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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8.17 목 1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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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아이들이 느끼는 세상[채성욱 선생의 학교]
채성욱  |  editor@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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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6.13  11:4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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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주 수요일이면 아이들에게 글을 한 편씩 써 오도록 한다. 글의 종류는 상관없다. 일기를 써도 되고, 교사에게 하고 싶은 말을 써도 되고, 시를 써도 되고, 친구에게 편지를 써도 되고, 영화나 미술 등 다양한 감상을 써도 되고, 독서 후 활동을 써도 된다. 그림을 그리고 싶다면 간단하게 그림을 그리는 것도 괜찮다. 다만 시의 경우 일 년 내내 5분 만에 작성하신 시만 주구장창 써 오는 미래의 훌륭한 시인들이 있어서 연이어 2주 이상 쓰지는 못하도록 했다. 6학년인데도 기본 맞춤법조차 틀리는 아이들이 너무 많아서 맞춤법에 맞게 써야 한다는 규정도 마련해 놓았다.(아무런 근거없는 그저 개인적인 내 생각이지만 영어 교육이 강화되면서 아이들의 국어 맞춤법 문제는 더욱 심각해진 것 같다. 발령 초기만 해도 6학년에서 이렇게 맞춤법을 신경 써야 할 정도는 아니었다.)

아이들은 귀찮아 하면서도 자신의 글쓰기에 참 많은 내용을 담는다. 대부분 일기를 써 오는데 비록 인권침해의 우려가 있기는 하지만 이를 통해 아이들이 누구랑 친하게 지내는지, 어디에서 무엇을 하며 주로 노는지, 어떤 것을 즐겁다고 느끼는지, 가정환경은 어떤지 등 아이들을 둘러싼 다양한 정보를 얻고 이해할 수 있다. 친구 관계나 가정에서 일어날 수도 있는 만일의 사태에도 보다 잘 대응할 수 있다. 때로는 가족여행과 같은 일기를 통해 좋은 여행지나 데이트 코스 등의 정보를 얻기도 한다. 뿐만 아니라 특히 여자아이들의 경우 글을 통해 자신이 요즘 힘든 점(거의 대부분 친구 관계), 고민거리 등을 털어놓기도 하고 교사에게 서운한 점 등을 쓰기도 한다. 이런 경우 교사가 답장을 하는 등의 방식으로 의사소통의 도구로 활용하기도 한다. 심지어 새로 생긴 남친 이야기까지 수줍게 털어놓는 글을 읽을 때면 나도 모르게 아빠 미소가 지어지기도 한다.

여러 장점이 있지만 글쓰기 활동을 하기 전에 주의해야 할 사항도 있다. 우선 반드시 아이들의 동의를 거쳐야 한다. 아이들에게 글쓰기 활동의 필요성을 충분히 설명하고 아이들의 동의를 구해서 시행해야 하는 것이지 무조건 써 오라고 명령식으로 해서는 안 된다. 강제로 써 오는 글쓰기에는 아이들의 진심이 담기길 기대하기 힘들 뿐만 아니라 위에서 말한 것처럼 인권침해의 요소도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 하나의 주의 사항은 바로 비밀 엄수다. 마치 고해성사를 하는 신부님의 마음처럼 아이들이 글쓰기를 통해 드러내는 모습은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절대로 외부에 발설해서는 안 된다. 사소한 것이라도 글로 제출한 것이 다른 아이들에게 알려질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는 순간, 아이들이 생각하기에 비밀엄수 계약이 깨졌다고 느끼는 순간 글쓰기 활동은 그저 영혼없는 껍데기로 전락해 버리고 만다.

이제 한 아이가 써 온 글의 일부를 소개할까 한다. 어떤 활동에 어떻게 쓰려고 하는지 본인에게 충분히 설명을 하고 동의를 얻어 소개한다는 점을 미리 알려 둔다.

‘죽기 전에 해 보고 싶은 것들은 많다. 방탄소년단을 만나는 것, 마음껏 춤추고 노래하는 것, 이것들만 다 한다면 솔직히 난 삶에 미련이 없을 것이다. 나는 오래 살고 싶지는 않다. 어차피 결혼도 안 할 거고 책임을 져야 하는 가정은 만들지 않을 것이니까. 그냥 적당하게 살다가 적당하게 죽었으면 좋겠다. 한 번 사는 인생, 화끈하게 살고 싶다. 뭐.... 그냥.... 행복하게 살다가 행복하게 죽고 싶다.(그 행복 중에서 결혼은 빼겠어. 결혼은 미친 짓!) 연애도 안 할 것이다. 사전 순결.(죽기 전까지 순결을 지키겠어!) 그냥 그랬다.... (중략) 솔직히 말하자면 결혼, 하고 싶다. 그런데 비용도 많이 들고, 행동도 여러 제약이 걸릴 것 같아서 포기했다. 사랑도 좋지만 현실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사람 일이 쉽게 풀리지도 않을 것이고 돈도 엄청 많이 필요하고... 뭐하러 해. 집안 거덜 내려고 해? 정말 확고하다. 난 결혼을 안 할 것이다. 하고 싶은 거 다 하며 살 것이다.’

믿기 힘들겠지만 현재 우리 반 6학년 여자아이가 3월 27일, 4월 11일 두 번에 걸쳐서 쓴 글의 중간 부분을 발췌했다. 맞춤법과 6학년 여자아이 특유의 표현을 조금 손본 것 외에는 단 한 글자도 더하거나 빼지 않은 원본 그대로다. 그렇다. 정말 아이가 쓴 글이다.

   
▲ 지금 아이들은 자신의 감정이 시키는 대로 연애도 하고 좋은 사람과 가정을 꾸리는 꿈도 꾸지 못한다. (이미지 출처 = Pixabay)

물론 모든 아이들이 이 정도의 글을 쓰지는 못한다. 특히 남자아이들은 안타깝게도 여자아이들과 글의 수준이 엄청나게 차이가 난다. 그냥 어른들이 생각하는 아이들의 글 수준, ‘누구랑 어디 가서 뭐 먹었다. 재밌었다. 맛있었다.’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상당수 아이들의 글을 읽다 보면 어느 어른이나 평론가들보다도 더 냉철하고 객관적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비판하는 글을 대하기도 한다. 마치 거울처럼 있는 그대로, 어쩌면 더 사실적으로 뼈아프도록 잔인한 우리의 현실을 매우 직설적이고 비판적으로 보여 주기도 한다.

이 아이가 쓴 글을 보자. 이 아이의 글에는 여성으로서, 아이로서 현재 한국 사회를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어렵고 힘든 일인지를 적나라하게 보여 주고 있다. 연예인을 좋아하며 그저 순수하게 즐기며 살아가고 싶지만 그럴 수 없다. 자신의 감정이 시키는 대로 연애도 하고 언젠가 좋은 사람과 가정도 꾸리는 그런 꿈을 꾸고 싶지만 그럴 수도 없다. 자신이 처해 있는 지금의 상황은 아이로서 당연히 즐길 수 있는 것도 해서는 안 된다. 게다가 미래에도 여성으로서 주체적 삶을 살아갈 수 없는 좌절의 연속이다. 이런 잔인한 현실 속에서 아이는 당연히 포기를 선택한다. 열세 살의 여자아이는 이미 연애, 결혼, 출산 이런 것들을 포기했다. 결혼이란 집안을 말아먹는 것이고 결혼하고 출산한 여성은 자신의 삶을 포기해야 하는 우리의 지금 모습을 너무나 아프고 안타깝게 글로써 드러내 버린다. 이게 지금 우리의 현실이다.

지난 글에서 쓴 것과 같이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가장 잘하는 실수는 ‘너희들이 뭘 알아?’ 와 같은 무시하는 말이다. 그러나 위에서 보듯이 아이들은 너무나 맑게 우리의 모습을 확 비춰 버리고 드러내 버리는 경우가 종종 있다. 아이들의 위치에서 당연히 해야 할 말을 거침없이 하는 경우도 꽤 많다. 그런데도 어른들은 아이들이 어리고 경험치가 낮다는 이유로 그들의 말을 아예 들으려고 하지 않거나 깡그리 무시하는 잘못을 저지르곤 한다. 어쩌면 아이들이 자신들보다 더 현실을 잘 보여 주기도 하는데도 말이다. 아이들이 느끼는 게 무엇인지 함께 나누고 자신들이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하고 행동하는 것보다 무시해 버리는 것이 편해서 그러는 것일까? 아이들을 통해 자신들의 모습이 보이는 것이 너무나 부끄러워서일까?

이렇게 아이들이 현실을 인식하는 것을 나는 본능에서 찾아보곤 한다.(이 또한 근거는 없다.) 아이들은 어리고 연약한 존재다. 그러다 보니 아이들은 주변을 제대로 인식하지 않으면 본인의 생존을 위협받는 상황에 처하곤 한다. 특히 성범죄에 너무나 관대하신 우리의 대한민국에서 여자아이들은 더욱 위험한 상황을 알아서 피해야만 한다. 이러다 보니 아이들은 본능적으로 자신의 현재 상황과 자신이 살아갈 미래의 상황을 놀랍도록 냉철하게 인식하게 되며 평소에 이것을 드러내지는 않지만 글이나 다른 기회가 생기면 조심스럽게 자신의 생각을 드러내는 것이다. 결국 아이들은 우리 사회의 거울로서 역할을 할 수밖에 없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이 거울을 아프지만 반드시, 수시로 들여다봐야만 하는 것이다.

새로운 정부가 출범했다. 실로 오랫동안 길고 답 없는 동굴을 지나온 기분이다. 새로운 대통령은 국민에게 드리는 말씀에서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며,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라고 약속했다. 그렇다. 역대 정부에서처럼 이번 정부의 첫 시작도 말 하나 만큼은 누구에게나 멋지고 달콤하다. 그리고 현재까지는 그런 희망을 버리지 못할 만큼 나름 잘해 나가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방심하지 말라.

야당도, 여당도, 대학교수도, 외신도, 대단한 비평가들도 아닌 우리의 아이들이 두 눈 시퍼렇게 뜨고 이 세상이 어찌 돌아가는지 다 보고 있다. 5년이 지난 뒤에 새로운 정부와 우리 모두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또 앞으로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그 어느 역사학자보다 우리의 아이들이 말과 글로써 보여 줄 것이다. 부디 5년 뒤에는 아이들의 글이 지금처럼 포기와 체념이 아니라 희망과 새로운 계획으로 가득하길 기도한다. 아이들이 느끼는 변화가 진짜 변화이고 아이들이 느끼는 세상이 진짜 세상이다. 정부와 기득권, 어른들은 아이들의 인식을 두려워해야 한다. 그리고 누구보다도 아이들이 느끼는 세상이 달라지도록 목숨을 바쳐 노력해야 한다.

 
 
채성욱 교사(루도비코) 

2003년부터 인천과 경기도 초등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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