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여기 현장]

‘언론’의 무게감을 마음에 얹고 사는 것만으로도 기자로 산다는 것은 녹록지 않다.

촛불 대선으로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뒤, 고심은 더욱 깊어졌다. 비교적 옳고 그름이 뚜렷이 드러났던 이전과는 보도환경과 맥락이 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긴장하던 차에 터져 나온 이른바 ‘한경오 사태’도 몹시 당혹스럽지만, 일정 부분 ‘적폐’와 같은 보도 관행 역시 성찰과 쇄신의 대상이라는 데는 동의한다.

어떻게 중심을 잡아야 할까, 그동안 모르는 사이 베껴 오고 살피지 않았던 잘못된 ‘습’은 뭐가 있을까 고민하면서, 요즘 들어 더욱 불편해진 단어와 말들을 곱씹는 중이다.

‘보수 언론’, ‘진보 언론’ 그리고 어디선가 읽었던 “너희는 우리 편인 줄 알았는데...”라는 말이다. 이 말들에 대한 불편함과 개인적으로 ‘대안 언론’이라는 말을 의식적으로 피해왔던 이유는 같다.

‘언론’은 그저 언론 그 자체로서의 소명을 다하면 될 뿐, 그 앞의 수식어는 필요치 않다는 생각이다. 오히려 대안이라든가, 진보라는 단어를 붙이는 순간 그 사명이 왜곡되거나 보편이 아닌 어느 진영의 논리나 요구에 갇히게 된다는 경험에 따른 우려다.

게다가 “우리 편”이라는 말에는 더욱 그렇다. ‘보수 언론’이라 불리는 조중동을 비판하고 불매운동에 까지 나섰던 것은 그들이 보수 또는 반대편이어서가 아니라 “언론의 역할을 저버렸기 때문”이다. 언론은 인간적으로 가깝고 친한 이들에게도 언제든 비판의 날을 세워야 한다. 편을 든다면 그것은 인류 보편적 가치이고, 그 가치의 반대편에 있는 이들에게 “그것은 틀렸다”고 말할 뿐이다. 그래서 누군가의 마음에 드는 기사만 낸다면 그 순간 언론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또 한경오라는 소위 ‘진보 언론’을 둘러싼 상황은 그 정도만 다를 뿐,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역시 상당 기간 겪어 온 우리의 현실이기도 하다.

어떻게 쓰고, 어떻게 더 나아질 것인가. 최근 문재인 정부의 인사와 관련해 “위장전입”이 입길에 올랐을 때, 우연히 보게 된 글에서 조금이나마 힌트를 얻었다.

“어차피 '내로남불'이라는 비판은 문재인 대통령도, 지금 야당도 피해갈 수 없습니다. 국민 80퍼센트 이상이 국정수행 지지한다고 해서 언론이 청와대 편들 필요 없고 그래서도 안 됩니다. 그러나 국민들이 판단할 수 있도록 팩트는 정확히 취재해 줘야 합니다. '위장전입 논란...청와대 곤혹' '위장전입에 발목 잡힌 총리 인준' 이따위 구태의연한 내용의 기사들은 달라진 뉴스 수용자들의 눈높이를 절대 충족하지 못한다는 걸, 아직도 깨닫지 못한 언론인들이 많습니다.”

<MBC> 해직 기자 박성제 씨는 그의 페이스북에 이렇게 적었다. 맥락을 고려하지 않는 판단과 기술, 기계적 중립과 같은 구태를 넘어서려면, 또 많은 시행착오를 겪고 넘어질 것이다. 그러나 지금이 바로 그간의 한계를 넘어서기 위한 기회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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