입은 ‘사람’들이다. 정치적 차원의 종전은 전쟁 피해자들에게 있어서 상처 치유의 첫 관문일 뿐이다. 피해자 한 분 한 분의 상처를 치유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우리 사회가 한국전쟁으로 인해 안게 된 트라우마와 그로 인한 사회적 퇴행, 지체, 정체 현상을 털어낼 수 있을 것이다.

   
▲ "국민은 적이 아니다", 신기철, 헤르츠나인, 2014. (표지 제공 = 헤르츠나인)
한국전쟁 민간인 학살자의 규모는 무려 100만 명을 헤아린다. 전투로 죽은 군인의 숫자가 아니라 군과 경찰 또는 폭격에 의해 죽은 비무장 민간인들의 숫자가 그 정도 규모다. 100만 명이라는 추상적 숫자에만 몰두하면 피해자 한 명의 고통을 이해할 수 없다. 나무를 보지 말고 숲을 보라고 하지만, 우리 인간이 사는 곳은 어디까지나 숲속이다. 내 눈 앞의 나무를 보고 이해할 수 없으면 현실이 공허해진다. 우리가 한국전쟁을 말할 때 피해자의 정확한 규모를 산출해 내고 그것을 통해 사건의 중요도를 판단하는 것은 필요하다. 그러나 그 질적 차원의 체감이 없다면 자칫 통계상의 무감함에 빠질 우려도 있다.

한국전쟁기 특정 지역의 민간인 피해 사례를 언급할 때 언제나 빠지지 않고 나오는 말이, ‘전쟁 때는 어디나 다 그랬다’는 것이다. 틀린 말은 아니다. 낙동강 방어선 안에 든 대구와 부산을 제외하면 전 국토가 학살지였다. 시기적으로도 전쟁 전 기간 동안 학살이 이어졌다. 국민의 지지를 받지 못하는 이승만 정권에 의해 학살은 이미 전쟁 전부터 제주도에서 여수에서 자행되고 있었다.

신기철의 "국민은 적이 아니다"는 한국전쟁 민간인학살을 오랫동안 조사해 온 경험을 바탕으로 사건의 본질에 한 걸음 다가서는 통찰을 제공해 준다. 충격적인 것은 개전 초기에 국군이 급격히 후퇴하는 와중에도 ‘적을 도울 것으로 의심되는’ 민간인에 대한 학살을 철저히 자행했다는 사실이다. “사단 일부가 서울 전선으로 파견되었던 국군 3사단과 해체되어 새로 편제된 7사단, 5사단, 2사단을 제외한다면, 삼팔선 최전방에서부터 후퇴했던 국군 8사단, 6사단, 수도사단, 1사단 등의 후퇴 경로를 추적해 볼 수 있다. 그리고 후퇴 경로를 따라가다 보면 이들이 주도하거나 개입했던 민간인 집단학살사건을 만나게 된다.... 이는 국군이 전투가 없는 동안 민간인 집단학살사건을 일으켰음을 보여 준다.”

책에 정리된 학살의 시기별 경과를 따라가다 보면 100명, 200명.... 800명이라는 희생자의 숫자가 정말 툭툭 튀어나온다. 무엇 때문에 이승만 대통령은 이토록 거대한 학살극을 벌인 것일까? 어쩌면 남한으로 밀고 내려오는 북한군보다 자신을 지지하지 않는 남한 민중을 더욱 적대시한 것은 아닌지 의심이 들 정도다. 책 제목대로 “국민은 적이 아”닌데 말이다. “국민의 지지를 받지 못한 사악한 정권은 자신들이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짓을 저질렀다. 정말 상상만 하던 짓, 즉 적을 도울 것 같은 국민들을 체계적으로 제거하는 짓을 저질렀다.” 아마도 이승만 대통령은 전쟁 이후를 걱정했을 것이다. 전쟁 뒤 자신이 제거되지 않으려면 자신에게 반대할 세력을 철저히 없애 놓아야 했다. “한국전쟁이 국민을 죽여야만 승리할 수 있다고 믿었다면 이건 전쟁이라기보다 이승만 세력의 친위 쿠데타라고 불러야 하는 것은 아닐까?”라는 저자의 의문이 비롯되는 지점이 바로 여기다.

학살 피해자나 유가족들의 삶은 어땠을까? 그들은 오랜 세월 동안 심각한 수준의 트라우마를 겪어야 했다. 트라우마는 사람을 과거의 어느 시점에 붙들어 놓고 놓아주지 않는다. 트라우마를 겪는 사람의 정신은 마치 밑빠진 독과 같아서 에너지를 과거에 끊임없이 빼앗겨 현재에 정상적으로 집중하지 못하게 한다. 무기력과 분노, 반복되는 공포로 인해 살아도 사는 게 아닌 게 된다. 우리 사회는 어떨까. 개인과 마찬가지로 한국 사회 자체도 트라우마를 겪고 있다. 대한민국도 한국전쟁이라는 끔찍한 사건의 기억에 사로잡혀 빨갱이, 종북 타령을 지금껏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진실에 대한 관심은 부족하다. 20세기 가장 격렬한 전쟁이 벌어진 곳에서 2005년에야 진실화해위원회가 설립되어 국가 차원의 진상규명 작업이 시작되고, 그것마저도 4년 남짓 활동한 뒤 중단되었다는 사실은 무엇을 말하는가.

애도되지 않고 부정당한 상처는 절대로 사라지지 않는다. 다만 억압되어 있다가 사람이 자유롭게 무언가를 해 보려 할 때 정확하게 목줄을 당겨 주저앉혀 버린다. 그러다 자신도 모르게 목줄이 허용하는 원의 지름 내에서 안주해 버리는 것이다. 우리 사회의 상상력을 옥죄고 있는 것을 무엇일까. 우리의 가장 근원적 고통은 무엇이며 치유는 어디에서 시작되는가.

오늘로 강변구의 서평 연재를 마칩니다. 1년 반 동안 매달 노동과 사회문제를 다룬 좋은 책을 소개하고 평해 주신 강변구 씨에게 감사드립니다. - 편집자

 
 
강변구 
출판노동자, 파주에 있는 출판사에서 십여 년째 어린이책을 만들고 있습니다. 
올해 3살 난 딸과 함께 지내는 새내기 아빠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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