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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친구 집에서 밥 얻어 먹고 오던 밤에, 별빛[부엌데기 밥상 통신 - 38]
정청라  |  editor@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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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5.12  10:0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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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 한 톨의 무게'라는 노래를 흥얼거리던 다울이가 '외로운 별빛도 그 안에 스몄네'라는 대목에 이르자 노래를 뚝 그치고 나에게 물었다.

"엄마, 이 노래를 만든 아저씨는 왜 별이 외롭다고 생각했지? 별한테는 친구들이 많이 있는데...."
"그건 말이지...."

일단 입을 열기는 했는데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몰라 한참 뜸을 들였다. 별과 별 사이 그 아득한 거리를 어떻게 설명한단 말인가. 관계 속에서 부대끼며 온몸으로 외로움을 살아 본 나에겐 별의 외로움이 당연한 것인 양 받아들여지지만 다울이는 아직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우리가 보는 것이 전부는 아니야. 별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것 같아도 실제로는 아주 멀거든."

이렇게만 대답을 해 둔 채로 긴 여운을 남기며 내 안의 외로움을 바라보았다. 서울에서 합천으로 내려가던 11년 전, 합천에서 화순으로 이사 오고 6년, 그동안 나는 가족과 친구들로부터 점점 더 멀리 떨어지는 상황을 선택해 왔다. 도심(십여 년 전 내 삶의 중심)에서 멀어질수록 숨 쉬기가 한결 편했고, 익숙한 인간관계에서 떨어져 나왔을 때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나(누군가의 기대나 간섭에서 자유로운)'를 살 수 있었으니까. 그러하기에 지금껏 나는 내가 선택한 '자발적 고립'의 상황을 특별히 원망해 본 적은 없다. 아니, 오히려 그 상황이 나를 살렸다고 확신한다. 돌아보면 고립을 통해 나와 영 딴판인 사람들까지도 귀한 이웃으로 받아들이게 되었으며 멀리서 찾아오는 손님을 마음으로 반길 수 있게 되었고, 고립된 상황을 돌파하는 과정에서 내게 없는 줄 알았던 새로운 재능(?)을 발견할 수도 있었다.(예를 들자면 이런 것이다. 외식을 하기 어렵고 장보기도 제한된 상황이 있었기에 산과 들을 누비며 각종 먹을거리의 얼굴을 익히고 그것으로 밥상을 차려 내게 되었다는 것이다. 돈 주고 맛을 사는 능력 대신 내 손으로 맛을 창조하는 능력을 일구어 낸 셈이다.)

하지만 내 안의 깊은 외로움마저 외면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시골살이에 대한 확신이 커질수록 '이렇게 좋은 곳에 마음과 뜻이 통하는 친구까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목마름도 커져만 갔다. 쉽게 말해 전도(?)의 열망에 사로잡히게 되었다고 할까? 해서 우리 집을 근거지로 달마다 공부 모임을 열기도 하고, 마을에 집이나 땅이 나올 때마다 이사 가능성 있는 친구들에게 연락을 돌려 적극적으로 이웃 유치 작전을 펼치기도 했다.(특히 마을 할머니들이 한 분씩 돌아가시며 마을에 빈 집이 하나둘 늘어 갈 때마다 나의 절실함과 간절함은 더해져서 소원을 빌 기회가 생길 때마다 '가까이에 친구가 생기게 해 주세요'라고 기도하곤 했다.)

마침내 간절함이 기적을 부른 걸까. 예상치 못한 놀라운 일이 펼쳐졌다. 대학시절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만난 친한 동생이 아랫마을(우리 집에서 걸어서 30분쯤 되는 거리)로 이사를 오게 된 것이다. 프랑스인 남편과 다울이와 동갑내기인 아들내미(유민이)까지 데리고서 말이다!(내가 귀농을 선택할 당시 그 친구는 프랑스로 유학을 갔고 거기서 빵 기술을 배우던 중 프랑스인 남편을 만나 아예 둥지를 틀었다. 그렇게 우리는 각자의 길을 걸었고 가끔 전화로 안부를 묻는 게 고작이었는데 십 년이 훌쩍 지나 다시 이어지게 된 것이다.)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이냐고? 그간의 사연을 간단하게만 얘기하면 이렇다.

그러니까 3년쯤 전, 그 친구가 바캉스 기간에 한국에 나왔다가 우리 집에 들렀다. 같이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가 그 친구가 "언니야, 언니가 시골 내려가 산다고 할 때 그게 무슨 소린가 했는데 막상 와서 보니 참 좋다. 나도 프랑스 갈 게 아니라 언니 따라 귀농할 걸 그랬어."라고 흘러가듯 말을 내뱉었는데, 내가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설득을 한 것이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내려와 살아 보라고, 이렇게도 살아 보고 저렇게도 살아 보는 거지 두려워할 것 없다고.... 그 말에 넘어간 친구가 당장 시골집을 알아보는 일을 감행하게 되고, 결국 우여곡절 끝에 나와 이웃사촌이 된 것이다.(지금껏 수없이 미끼를 던져 낚시질을 감행했지만 이렇게 손쉽게 월척이 낚이기는 처음이다.)

그동안 워낙 외롭게 살아온 터라 솔직히 처음에는 이 상황이 현실감 있게 다가오지 않았다. 각자의 길을 걷는 동안 길들여진 생활방식이나 생각의 차이 같은 것도 있기에 조심스러운 부분도 있었다. 하지만 그 친구가 이사 오고 한 달, 어느새 우리는 아주 오랜 세월 이웃으로 살아 왔던 것처럼 살아가고 있다. 도시락 싸 들고 같이 산에 나물하러 가고, 전해 줄 물건이 있으면 아이들 손에 들려 갖다 주고 오라고 심부름을 시키고, 버스 타고 장 구경 가고, 손님맞이도 함께 하고.... 아, 가까운 데 친구가 있으니 이렇게 든든하고 재미날 수가! 지금껏 누리지 못했던 깨알 재미가 한가득이다.

가장 신나는 건 허물없이 밥을 나눌 수 있다는 거다. 뭐 맛있는 거라도 하게 되면 '유민이네도 오라고 할까?' 싶어 어느덧 양을 푸짐하게 장만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특별한 찬이 없더라도 "우리 집에서 밥 먹고 가!" 하고 불러 세워 밥을 나누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언니 우리 집에 밥 먹으러 올래?" 하는 전화에 "와, 그거 좋지!"라고 대답하고 흔쾌히 집을 나선다. '이 세상에서 가장 맛난 외식은 남이 해 주는 집밥'이라고 외치며 룰루랄라 콧노래를 부르며....

   
▲ 놀고 싸우고 놀고 싸우고.... 또 다시 신나게 노는 유민이와 다울이. ⓒ정청라

얼마 전, 그날도 유민이네서 저녁밥을 얻어 먹고 놀다가 밤이 어두워져서야 집에 돌아오게 되었다.

"언니, 깜깜한데 괜찮겠어? 손전등이라도 있으면 좋은데...."
"괜찮아. 천천히 조심해서 가면 돼. 얼른 들어가."

꽤 먼 거리까지 배웅을 하러 나온 친구를 안심시키려고 일부러 큰소리를 땅땅 쳤는데 가로등이 사라진 길에 접어들자 눈앞이 캄캄했다. 손톱만 한 달빛에 의지해서 가려니 어둠의 바닷속을 허우적거리는 기분까지 들었다.

"큰일 났네. 집까지 어떻게 가나? 진짜 길이 안 보여."
"어유, 밤눈이 그렇게 어두워서야.... 눈이 가로등 빛에 익숙해져서 그래요. 조금 있으면 잘 보일 거에요."
"그래 엄마, 하늘에 별이 이렇게 많은데 뭐가 걱정이야."

다울이 말에 고개를 들어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시골에 살면서도 밤하늘을 올려다볼 기회가 좀처럼 없는데 참 오랜만이었다. 어둠의 막막함에 총총 구멍을 뚫어 빛을 퍼뜨리는 저 장난꾸러기 같은 별들.... 그리고 별빛 쏟아지는 하늘 아래 아득히 빛나는 내 친구의 집.... 그 순간 멀고도 멀었던 아랫마을이 한결 가깝게 느껴지며 내 앞의 길이 하얗게 드러나기 시작했고, 길섶에서 반딧불이도 몇 마리 만났다. 그야말로 다채로운 차원의 빛과 함께한 밤길 산책!

잊지 못할 빛을 만난 그 밤에 나는 어둠을 아무것도 아니게 만들어 버리는 빛의 위력을 실감했다. 다울이 말마따나 별들은 외롭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또한 밥을 안 먹어도 늘 배가 부를지도 모르겠다. 멀리 있어도 빛으로 밥을 나누는 친구 별이 있으니.

덤.
유민이네가 이사 와서 가장 신이 난 사람은 다울이다. 아침마다 유민이가 "다울아!" 부르며 놀러오면 좋아서 어쩔 줄을 모르며 뛰어나간다. 둘은 하루종일 쏘다니며 자전거를 타고, 물고기를 잡고, 공사 놀이를 한다. 그러고도 헤어지기 아쉬운지 서로 집까지 배웅한답시고 오거니 가거니.... 그러다가 길 위에서 까만 어둠을 맞이해도 함께 있을 땐 전혀 무서워하질 않는다. 서로가 서로에게 빛이 되어 주기 때문일까?! 그렇게 온몸으로 우정을 써 나가고 있다.

 
 
정청라
산골 아낙이며 전남지역 녹색당원이다. 손에 물 마를 날이 없이 늘 얼굴이며 옷에 검댕을 묻히고 사는 산골 아줌마. 따로 장 볼 필요 없이 신 신고 밖에 나가면 먹을 게 지천인 낙원에서, 타고난 게으름과 씨름하며 산다.(게으른 자 먹지도 말라 했으니!) 군말 없이 내가 차려 주는 밥상에 모든 것을 의지하고 있는 남편과 아이들이 있어서, 나날이 부엌데기 근육에 살이 붙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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