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규현 신부와 홍성담 화백의 출판 기념회

홍성담씨 그림에 문규현 신부가 글을 써서 책을 한 권 세상에 내놓았다. <그래도 희망입니다>. 현암사에서 펴내었다. 2월 21일 목요일 저녁에 정동에 있는 품사랑 갤러리에서 출판기념회가 열렸는데, 찾아온 사람들의 면면을 보니, 문규현 신부의 지난 족적을 다 읽을만 했다. 문신부가 거쳐갔던 본당에서도 신자들이 찾아왔지만, 특별히 부안 핵폐기장 반대 투쟁에 참가했던 부안 주민들과 신자들이 잊지 않고 찾아와 주었다. 어려움을 함께 겪었다는 게 그러한 우정을 낳는 것 같다. 박순희, 정인숙 노동사목 관련자들뿐 아니라, 정의구현 사제단과 더불어 삼성비리 문제를 폭로했던 김용철 변호사, 항상 각별한 관계로 연대감을 지니고 있는 이덕우 변호사, 그리고 무엇보다 형님 신부인 문정현 신부가 은퇴한 뒤로 다시 서울에 모습을 드러냈다.

참석자들이 서로 동그랗게 앉아서 덕담과 인사를 나눈 뒤에 생활성가를 작곡하고 노래하는 김정식씨의 노래도 곁들여졌다. 분위기가 도탑고 따듯하다. 그리워하던 사람들이 오랫만에 사방에서 모여와 만남의 정을 나누는 모습이다. 홍성담씨는 수줍은 모습과 적은 말수로 문규현 신부와 작업하던 일을 떠올려 주었고, 문규현 신부는 저간의 심경을 이렇게 털어놓았다.

“지난번에 한반도 대운하 문제로 김포 애기봉에 가서 순례하고 전주로 돌아가려는데 수경 스님이 ‘무서워!’하더라고요. ‘내 다음 주에 다시 올게.’하는 말을 전하고 본당으로 돌아오면서, 그래도 생명을 돌보려고 애쓰는 사람들이 있다는 게 다행이라고. 그분들을 위해 기도해야 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 글과 그림은 저희가 한 게 아니예요. 살림의 삶을 위해 형제로서 동지로서 살다보니 이런 행운이 있더라고요. 사실 또 다른 작가는 부안 사람들이지요. 삼보일배하고 다시 부안으로 돌아갈 때도 그분들이 있어 희망이 생기더라고요. 그분들과 함께 가는 게 길이요 희망이죠.”

문규현 신부는 홍성담 화백과 희망의 언어를 찾아서 서로 같이 생각하고 25편의 글과 그림을 그렸다고 했다. 그중에서 가장 인상적인 대목으로 17편 ‘눈물’을 꼽았다.

‘눈물'은, 그것이 환희의 눈물이든, 혹은 절망과 비애의 눈물이든 하나의 생명이 새로운 차원으로 전환하기 위한 일종의 '희망의 결정체' 같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한 생명에게 '새로운 변화'란 자기 스스로 자신 안에 숨어있는 낡은 것들을 매일매일 죽여야 하는 피나는 노력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그 어두운 '죽음'의 골짜기를 통과할 때 마다 비로소 새롭게 변화된 생명을 맞이하게 됩니다. 그러한 '죽음'의 어두운 골짜기를 통과하여 희망의 빛을 경험한 사람만이 살아있는 모든 것들에 대해서 연민을 갖습니다. 그러한 사람이 흘리는 '눈물'은 자신의 '죽음'에 대한 고통보다도 세상 안에 살아있는 모든 것들에 대한 연민입니다.

담 벽이 바스라져 떨어진 작은 돌멩이 하나에서, 길가에 말라가는 잡초의 이파리, 이런 하찮은 것에서부터 '연민'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은 이라크 전쟁의 수많은 죽음들, 그리고 남아프리카에서 매일 굶주림으로 죽어가는 가여운 죽음들 앞에서도 '눈물'은 물론 아무런 연민도 두려움도 느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진정한 '눈물'은 보석처럼 빛나는 '세상의 희망'입니다.

살다보니, 혼자 사는 게 아니라는 문규현 신부는, 특히 문정현 신부를 지적하며, 그분은 형님이면서 오늘의 삶을 자신에게 열어준 길이고 생명이고 평화이고, 또 다른 예수님이었다고 말했다. 두렵지만 이렇게 함께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힘이 되고 희망을 낳는다고 하였다.

이 책 제목을 정할 때에도, 대선 직후에 다들 패배주의에 빠져 힘들어 하길래 “그래도 이 땅에 희망이 있을 거야”라고 푸념하다가, 그게 책 제목이 되었다고 했다. 조촐한 출판기념회였지만, 이 자리에 모인 사람들이 희망의 사람임을 확인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한상봉 2008.0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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