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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과 영성
하느님은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셨다[구티에레스 신부] 6월 11일(삼위일체 대축일) 요한 3,16-18
구스타보 구티에레스  |  editor@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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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6.08  11: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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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한 축일들이 이어지고 있다. 예수 승천 축일 뒤 성령 강림이 왔고 이제는 삼위일체 축일을 맞고 있다. 어떤 의미에서 삼위일체 축일은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의 생일과 같다.

아들을 보내어 구원하다

요한 복음서의 3장은 예수님의 메시지의 핵심을 표현한다. 3장 시작 부분에서 우리는 주님의 제자가 되기 위하여 회심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우친다. 예수님은 새로 태어나는 이미지를 사용한다.(요한 3,7) 예수님은 이 새로운 생명(3,11), 결정적이고 분명한 생명, 영원한 생명(3,15)을 증언하기 위하여 온 것이다. 그래서 성령이 내려온 것처럼(1,32) 예수님도 하늘에서 내려온 것이다.(3,13) 예수님은 그분의 구원 사명을 다 마치고 난 뒤에 하늘로 돌아갈 것이다.(3,13)

오늘의 복음 구절은 그러한 사명의 기원을 분명하게 표현한다. 즉 아버지이신 하느님의 사랑이 그 원천이다. 그분은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셨다”.(3,16) 이 구절에서 “세상”이란 말은 하느님을 거부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인간의 실제 혹은 역사라는 의미로서, 중립적인 뜻이다. 하느님의 가장 큰 선물은 당신의 외아들을 보내어 세상을 구원케 하는 것이다.(요한 3,17) 다시 말하자면 인간 존재와 하느님 간의 우정을 세우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성경의 구원의 의미다. 즉, 예수님이 가져오는 생명을 환영하는 것이다.

우리는 자유롭게 이 생명을 받아들이거나 거부하는 신앙의 문을 통해 이 생명 안으로 들어간다. “하느님의 외아들”(3,18)을 믿는 것은 그분의 증언과 메시지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것은 “자비하고 너그러운 하느님, 분노에 더디고 자애와 진실이 충만하신 분”을 믿는 것이다.(탈출 34,6) 이 구절은 우리가 성경에서 발견하는 하느님에 관한 가장 아름다운 묘사들 중의 하나다.

   
▲ 하느님은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셨다. (이미지 출처 = commons.wikimedia.org)

서로 뜻을 같이하다

믿음은 우리가 믿고 있는 하느님처럼 우리 자신들을 연민과 자비, 그리고 충실함이 넘치도록 만들어 준다. 우리는 오늘의 요한 복음 구절에서 “진리를 실천하는 이는 빛으로 나아간다”(요한 3,21)는 말씀을 듣는다. 예수가 우리에게 전해 주는 진리는 단순히 받아들이거나 동의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실천이요, 매일의 과제여야 한다.

동화하는 것(다른 이들과 함께 고통받는 것)은 기본적 삶의 권리가 수없이 침해당하는 가운데에서 생존을 위해 투쟁하는 사람들의 고통을 우리의 고통으로 삼는 것을 의미한다. 연민을 가진다는 것은(비참을 겪고 있는 사람들에게 우리의 마음을 온통 집중시키는 것) 어떤 불의의 상황도(예를 들면 오늘날 라틴 아메리카 백성들이 고통받고 있는) 우리에게 생소한 것이 될 수 없다는 뜻이다. 충실하다는 것(믿음을 가지는 것, 신뢰하는 것)은 우리의 결단과 투신을 항구적으로 견지하는 것이다. 오늘날 생명의 하느님을 증언하는 사람들이 될 때에 겪게 되는 어려움 앞에서 용기를 가진다는 뜻이다.

이런 모습으로 살아간다면, 우리는 바오로 사도가 코린토인들에게 마지막으로 한 권고들을 이해할 것이다. 즉 우리들이 부활의 기쁨을 누리고 “서로 뜻을 같이할” 것이라는 말이다. “사랑과 평화의 하느님이 우리와 함께 계실 것”(2코린 13,11) 이라는 살아 있는 희망이 우리를 지탱시켜 줄 것이다.

 
 
구스타보 구티에레스 신부
1928년 페루 리마 출생. 의대를 졸업한 뒤에 사제로 살기로 결단했다. 사제가 된 뒤에는 리마 가톨릭대학에서 신학과 사회과학을 가르치면서 리마 빈민지역에서 가난한 이들을 위한 사목을 했다. 대표적인 해방신학자로 빈민의 관점에서 복음을 증거해 왔다. 주요 저술로는 "해방신학"(1971) 외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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