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엌데기 밥상 통신 - 41]

'두려움과 배움은 함께 춤출 수 없다'라는 제목의 책을 읽었던 게 십여 년도 전일 게다. 그런데도 요즘 들어 자꾸 그 책 제목이 떠오르는 건 내 안의 두려움이 파도처럼 밀려들고 있다는 걸 알리는 적색 경보였다.

"삐삐삐.... 두려움이 커지고 있잖아. 이런 식으로라면 삶을 있는 그대로 즐길 수 없어. 삐끗하는 순간 우주의 리듬과 박자를 놓치고 말 거야. 잊지 마, 두려움과 자유는 함께 춤출 수 없다는 걸!"

영혼의 빛은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오래도록 비가 내리지 않아 애타게 비 소식만 기다리고 있는 나에게, 가뭄 끝의 종말까지 상상하며 애써 두려움의 그늘에 머물러 있는 나에게....

내가 이렇게까지 초조해 하게 된 건 갑작스럽게 수도 공급이 끊어지는 일이 잦아지면서부터다. (우리 마을 상수도는 계곡에서 내려오는 물을 물탱크에 저장했다가 공급하는 구조다. 말하자면 지표수에 의지해서 살아간다는 얘기다. 따라서 비가 많이 오느냐 적게 오느냐에 따라 골짜기에서 흘러내려오는 물의 양이 달라지고, 요즘처럼 가문 날이 계속될 때는 물 소비량에 비해 공급량이 딸려서 제한 급수를 해야 하는 상황까지도 펼쳐진다.) 맨 처음엔 수도꼭지에서 나오던 세찬 물줄기가 점점 약해져 가는 것을 느끼며 '이러다 물이 아예 안 나오는 거 아니야? 안 돼. 그럴 리가 없어. 아무리 가물다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거야.'라며 애써 현실을 외면하려 했다. 그러다가 정말로 물이 안 나오게 되자 얼마나 당황했는지 '이럴 수가!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지?' 하고 충격에 휩싸여, 당장 앞집으로 달려가 사정을 알아봤다.

"아침부터 물이 안 나오네요. 아주머니 집에도 물 안 나와요?"
"이, 물탱크에 물이 떨어졌는갑써. 새로 이사 온 집이서 밤에 버섯에다 물을 줬는가 벼. 그래가꼬 물이 얼마 없응께 대한이(물탱크 관리를 맡은 이장 아저씨)가 물을 잠가 블었는가 벼. 이따 해거름판에 튼다는구만. 물 틀면 통에다가 물 많이 받아 놔. 알았제?"

그 얘길 들으니 당혹감이 분노로 바뀌었다. 제한 급수를 해야 되는 상황이면 그 사실을 마을 방송을 통해서라도 미리 알려야 되는 거 아닌가?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리고 몇 시쯤 물을 틀 테니 받아 놓으라 어쩌라 말이라도 해야 되는 거 아니냐는 말이다. 그리고 새로 이사 온 집 사람들도 그렇다. 안 그래도 물 공급이 딸리는 상황에서 자기 집 표고버섯 하우스에까지 물을 주다니, 대체 양심이 있는 사람들인가? 아무튼 오만 가지가 다 마음에 안 들고 물이 안 나오는 상황이 답답하기만 해서 마음이 뾰족뾰족 아주 날카로워졌다. 잔뜩 모인 빨랫감은 어쩌고, 밥 준비는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인가.... 정말이지 눈앞이 캄캄해지는 느낌이었다.

그렇다, 캄캄! 갑자기 정전이 되었을 때 느끼는 당혹감과 아주 똑같았다. 눈앞이 캄캄해서 아무것도 안 보이고, 어둠이라는 감옥 속에 손발이 꽁꽁 묶인 채 내동댕이쳐진 느낌이랄까? 한때 일주일에 하루는 전기 없이 살아 보자고 하여 촛불에 의지해서 지내 본 적이 있는데 그때의 기억과 느낌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뿐만 아니라 수년 전 차를 폐차시키고 집에 돌아오던 날의 막막함도 되살아났고, 가스 불을 안 쓰고 불을 때서 밥을 해 먹어 보겠다고 좌충우돌하던 시간들도 새록새록 떠올랐다. 상하수도 시설 또한 우리가 누리고 있는 문명의 이기였구나. 너무나 당연하게 누리고 살던 것을 갑작스럽게 박탈(?)당하고 보니 그동안 내가 그 편리함에 얼마만큼 젖어 들어 있었는지가 확연히 보였다.

'그래, 처음엔 어둠뿐인 것 같아도 익숙해지면 빛이 보일 거야. 이때야말로 물의 고마움을 배울 수 있는 좋은 기회다!'

그런 식으로 마음을 굳게 다잡고 물이 나오면 나오는 대로 안 나오면 안 나오는 대로 맞추어 살아 보기로 했다. 물이 나온다 싶으면 그때그때 물통에 물을 넉넉히 받아 두고, 안 나올 때는 물 쓸 일 줄여 가면서 요령껏 밥 준비와 설거지를 하고... 정말이지 물 한 바가지 허투로 쓰지 않으려고 애를 쓰고 마음을 모으게 됐다. 쌀 씻은 물은 물론이고 설거지하고 나온 물이나 허드렛물까지 받아서 밭에 주고, 작은 빨랫감은 그때그때 손으로 빨고, 설거지를 간편하게 하기 위해 반찬 가짓수도 최소한도로 줄이는 식으로 말이다.

그러다가 어제 저녁에 밥상을 차리는데 신랑이 밥도 한 그릇에 먹자고 그런다.

"밥을 한 그릇에? 그건 좀 너무하지 않나?"
"왜요? 설거지도 확 줄고 좋지."

▲ 다섯 식구 밥을 한 그릇에 담아 한밥그릇밥. 수북하던 밥 한 그릇이 쑥쑥 굴어지고, "엄마, 밥 좀 더 줘" 소리가 우렁차다. ⓒ정청라

그 말을 듣고 큰 그릇에 밥을 한가득 담아 놓고 다섯 식구가 같이 먹는데 뜻밖에도 재미가 남달랐다. 내 밥 네 밥 없이 한데 어울리니 서로 한꺼풀씩은 더 가까워지는 느낌이 든달까? 누가 보면 '쯧쯧.... 물이 안 나와서 밥을 저렇게 먹다니!' 하고 애처로워 할 만도 한 광경인데 우리들에겐 별다른 반찬이 없이도 밥맛을 아주 특별하게 느끼게 하는 놀라운 마법처럼 느껴졌다. 아이들도 밥을 얼마나 달게 먹는지 평소 먹던 양보다 배는 먹는 것 같았다. 이렇게 해서 한밥그릇 밥의 위력을 발견!

그러고 보면 비가 안 오고 물이 안 나온다고 해서 절망할 일만은 아니다. 원래 삶이란 온갖 우여곡절 속에서 피어나는 거 아닌가. 오히려 물이 안 나오는 상황 속에서 한밥그릇 밥의 맛을 알게 되었으니 이것도 고마운 일이다. 고맙게 바라보면 고맙지 않은 일이란 없다.


▲ 한밥그릇밥을 맛있게 먹은 날 다울이의 일기. 추억이 되면 더 맛있고 더 아름답겠지. ⓒ정청라
덤.
며칠 전에 갑자기 비가 내렸고, 감격에 젖어 빗소리를 들으며 다랑이와 이런 대화를 했다.

다랑 : 엄마, 비가 오니까 왜 고맙지?
나 : 글쎄, 왜 고마울까?
다랑 : 어, 우리를 살려 주니까.

비가 우릴 살려 준다는 사실을 진짜로 알게 되어 기쁘다. 고마움을 알고 사는 것과 모르고 사는 것은 하늘과 땅 만큼이나 차원이 다르다고 생각한다. 비님, 부디 저희를 살려 주세요.

 
 
정청라
산골 아낙이며 전남지역 녹색당원이다. 손에 물 마를 날이 없이 늘 얼굴이며 옷에 검댕을 묻히고 사는 산골 아줌마. 따로 장 볼 필요 없이 신 신고 밖에 나가면 먹을 게 지천인 낙원에서, 타고난 게으름과 씨름하며 산다.(게으른 자 먹지도 말라 했으니!) 군말 없이 내가 차려 주는 밥상에 모든 것을 의지하고 있는 남편과 아이들이 있어서, 나날이 부엌데기 근육에 살이 붙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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