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교회의 의장도 직접 뽑으시오

(마시모 파졸리)

현 교황은 아주 여러 면에서 새로운 모습이다. 여기에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구현하고 있는 여러 역설도 포함된다.

보기를 들어 보자. 그는 교회의 가장 높은 성직자인데도 반 성직주의적 언어를 쓴다. 그는 개혁자이지만 교황청을 손대지 않은 채 뒀다. 그리고 그는 세계 가톨릭의 지도자이지만 교황이 되기 전에는 아무런 중요한 국제 경험이 없었다.

그가 역사상 처음으로 비유럽-지중해 지역 출신 교황으로서, 세계화된 가톨릭교회의 첫 교황이라는 점에 아무런 의문이 없다. 하지만 그의 교황직이 띠는 세계적 차원은 그가 로마와 이탈리아의 교회에 (로마 주교와 교황으로서) 대하는 직무 태도와 이탈리아 바깥에 대하는 그의 직무와 태도를 비교해 보면 상황은 아주 복잡해진다.

이탈리아 교회가 직접 접촉하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모습과 이탈리아 밖의 가톨릭 신자들이 그에 관해 보고 듣는 것 사이에는 커다란 차이가 있다. 그리고 이 차이는 계속 벌어지고 있다. 2017년 5월과 6월에 그의 교황직이 보여 주는 이러한 측면이 확연히 드러난다.

그 첫 번째는 교황의 달력에서 이탈리아가 이전에 비해 올해 더 두드러져 보인다는 점이다. 그는 올해 이탈리아의 세 교구를 사목방문을 할 것인데, 대개 추기경이 교구장으로 있는 교구들로서, 밀라노, 제노바, 볼로냐다. 방문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이 방문의 본질이 문제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6월 20일에 보촐로(밀라노의 동쪽)에 있는 프리모 마촐라리 신부(1890-1959)의 무덤과 바르비아나(피렌체 근처)에 있는 로렌초 밀라니 신부(1923-67)의 무덤에 가서 기도하면서 이들 20세기 이탈리아 가톨릭교회의 아주 중요한 두 사제를 그가 존중함을 보여줄 것이다.

마촐라리와 밀라니는 생전에 교황청, 이탈리아 교계제도와 관계가 극히 안 좋았다. 전쟁과 평화, 교회와 정치(제2차 세계대전 전의 파시즘, 그리고 전후에 장기집권한 기독교민주당을 대하는 문제), 그리고 성직자로서 순명에 관한 그들의 입장 때문이었다.

이들의 묘소를 찾아가는 짧은 여행으로 프란치스코는 이탈리아 교회에 명확한 메시지를 보내고 있을 뿐 아니라, 이상적인 가톨릭 사제직을 바라보는 그의 관점을 강조하고 있다. 즉 가톨릭 사제는 자신의 장상들과 변증법적으로 상호작용할 수 있는 사목자이며 교육자여야 한다. 그리고 세상 속에서 교회의 역할에 대해 예언자적 목소리를 내는 사람이다.

이것은 비교하자면 미국 주교들이 베리건 형제들과 같은 급진적이고 평화주의자인 사제들을 존경하고 이들을 모든 미국 가톨릭 신자들의 모범이라고 가리키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다.(편집자 주- 대니얼 베리건 신부(1921-2016)와 그의 동생 필립 베리건(1923-2002)은 급진적인 평화운동가이며 빈곤퇴치, 성직자와 평신도 관계의 변화 등에 힘썼다.)

다음으로,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탈리아 교회에 제도적 발자취를 남기고 있는데, 이는 다른 곳에서는 완전히 같은 방식으로는 그가 할 수 없었던 일이다. 그는 이탈리아 주교회의를 여러 면에서 변화시켰다. 지난 4년간, 그는 이탈리아에 약 90명의 새 주교를 임명했는데, 이들 모두가 과거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이나 베네딕토 16세 교황이 골랐던 주교들과는 아주 다른 인물들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탈리아의 현직 주교의 1/3 이상을 임명했고, 그로부터 나타난 변화는 뚜렷하다. 가장 명확한 사례 하나는 내가 속한 페라라 대교구다. 교황은 극우파였던 루이지 네그리 대주교를 잔 카를로 페레고 대주교로 교체했는데, 그는 이탈리아 주교회의 산하 미그란테스(이주민) 재단의 책임자로서 오랫동안 이주민과 난민의 복지를 위해 앞장서 왔다.

게다가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탈리아 주교회의에 작지만 중요한 여러 변화를 줬다. 바로 지난주에 – 그가 그렇게 하자고 했기 때문에 – 이탈리아 주교들은 처음으로 주교회의 의장을 후보 세 명 가운데 투표로 뽑았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제1순위로 선출된 이를 비준하고 임명했다. 이전까지는 이탈리아 주교회의 의장은 그러한 선출 절차 없이 교황들이 원하는 사람을 직접 골랐었다.

끝으로, 프란치스코 교황은 지난주에 교황 직할 교구인 로마 교구를 교황을 대신해 다스릴 총대리로 추기경을 두던 근래의 전통을 깨고, 추기경이 아닌 주교를 새 총대리 주교로 선택했다. 요한 바오로 2세 교황과 베네딕토 16세 교황 치하의 거의 20년 가까이 로마 교구의 총대리는 추기경일 뿐 아니라 이탈리아 주교회의 의장이기도 했다. (편집자 주- 카밀로 루이니 추기경은 1991-2008년에 로마 교구 총대리를, 1991-2007년에 이탈리아 주교회의 의장을 맡았다.) 이는 제2차 바티칸공의회 뒤에도 오랫동안 이탈리아 주교들이 얼마나 교황과 교황청에 종속되어 있었는지를 쉽게 보여준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탈리아 교회와 교황청 간의 이러한 관계를 변화시켰다.

▲ 프란치스코 교황. (이미지 출처 = commons.wikimedia.org)
그리고 정치 측면을 보자. (이탈리아 교회와) 반대로,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탈리아 정치의 당파성으로부터 거리를 유지해 왔고, 개별 정치인들에게는 더욱 거리를 뒀다.

그는 이탈리아공화국의 세르조 마타렐라 대통령(기독교민주당원이자 제2차 바티칸공의회 정신을 가진 가톨릭 신자)과는 아주 관계가 좋지만, 교황청은 교황의 지시에 따라 이제 더는 이탈리아 신자들이 어느 당을 찍어야 할지 신호를 보내지 않는다.(편집자 주- 우리나라에서는 요즘 “기독교”는 “개신교”와 혼동되지만 유럽과 남미의 기독교민주당은 대개는 가톨릭 정당으로서, 과거에 교회는 신자들에게 기독교민주당 지지를 의무로서 요구했다.)

반면에 현 교황은 아주 넓은 범위의 여러 문제에 대해 아주 정치적인 지표들을 제시해 왔다. 이주민과 난민, 보건의료와 사회적, 경제적 정의 등. 한 예로, 프란치스코 교황은 지난 27일에는 제노바를 방문하고 공장 노동자들과의 질의-응답식 대화모임에서 “우리 경제의 병은 기업가들이 급격히 투기꾼으로 변하고 있다는 점이다”라고 했다.

그는 “기업가는 투기꾼과 혼동되면 안 된다”고 말하고, 이어서 “실력주의 사회는 아름다운 단어인 ‘실력’(merit)을 쓰기 때문에 아주 그럴 듯하지만, 이러한 세상은 윤리적으로 합법화하는 불평등의 방식으로 착취하고 이용하는 수가 많다”고 덧붙였다.

교황은 서구 영미권 가톨릭계에서 “번영 복음”이 스며드는 데 대해 아주 분명히 몇 가지 기준을 적용할 수 있다고 했다.

“이른바 실력주의 사회의 이차적 결과는 가난의 문화가 변한다는 것이다.”
“가난한 사람은 가치가 없고 따라서 비난받을 존재로 여겨진다. 그리고 가난이 가난한 이의 잘못이라면, 부자는 무슨 짓을 하든 다 면책된다.”
“이것은 욥의 친구들이 그의 불운은 그 자신의 책임이라고 설득하려고 했던 바로 그 논리다. 하지만 이는 복음의 논리가 아니고, 생명의 논리도 아니다. 복음 안에서 실력주의는 방탕한 아들의 우화에 나오는 형의 모습에서 보인다.”

이러한 말은 한 사업가가 던진 질문에 대한 대답이었다. 그리고 교황이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만난 지 사흘 뒤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는 교황이 현대 경제와 현대 자본주의에 대해 말한 가장 강력한 연설이었다.

교황은 지난 2015년에 미국을 방문했을 때 등에는 여러 문제에 대해 예언자적으로 명확히 이야기할 기회가 전혀 없었는데 이번에 제노바에서는 기회를 만났다. 그는 지금까지는 로마 교황청을 개혁하는 어려운 과정을 피해 왔으나, 이탈리아 교회에는 이탈리아 주교회의를 통해 몇 가지 변화를 이뤘으며, 이는 이탈리아의 평신도와 성직자들이 이미 느끼고 있는 바다.

이탈리아에서는 가톨릭 신자든 아니든 간에, 프란치스코 교황의 사회-정치적 메시지를 다른 나라에 비해 훨씬 더 자주 듣기 쉽다. 그가 어느 나라로 가거나 어느 나라의 국가원수가 그를 찾아오거나 하는 때(지난주 트럼프처럼)에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귀를 세운다.

즉, 이탈리아에 작용하는 일의 법칙은 다른 나라와는 같지 않다. 교황이 부딪히는 이러한 문제들 가운데 하나는 이탈리아인이 아닌 바깥의 가톨릭 신자들은 이탈리아 신자들이 프란치스코에게 접하는 것과 똑같이 접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영국, 미국, 아프리카, 아시아, 심지어 자신의 출신지인 남미에서보다도 이탈리아에서는 더 직접 움직이는 것이다.

사람들은 그가 아르헨티나 출신이므로 로마와 이탈리아에는 (이전 교황들보다) 관심을 덜 기울이고 세계 교회가 부딪힌 문제에만 거의 집중할 것으로 예측했다. 하지만 교황직은 로마의 주교이며 보편교회의 최고사목자라는 두 가지 차원을 지니며, 이 두 차원은 여전히 서로를 필요로 한다. 그리고 프란치스코 교황은 가톨릭세계의 보편 차원과 로마를 아주 뛰어난 방식으로 다시금 연결해 왔다.

세계에 봉사하는 교황직이 여전히 로마와 이탈리아에 쓸모가 있다는 점이 드러난다. 그리고 프란치스코 교황은 교황의 강론대를 효율 있게 쓰는 법을 알고 있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 신학적으로, 건축학적으로, 전례적으로, 그리고 사법적으로 약 2000년의 긴 길을 걸어 모습을 갖춰 온 그 강론대다.

기사 원문: https://international.la-croix.com/news/pope-francis-italian-gap/5268?utm_source=UCAN&utm_campaign=From-our-partners&utm_medium=Referr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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