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교리 렌즈에 비친 세상 - 박용욱]

1983년을 살았거나 그 뒤에 태어난 사람이면 누구나 목숨을 빚진 사나이가 있다. 스타니슬라브 페트로프, 그는 우발적 핵전쟁으로 인류가 절멸할 수도 있었던 1983년의 어느 날 냉철한 판단으로 세상을 구한 옛 소비에트 연방 방공장교였다.

우리에겐 KAL기 격추사건으로 기억되는 1983년은 미국과 소련 간의 신 냉전이 한창이던 해다. 미 대통령이 소련을 악의 제국이라 칭하며 원색적 비난을 던졌고, 그 해 나토(NATO)는 전면적 선제 핵공격을 상정한 대규모 군사훈련을 예정해 두고 있었다. 당시 미국과 소련 양국은 ‘상호확증파괴’(Mutually Assured Destruction)에 기반한 ‘공포의 균형’(balance of terror)을 이루고 있었는데, 말하자면 한쪽이 다른 한쪽을 공격할 경우 “너 죽고 나 죽자” 식의 보복으로 공멸하는 상황을 만듦으로서 역설적으로 전쟁 위험을 억제하는 극단적 대치 상태였던 것이다.

그러던 1983년 9월 26일 0시, 소련 핵전쟁 관제센터에 인공위성이 보낸 경악할 경보가 전달된다. 미국이 대륙간 탄도탄을 발사했다는 경보였다. 처음 미사일 1대를 탐지했던 인공위성이 곧 5대로 경보를 격상하는 사이, 계획된 시나리오에 따라 관제센터는 비상 상태에 돌입하게 되고, 이날 당직 장교였던 스타니슬라브 페트로프의 판단에 따라 핵전쟁이 개시될 일촉즉발의 상황이 전개된다. 인류 멸망 시나리오의 개시 여부가 페트로프의 손 하나에 달린 것이다.

바로 그 순간 페트로프는 냉정하고 침착한 판단력을 발휘한다. 미국이 핵전쟁을 시작한다면 겨우 다섯 발의 미사일만 발사할 까닭이 없다고 본 페트로프는 반격하는 핵미사일 발사를 취소시킨 다음, 컴퓨터 오류라고 상부에 보고한다. 인류의 역사가 처참한 핵전쟁으로 막을 내리려는 찰나, 극도의 긴장감을 이겨내고 현명한 결정을 내린 페트로프가 그 자리에 없었다면 우리 중에 아무도 오늘을 볼 수 없었을지 모른다. 사건이 발생한 뒤에 자국의 시스템 결함을 숨기려는 소련 당국에 의해 영웅 대접은커녕 한직을 떠돌아야 했던 그는 1998년에야 이 비밀이 공개되면서 세계 시민상과 유엔의 표창을 받게 되었다.

▲ 옛 소비에트연방 방공장교였던 스타니슬라브 페트로프의 당시 모습과 최근 모습. (이미지 출처 = alchetron.com)

"지구 최후의 날 기계"(Doomsday Device)를 막아선 한 사람의 냉철한 판단력과 용기가 우리가 알지도 못하는 사이에 모두의 생명을 구했다는 사실은, 역설적으로 우리가 단 한 사람의 오판이나 단순한 기계적 오류로도 모든 것을 잃어 버릴 수 있는 위험 아래 살고 있음을 반증한다. 페트로프가 아닌 다른 당직 사령이 그날 핵탐지용 인공위성을 담당했다면 이후의 역사는 과연 어떻게 되었을까? 첨단의 강력한 무기를 가지면 가질수록 평화가 더 강고해지리라는 세간의 추측은 군비 경쟁이 가열될수록 우리가 파 들어가는 죽음의 덫도 더 깊어진다는 사실을 외면한다.

인류는 양차 세계대전 이후 대결과 갈등 속에 군비 경쟁을 거치면서, 한 올의 말총에 매달린 다모클레스의 칼 아래 앉아 있는 스스로를 보게 되었다. 군비 축소와 평화 운동은 그래서 세계적 흐름이 되었고, 강력한 무기를 가져야 것이 평화가 있다는 순진한 낙관이 실은 폭탄 위에 침대를 올려 놓는 허상에 불과함을 눈치챈 사람들의 수도 늘어났다.

그럼에도 우리 사회는 평화를 위한 대화에 인색하고 군비경쟁에 집착하는 단계를 쉽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정부 통계를 보더라도 남북 간의 국방비 지출에서 남한이 우위를 차지한 시점이 벌써 40년 전이고, 이미 1980년에 남한 국방비가 북한의 두 배를 뛰어넘었다. 국방비 격차는 이후로 계속 커져서 심지어 남한이 북의 44배 이상을 국방비로 지출한 해가 있는가 하면, 작년에도 30배 이상의 국방비를 투입했다. 도대체 얼마나 더 많은 무기를 갖추어야 할 것이며, 언제까지 종북 타령에 안보위기론 노래를 불러야 할 것인가. 부디 새 정부가 대화와 타협으로 평화의 물꼬를 틔울 수 있기를 앙망한다.

 
 
박용욱 신부(미카엘)

대구대교구 사제. 포항 효자, 이동 성당 주임을 거쳐 현재 대구가톨릭대학교 의과대학과 간호대학에서 윤리를 가르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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