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하는 시 - 박춘식]

▲ 손바닥만 한 노트. (이미지 출처 = Pixabay)

어느 시골 여의사

- 닐숨 박춘식


통곡의 벽을 만진다는 설렘을 가방에 눌러 넣는데 - 이스라엘에 가지 말라고 - 연일 부글부글 설사가 몸을 꼬아 댄다 - 시골 병원의 여자 의사가 오장육부를 잠재워 - 잔잔한 갈릴래아 호수 걷는다 - 수시로 배를 만지며 그 여의사에게 - 무슨 선물을 드려야 하나 궁리 - 이스라엘 제품인 손바닥만 한 작고 예쁜 노트를 다소곳이 드리니 - 그 여자 의사는 - 쳐다보지도 않고 - 고맙다는 말도 안 하고 -

하고, 여의사의 눈이 얼마나 높고 대단한지 처음 알았고
하고, 지나온 세월 저의 오만을 다시금 참회하고
하고, 여자 의사의 거만을 반추에 반추하고
하고, 제가 큰 바보임을 깊이 인정하고
하고, 어눌한 이 시를 만들어 보고



<출처> 닐숨 박춘식 미발표 시 (2017년 6월 26일 월요일)

교수가 거만하면 학생들이 외면합니다. 시인이 거만하면 독자가 없습니다. 성직자가 거만하면 신자들이 찾아가지 않습니다. 의사가 거만하면 환자들은 말을 잊고 그저 가슴 먹먹합니다. 누구나 겸손하여야 함을 다 알지만 하루아침에 되는 일이 아니고, 이리저리 상처를 입어야만 조금씩 낮아지는 것이 사람인 듯합니다. 겸손하라, 몸을 낮춰라, 하느님이 여러 방법으로 때리거나 야단치면 그때 잠시 몸을 숙이다가 다시 뻣뻣해집니다. 마치, 투표 전 후보자들의 수평 절을 보다가, 당선되면 수직 모가지가 되는 정치까들을 늘 보고 있는 듯합니다. 하루에 딱 한 분이라도 겸손한 사람을 보면 그날은 축복 가득한 날로 여깁니다. <지금여기> 독자들은 모두 겸손하시기를 빌고 빕니다.

 
 
닐숨 박춘식
1938년 경북 칠곡 출생
시집 ‘어머니 하느님’ 상재로 2008년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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