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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한 기억을 위해....[수도자가 바라본 교회와 사회]

기억
– 과거의 사물에 대한 것이나 지식 따위를 머릿속에 새겨두어 보존하거나 되살려 생각해 냄.
망각
– 어떤 일이나 사실을 잊어버림.

“광화문에서 새 대통령의 청와대 향한 행렬을 보았어요!”

공동체 단체 카톡방, 여러 장의 사진과 함께 올라온 글은 온 공동체를 떠들썩하게 만들었습니다. 까만 차 위로 몸을 반쯤 내밀고 웃는 얼굴로 손을 흔들고 계시는 새 대통령의 사진과 함께 올라온 동영상에는 많은 사람들의 목소리가 담겨 있었습니다. “대통령님 힘내세요!!”

사저에서 동네 사람들과 인사한 소식, 직원 식당에서 청와대 식구들과 함께 식사한 이야기, 기자들과의 산행 이야기. 몇 년 동안 들었던 대통령 소식보다 더 많은 이야기를 이 짧은 기간 동안 듣고 있는 듯합니다. 소소한 일상의 이야기들이 신선하게 들립니다.

인천공항에서의 비정규직 대책 발표, 세월호참사 때 돌아가신 기간제 선생님의 순직 처리 등 어쩌면 당연한 이야기들이 새롭게 다가오는 것은 슬픈 일입니다. 아니, 모든 것이 조금씩 제자리를 찾아 가고 있다는 기쁜 소식일 겁니다. 마치 미치도록 흔들리던 나침반이 제자리를 찾아가듯 말이죠.

2000년 전 사람들은 자신들을 짓누르는 상황에서 임계점을 경험했습니다. 귀여운 어린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던 예수님을 보고 새 시대를 예감했던 군중들은 벗은 겉옷과 꺾은 나뭇가지를 길에 깔며 그분을 맞았습니다. 그랬던 군중은 얼마 지나지 않아 무서운 군중으로 변해 예수님의 십자가형을 외쳤습니다.

그들은 왜 그랬을까요?
극한 임계점에서 자신들이 원하는 것이 이뤄지지 않아 실망했던 것일까요?
아니면 망각의 늪에 빠져 자신들이 환호하며 기뻐했던 사실을 잊은 것일까요?
새로운 시대가 두려운 누군가들에 의한 많은 이야기들이 그들의 마음을 흩어 놓았던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 5.18 기념식 때 문재인 대통령이 슬퍼하는 유족을 안아 주었다. ⓒ박소연 로사 수녀

우리는 많은 일들을 기억하고 또 잊어 버립니다.
가끔 정말 잊고 싶은 일은 온몸의 뼈 마디마디에 새겨져 아픔을 안고 살아야 하기도 하고요. 정말 사랑했던 사람의 얼굴이 잊혀 골똘하게 생각하고 생각해도 기억나지 않는 난감한 경우를 만나기도 합니다. 그러나 보통은 창조주로부터 받은 은혜로운 “망각”이란 선물 덕분에 새로운 일을 시작하고, 새로운 사랑을 하며 살아가죠.

이 은혜로운 선물은 종종 누군가의 의도에 따라 작용하기도 합니다. 반드시 잊지 않아야 할 일들이 다른 기억들로 덮어져 망각의 늪으로 사라져 버리는 일이 일어나기도 하는 거죠.

누군가는 위험한 기억이라 치부하여 지워 버리고 싶어 하는 많은 일들을 우린 잘 기억해야 합니다. 그것이 하느님께서 기억이란 것을 만들어 주신 목적대로 쓰는 것일 겁니다.

기억은 외부에서 정보가 반복되어 들어올 때 저장이 잘 된다고 합니다. 특별히 강한 감정은 그와 관련된 기억의 구조를 활성화시키기 때문에 기억력을 높이고 싶다면 감정과 연결해서 기억하는 것이 좋다고 합니다. 기억을 감정과 연결하려면 감정 표현을 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고 하네요. 특별히 즐거운 감정과 연결된 기억이 장기 기억으로 남는다고 합니다.

이 이론에 따르면, 우리는 이미 절대 잊을 수 없는 기억을 간직할 수 있는 엄청난 감정들을 나누었습니다.
여러 장소의 광장에서 우리의 마음을 확인했습니다. 세월호참사, 고 백남기 선생님의 죽음, 많은 사람들의 인권에 관한 투쟁들이 우리 각자 마음에 가지고 태어난 작은 불씨를 살아나게 만들었고 그것이 모여 큰불을 이루었습니다. 그 불은 어찌하지 못해 발만 동동 구르며 바라볼 수밖에 없었던 큰 기류를 멈추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새 문을 열었습니다. 이 모든 것은 우리가 함께 해낸 일입니다. 함께 흘렸던 눈물, 가슴을 치며 울분을 토했던 일들, 기뻐서 환호하던 그 모든 감정들을 잊지 맙시다. 차곡차곡 기억 저장고에 쌓아 두고 아이들에게 이야기해 줘야죠. “아브라함의 하느님, 야곱의 하느님, 이사악의 하느님”을 전해 주는 이스라엘 민족처럼 우리의 간절함을 하느님이 함께하셨음을 잊지 않고 기억하여 전해 주어야 합니다.

어쩌면 누군가는 이 모든 것을 위험한 기억이라 생각하고 지워 버릴 기회를 엿보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러기에 우린 너무 많은 것을 경험하고 함께 나누었습니다.
그렇게 소중한 기억이 결국 기억 너머로 사라질 뻔한, 여러 이야기들로 덮여 버릴 뻔한 세월호를 땅 위로 올린 것은 아닐까요? 덕분에 우리는 3년 만에 돌아오는 그들을 간절히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제 이 기억은 지워져 버리기엔 너무 큰 역사가 되어 흐르기 시작했습니다.
파도가 밀려옵니다. 천천히 아주 잔잔한 파도부터 시작입니다.
내 앞까지 오지 않을 듯했던 파도는 어느새 우리의 발목까지 온 듯합니다.
우리 소중한 이야기들이 우리의 아이들에게 중요한 기억이 되길 바랍니다.

그들에게 용기를 줄 수 있는 기억이 될 수 있길 바라며 긴 시간의 눈물들, 환호성들을 두 팔 가득 모아 봅니다. 그리고 더 큰 파도를 일으켜 보려고 큰 숨을 불어 봅니다. 우리의 간절함이 하느님께 더 가까이 닿도록 더 크게 숨을 불어 봅니다.

 
 

이지현 수녀(로사)
성심여고에 재직중이다.
청소년에게 삶을 노래하며 행복하게 살도록 돕는 꿈을 꾸며 살고 있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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