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욜라 즐거운 육아일기 - 71]

가수 이승철의 ‘아마추어’라는 노래가 있다. 나는 이 노래를 듣기 위해 라디오 음악방송에 세 번이나 신청곡 문자를 보냈지만 뽑힌 적은 없다. 다만 어떤 청취자의 요청에 의해, 혹은 디제이의 선곡으로 운 좋게 노래를 듣게 되는 날은 있었다. 그럴 땐 하던 일을 멈추고 잠자코 노래에 귀를 갖다 댄다. 멜로디는 따라 부르기 쉽고 메시지는 더없이 다정하다. 마치 어릴 때 나를 예뻐하던 삼촌을 만난 것 같다.

삼촌은 ‘이번 달 시험에서 반에서 몇 등을 했는지’ 묻지 않는다. 대신 ‘뭐가 먹고 싶냐?’고 물었고 나는 늘 ‘돈까스’라고 대답했다. 어느 날 삼촌은 나와 동생을 시장 입구 2층 건물에 있던 ‘그랑나랑 경양식 음식점’에 데리고 가셨다. 그곳은 업라이트 피아노 한 대와 하얀 식탁보 위의 냅킨, 그리고 클래식 음악이 쉴 새 없이 흘러나오는 전축까지 갖추고 있는, 우리 동네에 막 상륙한 본격 양식당이었다. 때는 햄버거 가게들이 전국적으로 번성하던 무렵이었다.

나는 돈까스에 딸려 나오는 크림스프부터 숟가락으로 조심스럽게 한 입 떠먹었다. 그것은 입에 넣는 순간 사르르 번지다 목구멍 너머로 아련히 사라졌다. 이어서 돈까스 조각를 한 입 깨물면 평소 된장찌개나 고구마줄기볶음만 먹던 내게 ‘딩동’ 하고 미지의 세계로부터 온 초대장이 당도한 것 같았다. 어이없게도 그 미지의 세계란 다름 아닌 미국이란 동네였지만 나는 우리 동네에서 ‘그랑나랑 수제왕돈까스’를 통해 맛보는 것으로 충분히 동경의 마음을 달랠 수 있었다. 부족한 나머지는 늘 그렇듯 상상, 공상, 꿈, 소문, 이야기를 통해 뒷받침하면 되었으므로. 아무튼 그렇게 우리가 돈까스를 다 먹어 치울 때까지 소화에 방해될 만한 잔소리를 일절 늘어놓지 않던 삼촌. 그때의 삼촌처럼 이 노래는 이렇게 말한다.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기에
모두가 처음 서 보기 때문에
우리는 세상이란 무대에선
모두 다 같은 아마추어야.’

아마추어라고 ‘바보야, 메롱메롱~’하고 놀리는 게 아니다. ‘괜찮아. 아마추어니까 괜찮아.’하며 토닥이는 노래다. 그런데 이 노래에서 말하는 아마추어는 어떤 사람인지, 우리가 보통 알고 있는 그런 사람이 맞는지 어디 삼촌한테 물어보자. 삼촌은 뭐든지 내가 물어보는 걸 좋아하셨으니까. 그리고 삼촌은 모르는 게 없었으니까. 삼촌이 말씀하신다. 너울너울 노래의 선율을 타고 다독다독 내 어깨를 두드리면서.

‘아마추어는 무엇 하나 내세울 것 없는 사람이고 매번 실수투성이지. 그래서 지쳐 걸어가는 사람, 넘어야 할 산은 많은데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서 서성이는 사람이란다.’
‘나? 나 같은 사람이네?’
‘그래. 너랑 나, 우리 모두가 그렇지.’
‘그야 그렇지만.... 삼촌. 그러면 난 이제 어떻게 해야 하는 거야?’
내가 물었다. 삼촌은 한 입 크기로 썬 돈까스를 포크로 콕 찍어 내게 내밀며 말했다.
‘조금 늦어져도 상관없어. 그냥 즐기는 거지.’
‘정말? 그래도 돼?’
‘그럼. 네 곁에 있는 세 아이, 그 애들 눈을 보며 웃는 것처럼 말이다.’
나는 턱을 내밀고 입을 벌려 삼촌이 주시는 돈까스를 ‘앙’하고 받아먹었다.

그리고 삼촌은, 내 기억 속의 삼촌은 사라져 버렸다. 내 숙모의 남편이자 사촌동생들의 아버지로 바쁘게 살아가는 오늘날의 삼촌에겐 미안한 일이지만 그 옛날 삼촌은 어디에도 없다. 마치 아무리 찾아다녀도 옛날과 똑같은 맛이 나는 크림스프와 돈까스를 다시는 먹을 수 없는 것처럼. 대신 나는 삼촌 같은 이 노래를 영원히 내 곁에 둘 수는 있을 것이다. 삼촌은 아실는지 모르실는지. 아닌게 아니라 내가 현재 더도 덜도 아닌 딱 적당한 아마추어로 살아가고 있는 것을. 시골살이 하면서 아이들 키우고, 살림하는 내 모습을 보면 그렇다. 얼마나 잘하는 게 없는지. 이건 뭐 남들이 나를 보고 ‘나는 저것보다는 잘할 수 있겠다.’는 희망을 주기 위해 살고 있나 싶을 정도다. 이것이 내 착각이 아니라 명백한 사실에 속한다는 것은 옆 동네에 얼마 전 새로 생긴 하얀 이층집과 우리 집을 간단히 비교해 봐도 알 수 있다.

▲ 이사 오는 해에 집 울타리 따라 심었던 넝쿨장미만이 무섭게 세력을 확장했다. ⓒ김혜율

그 집은 생긴 지 불과 반 년도 안 되었지만 마당에 고운 잔디가 자라고 있고, 비오는 날 건널 디딤석도 있고, 나무와 화초도 잘 정돈되어 있다. 한편 지은 지 60년쯤으로 추정되는 우리 집 마당은 주인이 바뀐 지 사 년째에 이르러도 흙과 잡초가 적당히 섞인 상태에서 더 나아질 기미가 안 보인다. 재재작년, 세 포대에 달하는 쌀겨와 이장님 댁 닭이 놀러와 싸 놓고 가는 닭똥이 버무려진 풍경에 비하면 문명화되었다고 볼 수 있지만 아직도 마당보다는 벌판에 가깝다. 꽃나무는 있던 것도 간수를 못한다. 앵두나무 한 그루와 모란꽃이 우리의 잘못으로 비실비실하지만 매년 봄이면 부활하는 신비에 감탄하면서 현상 유지하기에 바쁘다. 다만 이사 오는 해, 집 울타리를 따라 심었던 넝쿨장미만이 무섭게 세력을 확장했다. 가지치기를 해 줘야지 생각만 하고 전혀 안 해 줬더니 장미넝쿨이 가지를 뻗다 뻗다 결국 울타리를 집어삼켰다. 그러고도 힘이 남아도는지 할머니 집 대문까지 침범하고 있어 조만간 장미가지 대량 학살이 예상된다. 장미 가시에 찔리지 않으면서 저 ‘불타는 장미 화산 분화구’를 잠잠해지도록 만들 방법을 어서 찾아봐야겠다.

그럼 텃밭은 사정이 좀 나은가? 올해엔 오랫동안 상추를 뜯어 먹지 않고 키워 보았더니 훤칠한 ‘상추 나무’를 기르게 된 점이 특이하다. 기네스북에 ‘최장신 상추’ 부문이 있다면 등재되어 유명 인사가 되었을 테지만 그저 현실은 지인들의 경악과 타박이 넘치는 부끄러운 인생을 살고 있다. 파면 팔수록 내게 불리한 상황밖에 안 보이니 이쯤에서 집 외양 비교는 그만하고 주인의 면면을 살펴봐야겠다. 하얀 이층집의 안주인은 몸 어디가 안 좋아 서울에서 요양 차 내려왔다고 들었다. 하지만 골골한 모습은 어디에서도 찾을 길 없다. 선글라스를 끼고 빨간 민소매 드레스를 입고 마당을 거닐다 개밥을 챙겨 주는 모습이란! 패션 피플들도 소화하기 어렵다는 청앤청 코디(웃옷도 청, 아래옷도 청 소재로 입은 것)를 헐리우드 스타처럼 아무렇지 않게 입고, 메리와 동년배인 딸을 학교에 데려다줄 때는 미니스커트에 하이힐까지 소화시키는 발랄한 모습은 얼마나 활기찬지! 요양 중인 그 집 아주머니는 나날이 건강해지시는 게 틀림없다. 반면 나는 시름시름 하면서도 몸살 나면 애들은 어떡하나 걱정이 돼 몸살도 제 맘대로 못 나는 중인데 말이다. 물론 옷을 헐리웃 배우처럼 입는 일도 없다. 시골 정서에 무난한 패션에서 한 발도 나아가지 않고 있다. 하지만 그 집 아주머니가 잘못한 건 없다. 집 외양도 지극히 평범하다. 뭔가 엉성하고 별 진전이 없다가 결국 실패하는 쪽은 우리 집이고, 그 집의 주인장인 내가 아닌가.

이런 경향은 육아에서도 드러난다. 이래저래 프로답지 않기는 농사나 살림이나 가드닝이나 육아나 매한가지인 것이다. 하루는 소풍을 갔다 온 욜라가 담담하게 말했다.
“엄마, 오늘 거기는 과자를 싸 가면 안 되고 과일을 싸 가는 데래. 다른 친구들은 방울토마토나 딸기 같은 과일을 간식으로 싸 왔었어. 근데 나는 없으니까 선생님이 친구들 꺼 하나씩 얻어 주셔서 먹었어. (너무 해맑게) 엄마, 일곱 살 때는 꼭 과일을 싸 줘!”
하지만 나는 섣불리 미안해하지 않는다. 깜박할 수도 있지.
“응. 그래? 근데 과일 안 싸온 사람 몇 명 있었어?”
“음.... 한 명. 나 혼자 안 싸왔어.(자꾸만 해맑게)”
이럴 수가. 다른 엄마들은 다 프론가 보다. 결국 아이에게 잘못을 시인하고....
“윽. 정말? 아... 미안해. 엄마가 내년엔 꼭 과일 싸 줄게!”
또 하루는 메리가 학교가다 말고 머뭇거리며 말했다.
“엄마, 오늘 숙제 있는 것 같은데?”
“무슨 소리야? 숙제 없어.”
“아냐, 숙제 있어. 있다고!”
“에잇, 없다잖아. 숙제 절대 없으니까 그냥 학교 가!”
아아, 그날 학교 밴드 알림장을 확인하지 않은 엄마 때문에 숙제를 해 가지 않은 아이는 메리 혼자였다. 이런 일은 부지기수로 일어난다. 때문에 애를 키운다고 딴 걸 못한다는 것도 말이 안 된다.

이러고 보니 나는 거의 완벽한 아마추어가 아닌가. 거의 ‘아마추어’란 노래의 모델 수준이야. 내 일상을 그대로 담아낸다면 한편의 훌륭한 뮤직비디오가 되겠군. 자, 하지만 이런 내가 여기서 낙담하면 안 되는 거다. 그저 그런 아마추어에 머물기엔 억울하다. 그래서 나는 아마추어의 모범이 되고자 한다. 그 방법은 옛날 삼촌이 등장해 불러 준 이 노랫말로 이미 만천하에 드러났다. 삼촌은 나 보고 왜 더 잘하지 못하냐고, 그것밖에 못하냐고 말하지 않았다. 좀 더 노력해 보라고도 다그치지도 않았다. 삼촌은 ‘그냥 즐기라’고 하셨다. 그러니까 자꾸 잘 못하는 자기 탓을 할 게 아니라 그 시간에 인생을 즐기면 되는 거다. 나는 참 착하게도 그렇게 하기로, 정말 그렇게 살아 보자고 마음 먹는다. 세상에나, 아마추어가 아마추어답게 잘 살기 위한 이 얼마나 멋지고 쉬운 방법인지! 세상의 모든 아마추어들에게 이 방법을 권하고 싶다. ‘그냥 즐기는 거야!’

나는 어쩐지 이제는 내가 삼촌 마음에 쏙 드는 아마추어가 된 것 같아 기쁘다.

▲ 나는 아마추어의 모범이 되고자 한다. '그냥 즐기는 거야!' ⓒ김혜율

 
 

김혜율(아녜스)
(학교에서건 어디에서건) 애 키우는 거 제대로 배운 바 없이 얼떨결에 메리, 욜라, 로 세 아이를 낳고 제 요량껏 키우며 나날이 감동, 좌절, 희망, 이성 잃음, 도 닦음을 무한반복 중인 엄마. 그러면서 육아휴직 5년차에 접어드는 워킹맘이라는 복잡한 신분을 떠안고 있다. 다행히 본인과 여러 모로 비슷한 남편하고 죽이 맞아 대체로 즉흥적이고 걱정 없이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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