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병규 신부] 6월 25일(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기도의 날) 마태 18,19ㄴ-22

마태 18장은 ‘교회’ 공동체에 대한 영성적 기반을 제공한다. 교회란 무엇인가에 대해 답하기 전에, 교회를 굳이 특정 범주에 넣어 개념화해야 하는가에 대해 먼저 묻는 게 필요하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에서 교회를 두고 ‘성사’라 한다. 교회는 모든 인간들에게 향한 그리스도의 사랑을 가시적으로 드러내는 성사적 가치를 지녀야 한다. 말하자면, 교회는 자신의 개념화와 범주화에 저항해야 한다. 세상 모든 이를 구원에로 초대하는 그리스도를 담아내고 담아낸 것을 세상 모든 이를 향해 쏟아 부어야 하는 교회는 애당초 한계짓기나 범주화와는 거리가 있다.

▲ 예수는 기도하는 두세 사람 가운데 함께 있다고 했다. (이미지 출처 = Pixabay)
다시 마태 18장을 꼼꼼히 살펴보자. 예수는 자신의 이름으로 모인 공동체에 함께한다고 했다. 그 공동체의 개념화는 어떤 기준으로도 재단되지 않는다. 오히려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 그래서 둘이나 셋이 모이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그 모임의 기준은 구별해서 선택하자는 데 있지 않다. ‘용서’가 교회 공동체를 형성하는 기준이고 그 용서는 끝없이 베풀어져야 한다.

인간 세상에 드러난 제도로서, 건물로서의 교회는 그 한계와 범주가 뚜렷하다. 그러나 교회의 영성적 기반은 그 한계와 범주를 무너뜨리는 데서 시작해야 한다. 세상 모든 것을 만드셨다는 창조주 하느님을 믿으면서 제 삶의 주변만 더듬는 교회는 어색하다.

교회에 대한 영성은 그래서 기존 체제나 질서에 대한 혁명 정신을 기반으로 해야 한다. 어디까지 교회일까를 고민하는 게 아니라, 교회 아닌 것 없어야 된다는 인식의 혁명, 어떻게 사는 게 교회의 참모습일까 고민하는 게 아니라, 어떻게 살아도 교회일 수 있다는 실천적 혁명, 그 혁명의 끝은 결국 또 사랑, 그것이어야 한다.

교회의 참모습은 지향하되, 교회 아닌 것이라 내치는 권리는 우리 교회에 없다. 그리스도는 우리가 어떤 모습으로든 함께 모인 곳에 함께 계시다 하셨으니....

 
 

박병규 신부(요한 보스코)

대구대교구 성서사도직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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