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티에레스 신부] 5월 21일(부활 제6주일) 요한 14,15-21

부활절 이후 매 주일마다 읽었던 것처럼, 우리는 계속해서 요한 복음을 읽어 나간다. 오늘의 말씀은 앞으로 다가올 성령강림을 기념하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다.

또 다른 보호자

요한 사가는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에 앞서 있었던 긴 고별담화를 우리에게 상기시킨다. 오늘의 복음 말씀에서 우리는 성령이 오실 것이라는 말을 듣는데, 그분은 앞으로 예수님의 사명을 계속하실 것이다. 주님은 성령을 “또 다른 보호자”(요한 14,16)라고 부르면서 암시적으로 당신을 언급하고 있다. “빠라 끌리또”라는 말(다시 말하자면 “보호자”)은 “함께 있음”, 방어자(개입하는 존재)가 된다는 의미다. 이것으로 우리는 예수님이 누구인지 알게 되는데, 그분은 친구들 옆에 머물고 친구들을 대변하고 옹호하는 분이다. 요한은 그의 서간에서도 예수 그리스도를 변호자로 부르고 있다.(1요한 2,1)

성자의 사명을 계속하기 위하여 성령은 오셔서 “당신들과 영원히 함께 계신다.”(요한 14,16) 그리고 우리는 성령이 우리 안에 계시기 때문에 그분을 알아본다.(14,17) 성령의 친밀함과 “함께 계심”의 주제에 또 하나 덧붙여지는 측면은 “진리의 성령”이다. 성령의 도움으로 우리는 하느님이 아버지요 생명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성령은 “거짓말의 아버지”와 반대다. 거짓의 아버지는 우리가 하느님의 자녀들이 지니는 자유로 행동하지 못하게 하며 “처음부터 살인자”(요한 8,44)다. 예수님과 성령은 그리스도인들의 공동체와 함께 계신다. 그분들은 공동체를 아버지와 일치하도록 이끈다.(요한 14,21) 그리고 또한 “모든 진리”(요한 16,13)를 깨닫게 해 준다. 우리는 요한 사가가 깨우쳐 주듯이 진리를 선택하고 실천에 옮겨야 한다.

▲ 성령은 "또 다른 보호자"이며 우리와 함께하는 영이다. (이미지 출처 = wikiart.org)

우리의 희망에 대해 설명하면서

주님은 우리에게 형제자매들과 함께 있기를 청한다. 성령을 받으면서(사도 8,15-17) 우리는 우리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보호자”, “지켜 주는 이”가 되어야 한다. 우리는 섬김에 초대된 것이며 우리들의 생각을 강요하라는 요청을 받은 것이 아니다. 이 사실은 우리가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살고, 나눔을 실행하는 전제를 제시한다. 예수님이 우리를 고아로 방치하지 않는다면(요한 14,18) 우리 역시 우리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고아로 방치해서는 안 된다. 이것이 참다운 예배이며, 주님을 우리의 마음속으로부터 경배하는 것이다.(1베드 3,15)

아버지께 복종함으로써 예수님은 우리에게 생명을 주었다. 주님으로부터 선물을 받은 우리들은 이웃을 존경하고 그들의 필요에 응답하고 그들의 고통과 삶의 문제에 함께해야 한다. 이 모든 노력들이 베드로가 우리에게 요청하고 있는 “그리스도 안의 선한 처신”(1베드 3,16)을 이루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의 삶의 문제에 주인으로 자리 잡지 않도록 해야 한다. 삶(생명)에의 권리는 모든 인간 존재의 가장 기본적 권리이기 때문이다.

그가 어떤 사람이든지 간에 이웃과 함께할 때에 우리는 우리 사이에 거하시는 성령 안에서 우리의 희망에 대하여 그들에게 설명해 줄 수 있을 것이다.(1베드 3,15)

 
 
구스타보 구티에레스 신부
1928년 페루 리마 출생. 의대를 졸업한 뒤에 사제로 살기로 결단했다. 사제가 된 뒤에는 리마 가톨릭대학에서 신학과 사회과학을 가르치면서 리마 빈민지역에서 가난한 이들을 위한 사목을 했다. 대표적인 해방신학자로 빈민의 관점에서 복음을 증거해 왔다. 주요 저술로는 "해방신학"(1971) 외 다수가 있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저작권자 ©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