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21일, 108일차 생명평화 오체투지 순례

흐르는 빗물에 비추어진 내 모습을 보며, 지난날 스스로 세상의 빛이 되고자 하였던 초심을 다시 살펴봅니다. 주인이 주인 노릇을 하지 못하는 세상에서 누구를 탓하기보다, 내 자신이 스스로 세상의 중심이 되고자 되돌아 볼 뿐입니다. 나를 낮추고 세상과 삼라만상에 대한 공경을 드리며, 인간으로서의 자존과 생명의 존귀함으로 평화를 일구겠다는 기도를 할 뿐입니다.

<명동성당을 출발하여>
빗물인지 눈물인지 모르게 끊임없이 뺨에 흐르고, 비옷을 입었지만 이미 온 몸은 축축하게 젖어들었습니다. 도로에 흥건한 빗물에 마음 망설이지만 하지만 그것도 잠시 곧바로 바닥에 몸을 던지듯이 내려놓고, 징소리 한번 명료하게 울리면 다시 몸을 곧추세우고 생명의 눈과 평화의 마음으로 사람의 길을 찾아가는 순례단은 다시 발걸음을 옮깁니다. 그리고 다시 징소리 울리고.

징소리와 순례자들의 호흡소리만 가득한 순례길이 오늘 명동성당을 출발하여 서울 시청 광장과 청계과장을 지나 조계사로 이어졌습니다.

아침부터 민주화의 성지였던 명동성당에는 많은 사람들로 북적였습니다. 희망을 상징하는 노란 비옷으로 단단히 무장한 젊은 청년들이 한가득 웃음으로 아침을 준비하였고, 속속들이 하루 순례길에 함께 희망을 더하기 위한 발걸음이 이어졌습니다. 비가 오는 쌀쌀한 날씨를 누구 하나 탓하지 않고, 자연에 흐름에 마음이 함께 동화될 뿐입니다.


명동성당에서 서울 시청과장으로 행하는 길. 순례단이 기우제는 참 열심히 지냈나 봅니다. 오늘따라 비가 참 많이 왔습니다. 덕분에 도로에 흐르는 빗물에 비추어진 또 다른 나를 발견하고 그 모습을 바라보며, 고인 물에 몸을 맡기며 절을 합니다. 더 없이 낮은 자세로 세상과 대지에 귀의하고, 더 낮은 위치에서 세상의 보잘 것 없이 작은 생명조차 귀하게 바라보며, 나를 세워서 세상을 바로 세우겠다는 일념으로 한 배 한 배 정성들여 기도할 따름입니다. 이 기도는 이 땅에 스스로 빛을 발하며 희망을 만들었던 수많은 마음들에 대한 귀의이며 경배입니다.


평소와 달리 빗물 흥건하고 지나는 차량 소리 더욱 크게 들리지만 참가자들 동요하나 없습니다. 쉬는 시간이면 서로 도닥이며 격려하고, 일부 참가자는 맨발로 순례길에 씩씩하게 참여하였습니다. 정토회에서 참석한 이선주 님은 “용산 참사 등에 관심 없었던 그동안의 삶에 반성을 하게 되었다”며, 순례 과정을 통해 “다른 사람의 보살핌을 직간접적으로 많이 받고 살았지만 보답은 하지 못했던 것에 대해 반성하며 이제는 남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을 주고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했다”고 하십니다.


이선주 님은 ”국민과의 융합을 하지 못하는 정부, 폭력적인 진압 방법을 쓰는 정부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고 싶다”고 하시고, 개인의 삶에 대해서는 “자연에 흐름에 역행하지 않는 삶이어야 한다. 이렇게만 하면 파괴적인 삶은 없지 않을까”라고 합니다.

<촛불의 마음이 기록되어 있는 광장을 거쳐>
노란 희망의 물결이 드디어 희망을 빛을 일구었던 시청 과장에 도착하였습니다. 시청광장에서 순례단을 반긴 것은 수많은 경창차량이었지만, 다행히 바로 철수하고 시청과장은 순례단의 순례행렬이 이어졌습니다.


스스로 이 땅의 주인이 누군지 자각하고 각성한 촛불로 일렁이던 서울 시청 과장. 그러나 이제는 주인 없는 공터로 전락하여 시민 없는 광장이 되어버렸지만, 여전히 역사는 이 과장을 우리 사회 민주화의 분기점을 가져온 광장으로 기록할 것입니다.


순례단은 서울 시청광장의 순례에 앞서 서로의 어깨에 손을 얹고 서로의 마음으로 비가 오는 추위를 이겨내었습니다. 서로의 어깨에 올린 내 손으로 생명평화를 염원하는 마음을 주고, 등 뒤로 전해오는 손길의 체온으로 사람이 살아가야 할 공동체의 마음을 받으며 기운을 내어 봅니다.


그리고 이제 다시 한 배 한 배 정성들여 기도합니다. 이곳에 스스로 빛을 발하여 세상의 등불이고자 하였던 수많은 희망에게 경배하고, 민주주의 역행의 시대를 맞아 절망하는 그 마음에도 역시 경의를 표하며 아직도 그들이 우리 시대의 희망임을 기억하고자 합니다.


얼마 전 행사장에 경찰병력이 난입하여 누리꾼과 난장을 펼쳤다는 서울 광장 무대에서 점심식사를 진행하고, 잠시 휴식을 취한 순례단. 누리꾼 다인 아빠는 촛불의 마음으로 막 내린 따뜻한 커피 한잔으로 순례단의 추위를 잊게 하여주고, 시청광장에서 출발하는 오후 순례길에 참여하기 위해 발걸음을 옮기는 시민들로 북적입니다.


불교참가자들의 간단한 예식 이후 진행된 오후 순례길. 여전히 내리는 빗속에서 생명과 평화의 길을 찾고자 하는 약 1천여명의 시민들이 사람의 길을 만들었습니다. 태평로를 따라 서울 광장을 출발하여 청계광장 초입에 도착한 순례단.


이 자리에서 지난 시절 우리 시대의 대안을 만들었던 세상의 빛에 감사하고, 스스로 주인 된 삶을 살아가지 못하고 있는 지금의 모습을 참회하기 위한 108배를 진행하였습니다. 누구도 구호를 외치지 않습니다. 다만 자신의 몸으로 자신의 마음으로 이 길을 기억하고 지금의 나를 기억할 뿐입니다. 이 와중에도 경찰은 대열을 끊어야 한다는 등의 말이 오가지만, 이처럼 평화롭게 진행되는 모습에서 무엇이 그토록 무서움을 느끼는지 모르겠습니다. 거리에서는 기자회견도 진행하지 못한다는 서울의 모습이 선진화된 사회인지 의문이고, 그 발상 자체에 연민을 느낄 뿐입니다.


청계광장의 모정교를 넘어 종로통을 거쳐 무사히 조계사에 도착한 순례단. 하루 일정을 마치며 불교계에서 준비한 시국법회 참석으로 하루 일정을 무사히 마쳤습니다.

<사람은 무엇이 되겠는가를 묻는 시국법회로 하루를 마무리하며>
한국 불교 총본산 대한 불교조계종 조계사 대웅전 앞에서 진행된 시국법회. 용산참사, 대운하 추진, 비정규직 확대, 방송법 개악추진, 공교육 약화 등 생명경시 ․ 민주주의 후퇴 ․ 환경파괴 ․ 양극화로 치닫고 있는 MB정부와 우리 사회를 뒤돌아보고, 참회와 성찰 ․ 변화를 통해 생명평화의 사회로 나아가기 위한 공명 마당으로 진행되었습니다. 불교방송 ‘행복한 미소’의 진행자 성전스님의 진행으로 실천승가회 사무처장이신 효진 스님의 집전으로 시작된 시국법회에서는 개회선언과 삼귀의 모심이 이저지고, 반야심경 봉독에 이어 내빈소개와 인사가 이어졌고, 순례단 소개와 화계사 합창단의 맞이 공연이 이어졌습니다. 뒤를 이어 정토회 지도법사 법륜스님과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의 대표이신 백승헌 변호사님, 시국법어를 통해 청화스님께서 우리 사회가 가야 할 길에 대한 귀한 말씀들이 전해졌습니다.


시국발언을 위해 연단을 오르신 법륜스님은 경전의 말씀을 통해 “백성 사랑하기를 외아들처럼 하는 사랑하고 가난하고 헐벗은 자를 사랑하는 사람이 훌륭한 왕”이라는 말씀을 전하며, “우리 사회는 적은 이익을 위해 자연을 파괴하고 운하를 만들려고 한다. 적은 이익을 위해 자연을 파괴할 가치가 있는가? 부처님께서는 타인의 불행으로 자신의 행복을 찾지 말라고 했다. 오늘날 우리는 정치 지도자들을 위해 부처님처럼 깨우쳐 주고 있는지 불자들과 승려들은 이 또한 반성해야 한다”고 합니다. “오체투지 순례가 비오는 날 몸을 던지며 진행되지만, 여전히 우리 지도자들은 눈을 뜨고 귀가 열린 사람이 없다. 불교는 세분을 적극적으로 지지하고, 이 나라 지도자들과 정치인들이 남북 간의 긴장해소, 국민의 편안함, 나아가 지구를 위해 환경정책을 펴고 서로 아끼고 사랑하도록 당부해야 한다”는 말씀을 남겼습니다.


백승헌 변호사는 "세분께 송구하고 수고 많으셨다. 가장 큰 말씀은 고맙다는 말씀이다. 길을 열고자 했지만 갈수록 냉정해 지는 사회를 마음 아파하심에 감사하다. 사람의 목숨도 자연의 생명도 없이 여겨지며, 용산참사와 연예인 자살, 청소년 자살 등 사회적 타살로 인해 소중한 생명이 죽었다. 성직자들은 말이 아닌 실천으로 권력과 부의 그릇된 길, 하심으로 깨닫게 해주셔서 감사하다. 우리의 정성과 뜻이 모이면 묘향산까지 갈 수 있으리라 믿는다"는 말씀을 남겼습니다.

시국법어를 위해 오르신 청화스님은 '공부는 오체투지를 통해 하면 되기에 법어가 아니라 개인 소견'이라시며, "오체투지는 사회를 향해 하는 말씀이다. 사람, 생명, 평화의 길은 우리가 잘못된 길에 대한 각성을 하고 새로운 출발점을 긋는 길"이라시며, "모든 사물은 진실만을 이야기 하며, 부처님은 할말 안할 말을 구분하였고, 유익하지 않은 말을 하지 않았지만, 정치하는 사람들은 거짓말로 도배하고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청화스님은 "오체투지"라는 법어문을 통해 "대답하라고 / 대답하라고 / 오체투지는 / 이마와 두 손과 / 두 발로 묻고 있다 // 지금 누군가 들고 있는 안장 앞에 / 왜 숲은 달리는 말이 되어야 한고 / 지금 어떤 사람이 벌리고 있는 말없는 주머니를 만나 / 왜 강들은 모두 돈이 되어야 하느냐고 // 가난해도 / 한 방울 흘리지 않고 / 머리에 고이 이고 온 물 / 그 물동이 마구 흔들려 / 출렁출렁 물방울이 튀기는 오늘 // 이미 새소리 끊어진 숲에는 / 왜 머루 넝쿨이 누렇게 시들며 / 고기가 사라진 그 강에는 / 왜 검은 안개가 자욱하느냐고 // 말해보라고 / 말해보라고 / 오체투지는 / 땅에 떨어진 것들을 낱낱이 보며 / 온 몸으로 묻고 있다 // 저 징그러운 탐욕들에 의해 / 풀도 나무도 / 흙도 바위도 / 다 무엇이 된다면 / 그 다음 / 사람은 사람은 / 무엇이 되겠느냐고"라는 귀한 말씀을 남기셨습니다.

이어서 현각 스님은 시국법회 호소문을 통해 "오체투지는 이 시대를 함께 살아가는 공업 중생으로서 우리 모두가, 왜 우리 스스로 우리의 삶을 이토록 황폐화시켰는지를 성찰해 보자는 것"이라며, "지금 우리 사회의 문제는 경제의 문제가 아니라 정치의 문제이기에 정치권과 기득권층이 진솔한 몸짓으로 국민의 삶속으로 들어와야 하며, 약자에 대한 배려는 기득권자의 도덕적 의무가 되어야 하고 그것이 모두가 사는 화합의 길이고 공생의 길"이라는 점을 강조하였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에게는 "어려운 요구가 아니라 그저 따듯한 손길과 눈물로 국민을 어루만져 주기를 바라며, 용산 참사의 해법도 바로 그것이라며 생명과 평화의 가치가 지켜지는 정치가 필요하다" 강조하였습니다. 불교계와 종교계에는 "불상생을 제1의 계율로 세운 종교에서 ‘살불살조’를 말하는 건, 생명 본연의 자유를 구속하는 어떤 권위도 인정하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명이 필요하며, 최고 권력자라 할지라도 허물이 있으면 꾸짖어 주시고, 국민들의 탐욕과 분노와 어리석음에 대해서도 그렇게 경책해 달라"고 호소하였습니다.


이후 발원문 낭독과 사홍서원으로 108일차의 기도순례길이 마무리되었습니다.

<함께하는 사람들>
- 수브라(프랑스) / 안현(서울) / 김세열(서울) / 최광수(인천) / 정중규(대구대학)이득광(남양주) / 오현철(서울교정사목위원회) / 법륜 스님 외 100여명(정토회) / 이항진(여주환경운동연합) / 중앙승가대학 100여명 / 한주영 사무처장 외 10여명(불교여성개발원) / 진정순(전국교육경영진불자연합회) / 화계사 50여명 / 안승길 신부 / 김한일 외 6명(원우회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 / 정상덕 교무(원불교)를 비롯하여 약 1천여명의 시민이 함께 하였습니다.

- 그리고 청화스님(前 조계종 교육원장) / 일면스님(조계종 군종교구장) / 법륜스님(평화재단 이사장) / 법안스님(실천불교승가회대표) / 진오스님(청정승가를위한대중결사의장)현각 스님(불교환경연대집행위원장) / 현종 스님(강릉불교환경연대대표) / 혜만 스님(구리·남양주불교환경연대대표) / 주경 스님(서산불교환경연대대표) / 지홍스님 / 김상희(국회의원) / 최문순(국회의원) / 양홍관 / 윤준하(환경운동연합대표) / 박원석 / 김재일(사찰생태연구소대표) / 원행 스님(월정사 부주지) / 혜일 스님(조계종 중앙종회 사무총장) / 정범 스님(종회의원)을 많은 분들이 시국 법회를 빛내주셨습니다.

<일정 안내 - 변동 가능>
● 5월 22일(금) : 조계사 대웅전(시작) - 서대문구 홍제동 SK주유소(종료)
● 5월 23일(토) : 노무현 전대통령 서거 관련 내부 논의로 인해 오후 순례 종료합니다.

<후원에 감사드립니다>
- 정토회, 서울시민, 혜만 스님(구리·남양주불교환경연대 대표), 대한불교조계종 조계사,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 보리심(조계사) 등에서 후원해주셨습니다.

* 순례 수정 일정과 수칙은 http://cafe.daum.net/dhcpxnwl 공지사항을 참고 바랍니다.

2009. 5. 21
기도 - 사람의 길, 생명의 길, 평화의 길을 찾아서
진행팀 문의 : 010-9116-8089 / 017-269-2629 / 010-3070-5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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