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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과 영성
신앙 대 신념[박병규 신부] 5월 21일(부활 제6주일) 요한 14,15-21
박병규  |  editor@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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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5.19  09:5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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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를 사랑하는 길은 그가 가르친 계명을 지키는 것에서 시작한다. 요한 복음에서 예수는 줄곧 사랑을 가르친다. 사랑을 두고 이런저런 신학적 혹은 신앙적 개념들을 끌어들이기 전에, 조용히 십자가를 바라보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 한다. 예수가 이 세상에 온 것도, 예수가 십자가를 진 것도 모두가 사랑 때문인데, 사랑은 무턱 대고 세상을 위해 내어놓는 한없는 “자기 양여”, 그 자체다.

끝없이 내어놓는 자리가 아버지, 아들, 그리고 신앙을 조금이라도 배우고 익히며 살고자 하는 모든 신앙인들이 만나는 자리다. 부활한 예수가 다시 찾아와도 여전히 예수는 비우고 또 비울 테고, 채우고 또 채우려는 우리들의 눈과 귀에는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을 게 당연할지 모른다.

세상에 속하는지, 아니면 진리의 영을 통해 하느님의 빛 안에 머무는 것인지 알아보는 건, 참 쉽다. 간혹 신앙을 이야기하면서 추상적 단어들을 연속해서 나열하면 깊다, 새롭다, 감동이다, 라고 말하는 분들을 많이 만난다. 그러나 그 단어들을 현실의 사건이나 사람과 연결해서 구체적으로 이야기하면 난데없이 각자의 신념과 이상이 거침없이 터져 나온다. 다양한 신념과 이상의 교류는 이른바 ‘민주주의’ 사회에서 지극히 정상적이고 장려할 일이나, 교류가 아닌 제 신념과 이념의 투사 정도로 여기는 이들의 말들은 피곤하거나, 짜증스럽다. 세상 논리에 휘둘리거나, 특정 신념과 사람에 휘둘리려고 진리의 영을 모시는 신앙인은 없을 테다. 그러나 우리의 경험칙은 진리의 영이 곧 제 신념과 이념에 일치된 것마냥 떠드는 이들이 꽤나 많다는 것이고, 신앙인들 역시 상당수가 그렇다는 사실을 다시 되짚게 한다. 진리의 영 안에 머무는 길은, 예수가 보여 준 길, 곧 십자가의 길을 걸을 때 가능하다. 내어 놓고, 비워 내고, 아무 것도 아닌 양 세상을 받아 주고 보듬어 주며 다독일 때, 가능하다. 그 어떤 조건도 없이, 제 자존감과 제 신념과 이념이 깡그리 무너지고 조각나도 사랑 하나 믿고 따르며 누구든 이해하려 덤벼드는 것, 그게 진리의 영 안에 머무는 참된 신앙인의 자세고 거기에 하느님은 우리와 함께하신다. 생각해 보라, 요한 복음의 ‘세상’이 예수를 받아들였던가. 거부와 외면의 상징인 ‘세상’을 예수는 사랑으로, 십자가로 껴안으셨다.

   
▲ 거부와 외면의 상징인 '세상'을 예수는 사랑으로, 십자가로 껴안으셨다. (이미지 출처 = Pixabay)

요한 복음을 읽다 보면 추상적 표징과 상징들의 연속으로, 육화한 하느님에 대해 잊어 버리기 일쑤다. 깊고 깊은 영적 진리를 추구하는 데 혈안이 되어 요한 복음을 읽다 보면 피 흘리며 십자가 진 예수는 영광과 사랑 가득한, 그래서 자비하기 그지없는 근엄한 하느님으로 대체되고, 그러다 보면 십자가 진 예수는 없어지고 부활의 영광 속에 머무는 예수만 기억에 남는다. 하느님이 이토록 나를 사랑하셨다며, 감격에 겨워한다. 제 입맛에, 제 욕망에, 제 정의감에 알맞는 예수는 없다. 예수를 아무 데나 갖다 끼워 맞추지 말아야 한다. 2000년 함께 만들어 온 피와 땀의 결정체인 우리의 신앙을 제 신념의 노리개로 여기지 말아야 한다.

촛불 들고 외치는 게 정의 자체가 아니고, 정권 교체한 것이 정의의 궁극적 승리가 아니며, 문재인 티모테오 형제가 대통령 되는 게 하느님나라의 완성이 아니다. 하느님은 그 누가 대통령이 되고, 그 누가 촛불을 들든지 간에, 더 가난하고 더 힘없어 촛불조차 들지 못하는, 정권교체는커녕 제 입 속에 밥 한 숟갈 털어 넣지 못하는 이들 사이에서 더 비워 내고 더 내어 주며 하루하루 살아 계신다고 나는 믿는다. 그런 하느님을 믿기 때문에 촛불도 들고, 갈등의 현장에 함께하기도 했고, 또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 누가 대통령이 되었건, 더 아프고 더 힘든 곳이 있다면 사랑 하나 믿고 그곳에 함께할 것이다. 우리는 무엇 때문에 신앙하는가. 5년짜리 정권 지지하려 신앙하는가. 그 정권이 우리가 신앙하는 천상 낙원이라도 되는가. 그 어떤 정권이 되었건, 아직 하느님나라가 오지 않았다면, 우린 아직 사랑해야 한다. 내 원수까지도....

 
 

박병규 신부(요한 보스코)

대구대교구 성서사도직 담당.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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