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제들의 기억에서 세월호가 멀어지지 않도록...."

팽목항에 세워졌던 ‘세월호 십자가’가 수원가톨릭대학교 교정으로 옮겨졌다. 수원교구는 단원고가 있는 안산시를 관할하고 있다.

팽목항 세월호 십자가는 지난 2015년 8월 천주교정의구현 전국사제단과 최병수 작가가 세월호참사와 희생자들을 기억하기 위해 참사 당시 희생자들이 올라와 가족들을 만난 자리에 세웠다. 당시 십자가를 만드는 데 40여 명이 참여해 약 1000만 원의 기금을 만들었다.

이후 팽목항 십자가 주변에 공사가 시작되면서 십자가 거취 문제를 고민하던 중, 수원가톨릭대 교정으로 옮기자는 제안이 수락됐다. 논의 당시에는 아직 팽목항에 가족들이 남아 있어 보류하다가 가족들이 목포 신항으로 옮겨간 뒤 4월 27일 십자가를 옮겨 왔다. 십자가를 운송하는 비용도 모두 수원신학교가 부담했다.

세월호 십자가에는 세월호를 상징하는 노란 리본 등이 있고, 더불어 예수의 십자가 죽음과 세월호 참사를 상징하는 6개의 구멍이 뚫려 있다. 최병수 작가는 “이는 세월호 참사로 예수가 다시 십자가에 못박혔다는 것을 상징한다”고 설명했다. 십자가 앞에는 부활을 상징하는 둥근 알 모양의 석조물도 배치했다.

십자가를 옮기는 실무를 담당한 수원신학교 기획관리처장 황치헌 신부는, 지금은 십자가만 있지만 주변에 세월호 희생자들의 이름과 십자가의 의미를 새긴 표지판, 기념비 등을 세울 계획으로 준비 중이라고 했다. 그는, “박성호 군이 예비신학생이었기 때문에 명예신학생으로 삼을 생각이 있었고 간절했지만, 여러 측면을 검토한 끝에 이뤄지지 못했다”고 안타까워하면서, 세월호 십자가를 통해서라도 기억하고 그 의미가 제대로 부활할 수 있다는 생각에 기쁘다고 말했다.

▲ 수원가톨릭대 도서관 옆에 세워진 세월호 십자가. 지나던 부제가 십자가를 잠시 바라보고 있다. ⓒ정현진 기자

"이 사회를 떠받치는 이들의 목소리, 교회가 대신 내 줘야 할 책임"

수원가톨릭대 총장 유희석 신부는 “십자가를 가져온 것은 당연한 일이다. 세월호참사는 수원교구의 일이었다”며, “과정이 쉽지 않았지만, 누구보다 사제가 될 이들의 기억에서 세월호참사가 멀어지지 않게 하는 것이 필요했다. 세월호를 기억하는 것은 오늘날의 사제가 고통받고 억압받는 이들을 위해 대신 목소리가 되어 준다는 것이며, 그 자체로 사목의 표징”이라고 <가톨릭뉴스 지금여기>에 말했다.

유 신부는 부활절 전 부제들과 함께 세월호 기억교실을 방문하고, 4월 7일 수원교구 세월호 추모미사 때에는 전교생과 미사를 봉헌했다.

그는 수원신학교가 지향하는 “참인간, 참교사, 참신앙인, 참목자”가운데 “참인간됨”이 가장 먼저이고 중요하다면서, “참된 인간이 되어야 참된 교사, 신앙인, 목자일 수 있다. 세월호 십자가가 담고 있는 고통당하는 이들에 대한 기억이 바로 인간됨의 기본”이라고 말했다.

유 신부는, “지난 3년은 빛이 가려지고 진실이 억압된 시간이었지만, 언젠가는 빛은 퍼지고 진실은 떠오른다는 것이 하느님의 뜻”이라며, “지금 한국사회는 (진실이 무엇인지) 웅성거리는 이들의 힘으로 버티고 있다. 그들이 이 사회를 떠받친다. 그들의 음성을 이제 교회가 대신 내 줘야 하고, 신학교나 교회, 사제들의 더 큰 책임을 느끼고 있다”고 했다.

수원신학교에는 단원고 희생자 박성호 군과 함께 예비신학생 시절을 보낸 심기윤 신학생이 다니고 있다. 이제 2학년이 된 그는 ‘세월호 십자가’를 보며 어떤 생각을 하는지, 그리고 어떤 사제의 꿈을 꾸는지 이야기를 들었다.

그는, 함께 신학교에 입학하자고 굳게 약속했던 소중한 친구가 없다는 상실감, 외로움, 분노와 슬픔이 너무 커서 한동안 마음이 복잡하고 힘들었지만, 그것이 친구가 원하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에 주변의 좋은 이들에게 기대며 조금씩 행복해지고자 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지난 3년간 너무 깊은 슬픔에 빠진 나머지 행복해지는 방법을 찾지 못하는 것 같다고 안타까워했다.

▲ 황치헌 신부와 심기윤 신학생이 세월호 십자가 앞에서 잠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정현진 기자

“아파하는 이들 곁에서 손잡아 주는 사제 될 것”

그는 세월호참사가 자신의 성소와 바라는 사제상에도 많은 영향을 미쳤다면서, “가장 많이 본 것이 아파하고 슬퍼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그들 곁에 누가 있어 줘야 하는가라는 생각을 많이 했다”고 말했다.

심기윤 신학생은 “말만이 아니라 실제로 고통받는 이들의 곁에 있는 교회가 필요하다. 한목소리를 내는 것 자체가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느끼게 한다”며, “힘들어 하는 사람들 바로 옆에 있을 때, 그들 안에 내가 들어갔을 때, 그 안에서 하느님의 사랑도 느낄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들과 같이 웃고, 같이 웃음을 찾아가는 사제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심 신학생은 사람들에게 “아직 끝나지 않았고 조금만 더 기억하고 함께해 달라는 말을 하고 싶다”고 했다. 그는, “아직도 아파하는 이들이 너무 많다. 괜찮아 보여도 아직 많이 아프다”며, “가족뿐 아니라 생존자, 소중한 이를 잃은 사람들, 또 다른 피해자들과 그런 그들을 보면서 슬퍼하는 이들을 기억하고 손잡아 달라”고 당부했다.

▲ 세월호 3년을 맞아 수원신학교 신학생들이 진행한 세월호 전시회. ⓒ정현진 기자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저작권자 ©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