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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전문] 그리스도인들이 직면한 시간과 공간의 의미강우일 - 제4회 동북아시아 화해를 위한 크리스챤 포럼에서
편집국  |  editor@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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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6.16  15:5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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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주 전 제4회 동북아시아 화해를 위한 크리스챤 포럼(The Christian Forum for Reconciliation in Northeast Asia)에 참석한 여러 나라 청중에게 강우일 주교(천주교 제주교구장)가 강연한 원고입니다. 박은미 주교회의 여성소위 총무가 더 많은 사람들과 나누고자 번역하여 보내 준 데 대하여 감사드립니다.

일시 : 2017년 5월 29일 - 6월 3일
장소 : 이시돌 피정의집
발표 : 제주교구장 강우일 주교

카이로스 시간(the Kairos)의 의미를 성찰하기 위해, 동북아시아에서 우리가 직면한 지정학적 배경을 고찰하는 것으로 글을 시작하겠습니다. 동아시아 지도를 보면 한반도는 중국과 일본 사이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한국 역사를 돌이켜 보면, 한국인들은 이웃한 두 강대국으로부터 자주 침략받고 억압당하면서 끊임없이 고통과 도전을 받아 왔습니다. 7세기에 중국 군대는 한반도 북부 지역을 수차례 침략했지만, 끈질긴 저항을 받아 정복에는 실패했습니다. 중국군은 13세기와 17세기에도 예닐곱 차례나 한국을 침략해서 엄청난 사상자를 냈습니다. 16세기 초에 일본 군대가 한국을 침략하여 짧은 기간 동안 한국 전역을 차지한 적이 있습니다. 1910년 일본은 한반도를 식민지로 점령하기 시작해서 1945년까지 36년간이나 지배했습니다. 일본이 물러간 뒤, 두 동강 난 한반도의 북부는 소비에트 군대에 의해, 남부는 미국 군대에 의해 점령되었습니다. 그 시기로부터 지금까지 한반도는 이념적 갈등으로 압도되어 왔습니다.

이런 지정학적 위치는 몇 세기 동안이나 이집트와 북부 제국인 앗시리아, 바빌로니아, 페르시아, 시리아 사이에 끼어 생활해야 했던 이스라엘의 역사적 상황을 되새기게 합니다. 유다 왕국 마지막 시대에, 백성들은 두 개의 집단 즉 친-바빌로니아파와 친-이집트파로 나뉘었는데, 대부분의 지도자들은 친-이집트파를 추종하고 있었고, 치드키야 임금은 이집트의 도움에 의존해서 바빌로니아에 맞서 싸우려 들었습니다. 하지만 예레미야와 에제키엘 같은 예언자들은 친-이집트 정책에 비판적이었습니다.(예레 27-28, 에제 30-31 참조)

한반도 남쪽 해안에서 백 킬로미터 정도 떨어져 있는 제주도는 10세기까지는 독립적인 왕국이다가, 그 시기 무렵 고려 왕조에 편입되었습니다. 제주도는 늘 정치범이나 반역자들을 귀양 보내는 동떨어진 섬으로 여겨졌습니다. 섬 주민들이 본토로 여행을 가려면 특별 허가를 받아야 했습니다. 또 제주도민들은 본토 언어와는 꽤 다른 제주 고유의 방언을 사용했습니다. 이제는 섬 주민 대부분이 표준 한국어를 쓰지만, 때로 연로하신 분들이 제주 방언으로 이야기 나누는 걸 들으면 정말 알아듣기 힘듭니다.

제주도민 절대 다수가 4.3의 고통스러운 기억을 지니고 있지만, 다른 지역에 사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4.3 사건은 여전히 잘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4.3은 한반도에서 일본이 퇴각한 때부터 합법적 정권이 수립될 때까지의 혼란스러운 변혁기에 발생한 비극이었습니다. 2003년 3월 29일에 발표한 한국 정부의 공식 보고에 따르면, 1948년부터 1954년 사이에 학살된 시민은 3만 명에 이릅니다. 과거사를 바로잡기 위해, 또 4.3은 하나의 국가만 연루된 사건이 아니라는 의미에서, 우리는 이 사건을 여러 각도에서 돌이켜 보아야 하겠습니다.

1. 4.3과 일본

1922년에 이미 일본 정부는 일본 산업 지역에 노동력을 충당할 목적으로 제주도와 오사카 사이에 페리보트 정기 운항을 시작했습니다. 1934년 제주도에서 일본으로 건너간 한국인은 5만 4000명으로 추정됩니다. 1937년 중일 전쟁이 발발하고 일본에 노동력이 부족해지자, 일본 정부는 국가 일체 동원령을 발표해 수많은 한국인들을 일본으로 데려갔습니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날 무렵, 일본 전역의 수많은 광산, 공사현장에서 노동하는 한국인은 100만 명에 달했습니다. 일본이 굴복하자마자, 제주도 출신 노동자 6만 명이 다시 고향으로 돌아갔는데, 그로 인해 제주도는 급격하게 식량과 일자리 부족 사태를 초래했다고 합니다. 2차 대전이 끝나던 해 제주도 전체 인구는 22만 명 정도였는데, 이듬해에 인구가 30퍼센트 이상 불어나게 되었으니까요. 일본 제국주의로부터의 해방은 일시적으로는 환희를 느끼게 해 주었지만, 시민들의 생활에는 곧바로 엄청난 고통이 찾아왔습니다. 돌이켜 보면 제주도 전역을 뒤흔들어 놓은 4.3이라는 파국적 재앙의 진원은 일본과 일본의 식민지 팽창이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2. 4.3과 미국

1945년 한반도 남부를 점령한 미 군사정부는 일본 식민지 아래 실시되었던 ‘통제 경제’를 철회하고 자유 시장경제를 도입합니다. 하지만 미국 정부는 공정하고 질서정연한 시장을 유지할 어떤 특별 조치나 경제 정책을 마련하지 않았습니다. 이전의 경제 체제를 해체하면서 아무 후속조치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지주들과 부유한 상인들에게 시장을 차지할 기회를 마련해 주었습니다. 그들은 시장 질서를 파괴했습니다. 1945년 9월 기준, 1말에 9.4엔이던 쌀값은 2800엔으로 껑충 뛰어올랐다고 합니다. 다른 지역보다 더 빈곤한 상황에 있던 제주도민들은 예기치 못한 사회적 혼란을 겪어야 했습니다. 제주민들은 미국 정부 관료들을 신뢰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모든 행정력을 일본 식민지 정권에 기생하는 경찰에 넘겨주고 사회 질서를 유지하려 했을 뿐이었습니다. 제주도민들이 미국 군사정권에 맞서는 것도 이 때문이었습니다. 경찰이 거리에서 시위하던 사람에게 발포하자, 제주도민 전체는 총궐기로 대응했습니다. 미국 군사 정권은 경찰력을 동원하여 체포하고 고문하는 등 시위에 나선 주민들을 가혹하게 억압했습니다.

미국은 제주도의 역사, 문화, 언어에 대한 사전 지식이나 정보가 전혀 없었습니다. 그들은 지역 주민에 대해 일말의 존중도 보이지 않았고 오로지 또 다른 점령자로 행동했습니다. 미국 군부 지도자들은 일본 제국의 식민 체제 아래서 겪어야 했던 제주 도민들의 끔찍한 고통과 굴욕적 경험을 전혀 아랑곳하지 않았습니다. 도민 대부분은 정치적 이념과는 무관한 순박한 농민들이었음에도, 미군 지도자들은 그들을 오로지 공산주의자로 취급했습니다. 경찰이 제공하는 정보에만 의탁한 미군 지도자들은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제주도에서 좌익 운동을 완전히 뿌리 뽑으라는 명령만 내놓았습니다. 그들은 공산주의자들이 생존할 싹마저 완전히 제거하기 위해, 초토화 정책까지 명령했습니다.

   
▲ 강정 평화대행진에 참여한 강우일 주교. 쌍용차 해고자들과 함께. (지금여기 자료사진)

3. 4.3과 한국 정부

1948년 8월 15일, 남한의 대통령으로 선출된 반공주의자 이승만은 1948년 11월 17일 제주도에 계엄령을 발포하고 봉기 세력을 무차별적으로 진압할 것으로 명령했습니다. 초기 단계에서 무장한 반란 세력은 500명이 넘지 않았던 것으로 추정되는데, 남한 정권은 군대와 경찰력뿐만 아니라 우익 활동가들까지 제주도에 보내, 산간 지역에 자리 잡은 모든 마을들을 장악하고 도민들을 처형하고 불태우고 파괴했습니다. 고지에 거주하는 마을 주민들은 밤에는 음식과 생필품을 구하러 내려온 무장 빨치산에게 시달려야 했고, 낮에는 군인들과 경찰의 희생자가 되어야 했습니다.

해안가 마을 주민의 경우 가족들 가운데 부재자가 있으면 빨치산과 연루된 것으로 간주되어 처형당했습니다. 1949년 3월 이후, 한국 군대는 좌익을 배신하고 자수하면 사면해 주겠다고 선언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산에서 빠져 나와 경찰에 자수했는데, 그들 대부분이 어떠한 법적 절차도 받지 못한 채 처형당했습니다. 이념적 대립 때문에, 제주도민들은 동포가 아니라 제거당해야 할 적으로 간주되었습니다.

4. 대한민국 정부(ROK)가 취한 후속 조치

한국 전쟁 이후, 더 극단적인 반공주의가 된 이승만 정권은 빨갱이 반동 세력의 폭동으로 규정한 4.3사건에 대해 조사는 말할 것도 없고 언급조차 금지했습니다. 1960년 4.19의거(학생 혁명) 이후, 이승만 대통령이 물러나자 잠깐 동안의 민주적 분위기를 만끽할 수 있었지만, 채 1년도 되지 않아 1961년 군부 쿠데타가 발발했습니다. 이후 30년간 독재 정권이 이어지면서, 4.3 사건은 깊은 망각 속으로 완전히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4.3의 기억은 소설이나 시 같은 일부 문학작품을 통해서만 남게 되었습니다. 4.3 비극을 암시한 많은 작가와 시인들이 체포되어 고문당하고 투옥되기도 했지만 말입니다.

2000년이 되어서야, 김대중 대통령에 의해 4.3의 진실이 밝혀졌는데, 김대중 대통령은 4.3사건 조사 특별법을 제정했습니다. 50년이 지나고서야 남한에서 4.3의 봉인을 깨뜨릴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지난 10년 동안 이명박과 박근혜 행정부는 4.3사건과 관련하여 명확한 분류 조사와 복권을 진행하는 데 미온적이었습니다. 너무도 자주 우리는 진실에 충실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개인적인 편견과 집단 이익으로 정보를 통제하고 조작하는 정치인들의 태도를 지켜보아야 했습니다.

5. 한반도에서 지속되는 갈등의 원인

2차 세계대전 이후 남북으로 분단된 한국은 좌/우의 극단적인 이념 대립이 강화되었습니다. 1950-53 사이에 발발한 한국 전쟁은 한국 국민들 사이에 엄청난 장벽을 가져왔습니다. 북한 사람들과 남한 사람들은 같은 언어를 사용하고, 같은 역사적 유산과 조상을 갖고 있지만, 지금은 서로에 대해 외국인처럼 느끼고 있습니다. 한국 전쟁 후 몇십 년 동안 남한에서는 사회주의 이데올로기나 북한에 대해 우호적인 말이나 행동을 했다간 자신의 사회생활을 위험에 빠뜨려야 했습니다.

분단 70년 사이, 북한과 남한 사람들은 서로를 주적으로 간주하고, 서로를 겨냥하며 엄청난 폭탄과 미사일을 개발하고 발사할 준비를 갖추고 있습니다. 해마다 남한과 미국의 군사력은 북한에 맞서 합동 군사 훈련을 수행하는 데 엄청난 비용을 쏟아 붓고 있습니다. 이에 맞서기 위해 북한이 고집스럽게 핵무기와 장거리 미사일 개발에 집착하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사실 재정적으로 북한은 그런 막대한 규모의 군사훈련을 감행할 상황이 아닌데도 말입니다. 북한의 GDP는 남한에 비해 고작 1/40밖에 되지 않으니까요.

21세기 초, 남한은 중국과 미국이라는 초강대국 사이에 끼어 있습니다. 극동아시아의 이 위험한 상황을 어떻게든 해결할 수 있다면, 우리는 세계 평화를 향한 큰 걸음을 내딛을 수 있을 것입니다. 한반도는 정확하게 두 강대국이 충돌하는 지점을 위치해 있으니까요.

대부분의 남한 사람들은 1950-53년에 벌어진 한국전쟁에 대한 쓰라린 기억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 전쟁으로 수백만의 인명이 희생되었고, 깊은 심리적 불안과 상처를 지닌 채 살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북한과의 갈등 때문에, 남한 시민들은 어떤 종류의 군사적 계획에도 의문을 제기하거나 저항하지 못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국가 안보라는 명분을 위해서라면 어떤 것이라도 희생할 각오를 합니다. 그리스도교회는 이 문제에 대해 어떤 의문도 제기하려 들지 않습니다. 저는 교회가 군사력의 균형에 의존하는 것 말고는, 평화를 촉진하려는 노력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못했다고 생각합니다.

   
▲ 강우일 주교. ⓒ정현진 기자

2007년, 한국 해군은 제주도의 작은 어촌 강정에 해군기지를 짓겠다고 발표했습니다. 제주의 많은 사람들은 이 일방적인 결정에 저항하기 시작했습니다. 강정은 DMZ(비무장지대)로부터 가장 멀리 떨어진 지역으로 한국 해군을 위해서라면 너무도 크고, 제주도에 이렇게 거대한 해군기지를 새로 지어야 할 아무 이유가 없었습니다. 해군기지는 공군 수송기를 포함하여 20척의 최첨단 전함이 기항할 수 있는 규모로 설계되었습니다. 지난 10년 동안 평화를 사랑하는 많은 사람들이 이 프로젝트에 반대하여 저항하다가 체포되어 억류되거나 투옥되고 벌금형에 처해졌습니다. 우리는 이 프로젝트에 저항하기 위해 대통령에게 편지를 보내거나 정부 고위 인사에게 호소하는 등 모든 노력을 동원했지만, 그 과정을 통해 저는 이 일련의 조치가 한국 정부 단독의 결정이 아니라 미국 정부에 협조하지 않을 수 없음을 드러낸 것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SOFA(한미군사협정)에 따르면, 미국 군대는 한국 정부에게 미리 허가를 받지 않고도 한국 군 시설을 얼마든지 사용할 수 있게 되어 있습니다. 최근에 우리는 처음으로 미국 구축함 한 대가 3월 25일 하루, 강정에 정박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 일이 있기 바로 전에, 미국 국방장관인 제임스 매티스가 한국을 방문하여 강정 기지에 줌발트급 최선진 파괴 구축함이 오게 될 거라는 사실을 암시했습니다. 제주가 동북아시아에서 군사적 긴장의 중심지가 되지 않을지 정말 걱정이 큽니다.

일본의 아베 행정부는 과거 아시아 국가들에 개입한 행동을 재추진하면서, 집단적 방어권 행사를 합법화하기 위해 이미 자위대 법안을 수정했습니다. 직접적 공격은 하지 않더라도 일본이 군사력을 사용할 수 있는 상태에 한 발짝 더 가까워진 것입니다. 중국 정부 역시 아시아의 긴장을 가속화하고 자신의 군사력을 과시하기 위해 끊임없이 방위비를 늘리고 있습니다. 이 모든 국제적 정치 환경이 우리에게 “과연 세계에 평화는 가능할까, 평화를 위한 희망이 있을까” 하는 우려를 낳고 있습니다.

많은 예를 통해 군산복합체가 정치가들과 군사 지도자들에게 엄청난 영향을 주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최근 한 이탈리아 선교 잡지를 통해, 저는 EU에 공식적으로 승인된 무기 수출 총액이 1000억 달러에 이른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미국의 무기 수출 총액 역시 EU보다 적지 않을 거라 생각합니다. 전 세계가 지구상에 엄청난 양의 무기를 축적하는 심각한 방향으로 나아가는 상황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미 몇 차례나 국제적인 무기 밀매에 대해 질타하셨습니다. 지난 2월에 교황님은 “오늘날 세계는 전쟁 중에 있습니다, 많은 무고한 형제자매들이 죽어 가고 있는데, 이미 많은 돈과 권력을 지닌 자들이 또 다른 땅을 얻으려 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무기 밀매를 해서라도 더 많은 권력과 돈을 얻어 내려 합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교황님은 덧붙이십니다. “하느님께서 평화를 만들어 주시지만, 평화를 유지하기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것은 매일매일 실천해야 할 일입니다.” “우리 안에는 이미 원죄, 카인의 영의 씨앗, 시기와 질투, 탐욕, 지배하려는 욕망, 무지개와 비둘기로 하여금 하느님과의 약속을 흐리게 하고 파괴하게 만드는 전쟁을 일으키려는 욕망이 숨겨져 있습니다.”

교황님은 소리치십니다. “신문과 TV 뉴스를 보노라면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죽어 가고 있습니다. 우리 마음에 시기, 질투, 탐욕을 만드는 전쟁의 씨앗은, 이제는 다 자란 나무가 되어 버렸는데, 병원이나 학교에 폭탄을 떨어뜨려 아이들을 죽게 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전쟁 선포는 여기, 바로 우리 각자의 마음에서 시작됩니다.”

우리는 한국, 일본, 중국, 그리고 미국에서 온 그리스도인들입니다. 우리는 서로 다른 씨앗을 심기 위해 부름 받았습니다. 시기, 질투, 탐욕의 씨앗이 아니라 사랑과 평화, 화해의 씨앗입니다. 저는 최근 제 마음에 와닿은 성경 구절 두 개를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이 두 구절이 우리가 마주한 카이로스, 그 딜레마를 되풀이하고 재해석하는 도움이 되면 좋겠습니다.

1. 콜로 3,9-12
여러분은 옛 인간을 그 행실과 함께 벗어 버리고, 새 인간을 입은 사람입니다. 새 인간은 자기를 창조하신 분의 모상에 따라 끊임없이 새로워지면서 참 지식에 이르게 됩니다. 여기에는 그리스인도 유다인도, 할례 받은 이도 할례 받지 않은 이도, 야만인도, 스키티아인도, 종도, 자유인도 없습니다. 그리스도만이 모든 것이며 모든 것 안에 계십니다. 그러므로 하느님께 선택된 사람, 거룩한 사람, 사랑받는 사람답게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동정과 호의와 겸손과 온유와 인내를 입으십시오.

2. 히브 11,12-14
그리하여 한 사람에게서, 그것도 죽은 것이나 다름없는 사람에게서 하늘의 별처럼 수가 많고 바닷가의 모래처럼 셀 수 없는 후손이 태어났습니다. 이들은 모두 믿음 속에 죽어 갔습니다. 약속된 것을 받지는 못하였지만 멀리서 그것을 보고 반겼습니다. 그리고 자기들은 이 세상에서 이방인이며 나그네일 따름이라고 고백하였습니다. 그들은 이렇게 말함으로써 자기들이 본향을 찾고 있음을 분명히 드러냈습니다.

   
▲ 5월 29일-6월 3일 제주도에서 열린 제4회 동북아시아 화해를 위한 크리스챤 포럼의 참가자들. (사진 제공 = 박은미)

   
▲ 제주4.3평화공원 안에 있는 기념관. (사진 제공 = 박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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