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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산딸기 천국[부엌데기 밥상 통신 - 39]
정청라  |  editor@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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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5.26  14:2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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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맘때면 딸기 이야기를 안 하고 넘어갈 수 없다. 아침에 눈뜰 때부터 해 질 무렵까지 수시로 딸기밭을 들락거리며 딸기를 따 먹는 건 굉장히 짜릿한 체험이기 때문이다. 처음엔 한두 알이 익어 딸기 한 알도 넷이서(다울, 다랑, 다나, 나) 조금씩 쪼개어 나누어 먹었다면 요즘은 딸기 수확이 늘어서 하루에 두세 주먹씩은 딴다. 그러자 아이들에게는 새로운 바람이 생겼다.

"엄마, 이걸로 딸기 주스 만들어 먹고 싶어."
"좋아, 그럼 이 그릇에 딸기를 모아서 가져와."

   
▲ 어렵사리 모은 딸기로 만든 딸기주스로 주스 타임! 캬아, 바로 이 맛이야~ (다나는 손으로 먼저 먹는다--;) ⓒ정청라

따는 족족 입으로 넣던 아이들은 먹고 싶은 것을 꾹 참고 딸기를 그릇으로 하나 가득 모아왔다. 그걸 식탁 위에 올려놓고 점심 먹은 뒤에 주스를 만들기로 했는데, 다랑이가 몰래 와서 하나둘 먹고, 다나가 보챌 때마다 한두 알씩 입에 넣어주니 어느새 그릇이 허전하다. 그 사실을 알아챈 다울이가 가만히 있을 리가 없다.

"뭐야, 누가 딸기 다 먹었어. 박다랑 너지?"
"다나도 같이 먹었다고."
"딸기 주스 만들기로 해놓고 다 먹으면 어떻게 해!"
"또 따면 되지! 행아는 나쁜 잔소리쟁이!"

그렇게 싸움이 붙어서 토닥거리는 통에 분위기가 아주 사나워졌다. 내가 아무리 잔소리를 하고 야단을 쳐도 둘 사이 신경전은 끝나질 않고 결국 딸기 쟁탈전이 벌어졌다. 서로 딸기를 빼앗기지 않으려고 안 익은 딸기까지 먼저 따먹는 사태가 발생한 것이다. 하도 어이가 없어서 나도 소리를 꽥 질렀다,

"잘 익어야 더 맛있는 거 몰라? 딸기가 더 기다려 달라고 하는 소리가 안 들려? 너희들 자꾸 그러면 딸기밭 요정 할머니가 더는 딸기를 안 보내 주실지도 몰라!“

그렇게 해서 억지로 상황을 진정시킨 뒤에 함께 저수지 둑에 가 보자고 했다.

"산딸기 있나 없나 가 보고 오자. 뽕나무에 오디 익었는지도 보고....“

   
▲ 따는 건 오래 걸려도 먹는 건 순간! 사진 찍으려고 일부러 남겨 놓은 산딸기를 집어든 다랑이가 "엄마, 이제 먹어도 돼?" 노래하고 있다. ⓒ정청라
산딸기도 산딸기지만 몸을 움직여 산에 가서 뭉친 감정을 흩뜨리고 새로운 기운을 얻어 오기 위함이었다. 그러니까 산딸기는 아이들을 일으켜 세울 핑곗거리였을 뿐 진짜 목적은 아니었다. (왜냐, 며칠 전에 산딸기 따 먹으러 갔을 때만 해도 따먹을 만한 변변한 알맹이가 없었기 때문이다. 알이 너무 작거나 안 익어서 단단한 거, 벌레가 빨아먹어 쪼그라든 게 대부분이었다. 올해는 산딸기가 흉년인가 싶게 너무나 보잘것없었다.)

헌데, 이게 웬일인가! 며칠 사이에 사정이 달라져 있었다. 여기서 반짝, 저기서도 반짝반짝.... 먹음직스러운 알맹이가 주렁주렁한 거다. 다울이도 나도 깜짝 놀라 소리쳤다.

"우와, 산딸기 천국이다!"

그렇다, 우리 눈앞에 산딸기 천국이 펼쳐져 있었다. 저수지 둑 아슬아슬한 비탈 곳곳마다 산딸기 붉은 알들이 밝게 빛나며 손짓을 했다.

"어서들 와요. 기다리고 있었어요. 마을에서 산딸기를 따 먹을 사람은 당신들뿐이에요~"

그 목소리는 아주 매혹이었다. 그러나 워낙 경사가 심하고 산딸기나무 가시덤불이 마구 뒤엉켜진 상태라 산딸기를 따기가 쉽지는 않을 것 같았다. 용감한 왕자가 공주를 구하듯이 산딸기를 따려면 배짱과 용기가 필요했다.

"얘들아, 위험하니까 여기서 기다리고 있어. 엄마가 따 올게."
"나도 따고 싶어."
"안 돼. 잘못 하면 크게 다칠 수도 있어."
"엄마, 나는 엄마보다 비탈을 더 잘 타잖아.“

어떻게 말릴 수가 없어 다울이랑 같이 비탈길을 따라 내려가 산딸기를 따는데 우거진 숲 가시덤불 속에서 산딸기를 따내기란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니었다. 그렇지만 탱글탱글 달콤한 빨간 열매를 아이들 입에 넣어줄 생각에 스파이더맨처럼 아슬아슬하게 바닥을 딛고 선 채 발바닥에 힘을 빡 주고 한 알도 놓치지 않으려고 정신을 집중하면서 작업을 수행했다. 내 등 뒤에 업혀 있는 다나는 좋다고 엉덩이를 들썩거리고 다울이는 콧노래를 흥얼거리고....

아슬아슬하면서도 신이 나서 어쩔 줄 모르는 가운데 가지고 간 작은 그릇에 산딸기가 가득 담겼다. 이제는 여분으로 가지고 간 비닐봉지에까지 딸기를 담아 넣고 있는 있는데 저수지 둑에서 기다리고 서 있던 다랑이가 자꾸 나를 불렀다.

"엄마, 언제 와? 나도 딸기 따고 싶어."
"조금만 더 기다려. 내려온 김에 다 따고 가야지."

내가 다랑이를 말로 달래고 있는데, 다울이가 다랑이를 향해 곧장 튀어 올라가며 이렇게 말했다.

"다랭아, 형아가 산딸기 가지고 간다. 너 주려고 크고 맛있게 생긴 것만 모았어."

그러더니 금세 다랑이 곁에 올라가 한 움큼 손에 넣은 것을 내밀고는 사이좋게 산딸기를 나눠 먹는 거다. 자기들이 언제 싸웠었냐는 듯이 다정한 모습으로 말이다.

   
▲ 젓가락에 쏙 꽂아 딸기 막대 사탕! ⓒ정청라

산딸기를 입에 넣는 아이들 표정에서 사랑에 빠진 이의 행복감 같은 것이 뚝뚝 묻어나는 듯했다. 저 아이들은 지금 산딸기와 사랑에 빠진 것이다. 그건 내 등 뒤에서 산딸기를 받아먹으며 소리를 꺄악꺄악 질러대는 작은 아가씨도 마찬가지일 터! 우리는 넷은 그렇게 천국을 경험했다. 하늘 어머니 아버지가 베풀어주신 큰 사랑을 느끼며....

그러고 보면 산딸기는 우주의 은총과 접속하게 하는 작고 앙증맞은 입구 같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가시덤불이라고 하는 험난한 관문을 통과해서 보석 같은 열매를 손에 쥐고 입에 넣는 순간 다함 없고 막힘없는 큰 사랑을 느끼게 하는, 그렇게 해서 우리 자신이 사랑과 한 몸 되게 하는....

산딸기 덕분에 활짝 웃고 더불어 흥겹게 노래 부르는 우리 아이들이 그 사실을 바로 증명하고 있지 않은가. 그러니 산딸기는 한낱 주전부리 간식 정도의 의미가 아니다. 돈 주고는 살 수 없는 어마어마한 사랑, 천국의 열쇠 같은 것이다.

 
 
정청라
산골 아낙이며 전남지역 녹색당원이다. 손에 물 마를 날이 없이 늘 얼굴이며 옷에 검댕을 묻히고 사는 산골 아줌마. 따로 장 볼 필요 없이 신 신고 밖에 나가면 먹을 게 지천인 낙원에서, 타고난 게으름과 씨름하며 산다.(게으른 자 먹지도 말라 했으니!) 군말 없이 내가 차려 주는 밥상에 모든 것을 의지하고 있는 남편과 아이들이 있어서, 나날이 부엌데기 근육에 살이 붙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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