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성욱 선생의 학교]

8년 정도 지난 것 같다. 학교 건물 밖에서 일을 하고 있는데 웬 50대 정도의 남자가 다가왔다. 희끗희끗한 짧은 머리에 작은 키의 남자 분은 다른 학교에서 우리 학교로 발령받은 선생님이셨는데 한눈에 보기에도 정상인과는 차이가 났다. 걸음걸이도 약간 이상하고 사람을 바라보는 내내 눈동자가 좌우로 심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허리에는 용도를 알 수 없는 손수건이 잘 접혀서 벨트에 끼워져 있었고 바지 뒷주머니에는 이상하리만치 두터운 지갑을 넣고 다녔다.

처음 만난 사이에 서로 소개 같은 것도 없이 본인 이름만 대뜸 말하더니 다짜고짜 지갑부터 꺼냈다. 지갑 속에는 자신이 예전에 나온 신문 기사들과 과거 자료들이 빼곡하게 꽂혀 있었고 그분 이름도 그 기사들을 통해 알 수 있었다. 왜 그렇게 지갑이 두터웠는지 이제야 알 것 같았다. ‘내가 몇 년도에 어떤 일을 했고.... 그걸로 어떤 상을 받았고.... 어떤 신문에 실렸는데 이게 그거고.... 그 다음에 몇 년도에는....’ 무려 30분 이상 그분의 일생 업적을 듣던 나는 도망치듯이 그 자리를 벗어날 수밖에 없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보이는 선생님들마다 다가가서 그렇게 일방적인 자기 자랑을 하고 다녔다. 한마디로 정상이 아니었다. 그러나 진짜 문제는 아이들과의 관계에서 터지고 말았다.

수업시간에도 수업은 진행하지 않고 툭하면 자기 자랑을 늘어놓기 일쑤였다. 눈동자가 떨리니 아이들과 눈맞춤조차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고 심지어 여자아이들이 입은 티셔츠에 영어가 써져 있으면 ‘이게 뭐라고 쓴거야?’ 라면서 손가락으로 그 영어 단어를 만지기도 했다. 알다시피 대다수의 티셔츠에 영어는 가슴 부분에 새겨져 있는데도 말이다. 전임교 교감의 부탁으로 담임교사를 시키지 못하고 과학 전담교사로 배정했는데 아이들이 그마저도 수업을 거부하기 시작했다. 특히 여자아이들은 몸서리를 칠 정도였다. 어쩔 수 없이 담임교사들이 들고 일어났다. 과학 수업에 보내지 않고 아이들에게 어떤 일이 있었는지 진술서를 쓰게 한 다음에 그걸 모아서 교장, 교감에게 전달하고 대책을 요구했다. 그러나 돌아온 답변은 그래도 뭐 어쩌겠나, 불쌍한 사람이니 담임들이 아이들 잘 달래서 수업이 진행될 수 있도록 해 달라는 것이었다.

급기야 학부모들까지 들고 일어나자 그제서야 교장, 교감이 움직이기 시작했는데 기껏 한다는 것이 자신들의 인맥을 총동원하여 그 문제를 일으킨 교사에게 명예퇴직을 권고하는 것뿐이었다. 완강하게 버티던 그 교사는 결국 친구들이 나서서 이러다가 불명예 퇴직을 할지도 모른다고 가족을 설득한 끝에 명예퇴임을 하게 되었는데 이미 한 학기가 모두 끝난 다음이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은 원래 정상적인 사람이었는데 갑작스런 사고로 뇌를 다쳤고 그 뒤로 이상 행동을 보였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이 학교 저 학교를 떠돌다가 결국 내가 있던 학교에서 마무리를 지었다. 지갑에 수북이 있었던 그 많은 자기 자랑 자료들은 어쩌면 나는 괜찮다라는 외로운 외침이었는지도 모르겠다.

▲ 비정상적인 교사들이 많은데도 별다른 조치를 할 수가 없다. (이미지 출처 = Pixabay)

이분이야 사고로 이상해졌다지만 원래 생각이 이상한 사람들도 많다. 잘사는 동네에 있는 학교에 근무하던 시절 40대 후반의 옆 반 여자 선생님이 입이 귀에 걸릴 정도로 웃으며 학년 연구실 문을 열었다. 자기네 반 아이가 미국에 다녀오면서 선물해 줬다는 작은 화장품이 손에 들려 있었는데 밤에 자기 전에 바르면 그렇게 좋다는 외국 유명 제품으로 작은 병 하나의 국내 판매가가 20여만 원에 달하는 고급 화장품이었다. 이 선생님은 시종일관 싱글벙글 웃으며 다른 여자 선생님들에게 실컷 자랑하고는 그렇게 비싼 뇌물을 바친 그 아이 부모를 ‘센스쟁이’라며 치켜세우기까지 했다. 정말 소름 돋는 인간이었다.

비단 나이가 많은 선생님들만 문제가 아니다. 최근에 만났던 30대 초반의 젊은 남자 교사는 담임을 맡은 1년 내내 온갖 문제를 일으켜 학부모와 아이들의 민원이 끊이질 않았다. 아이들과 소통도 되지 않았고 기본적인 수업도 제대로 진행하지 않아서 교감 선생님이 수업을 지켜봐야 할 지경이었다. 오죽하면 4학년 아이들이 스스로 조를 짜서 교장실에 찾아갔을 정도였을까. 그런데도 할 수 있는 조치가 없었다. 그렇게 버티기로 1년이 지나고 다음 해가 되어서야 결국 담임을 맡기지 않았고 수업을 보장할 수 없다는 이유로 주요 교과도 아닌 체육 전담을 시킬 수밖에 없었다. 긴 시간 동안 아이들에게나 동료 교사들에게나 상당한 피해가 아닐 수 없었다.

2016년도 교육부 통계자료에 의하면 교장, 교감 등을 제외하고 아이들의 수업에 직접적 영향을 미치는 초등 일반교사의 수는 25만여 명에 이른다. 어느 집단이나 그렇겠지만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있다 보니 사회적으로 높은 도덕성을 강요당하고 신체적, 정신적으로 건강해야만 하는 교사라는 특성에도 다양한, 이른바 비정상적인 사람들이 존재하게 된다. 과거에는 주로 경력이 많은 교사들을 중심으로 이런 사람들이 많았는데 요즘에는 정서적, 심리적으로 불안한 상태에 있는 교사들이 급증하면서 연령에 구분없이 이런 교사들이 존재하는 특징도 보인다.

▲ 이상한 교사를 만나는 아이들은 끊임없이 늘어날 수밖에 없고 고스란히 피해를 입는다. (이미지 출처 = Pixabay)
그런데 정말 큰 문제는 이런 사람들이 아이들과 동료 교사에게 막대한 악영향을 미치고 있는다고 하더라도 딱히 별다른 조치를 할 수가 없다는 점이다. 부정부패, 음주운전이나 성범죄 등 사회적으로 용인될 수 없는 범죄를 저지르지 않는 이상 재검증, 재교육은 물론이고 교육 현장에서 분리할 수 있는 어떠한 실질적 방법도 없다. 그저 할 수 있는 것은 위에서 쓴 것과 같이 담임교사를 맡기지 않고 지정된 과목만 지도하는 교과 전담 교사로 배치한다든지, 경기도의 경우 2년이 지나면 근처 학교로 전근 가도록 설득한다든지, 나이가 많으면 명예퇴직을 권고하는 정도밖에 없다. 그마저도 개인이 거부하고 교장이 책임지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더욱 아이러니한 것은 현재 기준으로 교사들은 수많은 평가를 받고 있다는 사실이다. 교장, 교감에게 받는 근무평정, 동료 교사에게 받는 다면평가, 학부모와 학생에게 받는 교원평가 등 최소한 3중의 평가를 받고 있는데 이러한 평가에서도 부적격 교사들은 절대 걸러지지 않는다. 교원평가에서 연속으로 낮은 점수를 받으면 강제로 정해진 연수를 받아야 하는 제도가 마련되어 있지만 애초부터 교원평가의 목적이 부적격 교사를 걸러내는 것이 아니라 교사들을 통제하는 데 있었기 때문에 실제적으로 아이들과 함께 교육활동을 펼치기에 적합하지 않은 교사들이 걸러지는 경우는 거의 없다. 교장에서부터 평교사들까지 그저 대충 끌어안고 있다가 우리와 상관없는 다른 학교로 보내 버리면 그만인 것이다. 그러다 보니 정말 재수없게 그 교사를 만나는 아이들은 끊임없이 늘어날 수밖에 없고 고스란히 피해를 입고 만다. 이는 그야말로 비극이다.

교사라는 것도 개인의 노동력을 제공하고 생계를 유지하는 데 필요한 재화를 제공받는 엄연한 직업의 하나다. 또한 직업으로서의 안정성은 개인과 그 가족이 먹고 사는 데 매우 중요한 요소인 것도 틀림없는 사실이다. 혹시라도 당장 그만두거나 쫓겨나면 먹고 살길이 막막해지는 것도 분명히 매우 마음이 아픈 일이다. 그러나 아이들에게 교사는 단순한 직업인 이상의 의미를 갖는 것도 매우 중요한 사실이다. 단순히 교사라는 이유만으로 아이들에게 생에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안겨 주기도 하고 세상을 날 수 있는 날개를 달아 주기도 하는 존재인 것이다. 우리 모두 교사에게 받은 상처 하나쯤은 다 갖고 있지 않은가? 그럼에도 교사들이 재검증 되고 재교육 받고 필요하다면 아이들과 분리되거나 아예 교육계를 떠날 수 있는 제도가 없다는 점은 매우 위험한 것이며 교사 스스로 지나치게 경직되어 있는 것이다. 이런 제도가 없거나 있다고 하더라도 유명무실하기 때문에 오히려 교권은 날로 추락하는 것은 아닐까?

물론 어떤 세력이 정권을 잡느냐에 따라 세상이 확 바뀌어 버리는 후진적 한국 사회에서 이러한 제도는 충분히 악용될 수 있는 약점도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제도 자체를 마련하지 않는 것은 다치거나 범죄에 악용될 수도 있다는 것을 이유로 가정에서 부엌칼을 모두 없애 버리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아이들이 정상적으로 교육받을 수 있고 동료 교사들이 안전하게 함께 성장해 갈 수 있도록 현장에서 물의를 일으키거나 정서적, 사회적으로 맞지 않는 교사들에게 대한 재검증, 재교육과 필요한 조치들은 반드시 마련되어야 한다. 그리고 우리 모두는 이 제도가 정상적으로 작동할 수 있도록 감시하고 운용해야 한다. 이제 철밥그릇은 재활용함에 집어넣고 예쁘고 고급스러우면서 잘 돌보지 않으면 깨질 수도 있는 도자기 밥그릇으로 갈아타야 한다. 이러한 변화의 가장 큰 수혜자는 아이들이 될 것이고 이는 곧 교사의 행복으로 다시 돌아올 것이기 때문이다.

 
 
채성욱 교사(루도비코) 

2003년부터 인천과 경기도 초등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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