맑스코뮤날레 종교 세션, 서 변호사와 대수천 조명

맑스코뮤날레 종교 세션에서 천주교, 개신교, 불교 연구자들이 ‘종교와 극우의 결합’을 살펴보았다. 발표와 토론은 심도 깊은 결론은 없었지만, 각 연구자들이 관심을 갖고 있는 주제를 소개해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일반 참가자들과 의견을 나누는 수준에서 이뤄졌다.

‘만인만색’ 연구자네트워크에서 활동하는 백승덕 씨는 대한민국수호 천주교인모임(대수천) 운영위원 서석구 변호사(빈첸시오)의 1990년대 이후 행보를 살펴보며 “합법주의 노선을 견지하던 시민운동가가 전향한 뒤에 극우활동가로서 과격화하게 된 과정을 살펴보면 그가 거쳐 온 활동장들의 성격을 성찰해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여기서 서 변호사가 “합법주의 노선을 견지하던 시민운동가”였다는 표현은 노동운동, 급진적 변혁운동과 달리, 그가 대구를 중심으로 “여러 개혁을 요구하면서도 계급적이지는 않고, 여러 계급을 아우를 수 있는 형태의 합법적인 시민운동”에 참여했다는 의미다.

5월 12일 오후 성공회대에서 열린 맑스 코뮤날레 종교 세션에는 10여 명이 참여했다.

맑스코뮤날레는 마르크스(Marx), 코뮤니스트(communist), 비엔날레(biennale)를 합친 말로 각 분야의 연구자와 활동가 단체들이 모여 2년에 한 번씩 여는 학술문화제다. 종교 분야에서는 제3시대 그리스도교 연구소, 새길기독사회문화원, 우리신학연구소 등 진보 성향 그리스도교 연구단체들이 꾸준히 참여하고 있다.

서 변호사는 영화 “변호인”의 배경이었던 부산 학림사건(부림사건)의 판사로도 잘 알려져 있다. 다음백과 ‘부림사건’ 항목에 따르면 당시 대구지법 판사였던 그는 1981-82년 사건 연루자로 구속기소된 3명의 재판을 맡으면서,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하는 등 눈에 띄는 판결을 했다. 그 뒤 진주로 좌천성 인사 발령을 받은 그는 1983년 사표를 내고 대구에서 인권변호사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서 변호사는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부림사건 판결을 후회한다고 말했으며,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 과정에서 변호인단에 참여하며 화제가 됐다.

▲ 2014년 대한민국수호천주교인모임 회원 50여 명이 서울 예수회센터 입구에서 항의 집회를 열고 있을 때 서석구 변호사가 확성기로 말하고 있다. ⓒ정현진 기자

백승덕 씨는 서석구 변호사가 낙동강 페놀오염사고가 큰 문제가 됐던 1990년대 초반 낙동강살리기운동협의회 집행위원장을 맡던 시기의 대구, 경북 지역 시민운동에 대한 설명과 함께, “그가 활동했던 단체들은 대구경실련, 대구사회연구소 등 노동운동이나 민중운동과 거리를 두고 있던 시민단체들이었다”고 밝혔다.

서 변호사의 종교단체 활동 역시 “이처럼 강고한 합법주의 노선의 연장선”으로, 그가 한국 기독교교회협의회(KNCC) 대구 인권위원, 대구 YMCA 이사, 천주교 대구대교구 사회분과위원장 등으로 활동했다고 백 씨는 설명했다.

백 씨는 서 변호사는 김대중 정부 시기 중반에 불거진 ‘대전 법조비리사건’, ‘옷 로비 의혹 사건’을 거치며 정부 비판에 힘을 쏟기 시작했고, 2003년 노무현 정부 출범 직후에는 전과 완전히 달라진 말투로 전향을 선언했다고 말했다.

백승덕 씨는 자신이 주목한 서석구 변호사는 “너무도 독특한 활동 궤적을 그려 왔기 때문”에 그의 사례를 갖고 대수천 등 특정 집단의 성향을 일반화해 파악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이어 백 씨는 “그의 전향은 단순히 진보, 보수라는 축으로만 해석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TK 정서가 지배적인 대구 지역에서 합법주의 노선을 견지하면서 나름의 활동영역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뚜렷한 성과를 남겼다. 반면, 그가 추구했던 합법주의 노선은 집단적인 지지자들을 결속시키는 데 한계가 컸으며 지역주의에 기반을 두고 있었던 정당정치 구조에 적극적으로 대처하기도 어려웠다.”

백 씨는 서 변호사에게 “종교운동이 지닌 특권적 정당성은 대구 지역의 보수적 여론으로부터 일정한 활동 영역을 보장해 주는 진지 같은 역할이 되어 줬다”면서 “그러나 종교운동은 중앙정치의 강력한 영향력에 효과적으로 대항할 만큼의 힘은 가지고 있지 않았다”고 말했다.

▲ (왼쪽부터) 이도흠 한양대 교수, 백승덕 씨(만인만색 연구자네트워크), 김현준 씨(연구집단 CAIROS). ⓒ강한 기자

백 씨는 서 변호사가 “자신의 합법주의 노선이 실패로 돌아갔다고 판단한 이후에 김대중 정부를 비롯해서 자신이 몸 담았던 종교운동에까지 온통 원한만 남은 것은 아닐까”하고 추측을 내놓았다. 이어 백 씨는 “서 변호사가 전향한 포인트, 이를테면 합법주의 노선을 지향하며 중앙정치로부터 흔들린 것, 이후 통일운동 관련해 합의를 못한 점이 민주정부 3기(문재인 정부)의 시작에서 어떤 약점으로 계속 나타나지 않을까” 하고 물으며, 서 변호사를 “시민운동과 사회운동 진영에서 성찰의 타산지석”으로 삼을 것을 제안했다.

이에 대해 한 참가자는 서 변호사의 천주교 대구대교구 관련 활동 경력뿐 아니라 YMCA 등 개신교 단체와도 함께 활동한 것이 놀랍다고 말했다. 그는 대수천이 본격 활동을 시작한 2013년은 4대강 사업에 대한 천주교 주교단의 반대 성명이 나온 뒤라며, 이와 관련이 있지 않겠느냐고 지적했다.

한편, 불교에 대해 발표한 이도흠 한양대 교수(국어국문학)는 ‘호국불교’ 사상은 해체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호국불교 사상이 “호법을 호국으로 대체하고, 다시 호국을 호권(정권 옹호)으로 대체해 허위의식으로 기능”했다고 비판했다.

개신교 청년선교단체에 대해 발표한 연구집단 CAIROS의 김현준 씨는 극우 개신교가 “자유와 해방(약속) – 죄로 인한 위기 – 자유와 해방(회개)이라는 플롯(plot)을 따른다”며, 이는 대한민국 역사를 이스라엘 역사의 재현으로 보는 것이고 “창조 – 타락 – 구속이라는 칼뱅주의 구원서사의 변형으로, 새로운 것은 아니라고 말했다.

다만 그는 “중요한 것은 이 종교적 서사구조가 국가주의 맥락에서 반공주의 서사와 결합”으로 “하나님과 남한(이승만)의 북한 해방의 약속 – 약속 위반(북한과 남한의 우상숭배의 죄, 분단) – 심판의 위기(대한민국의 멸망, 핵전쟁) – 기도 집회와 회개의 실천(차별금지법 반대, 북진통일전쟁)이라는 서사로 덧입혀진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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