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교리 렌즈에 비친 세상 - 박용욱]

1. 잉그램 가족의 비극

1988년 여름, 성경학교에 참석해서 체험을 나누던 22살의 에리카 잉그램이 친부모로부터 성적 학대를 당했다는 충격적인 고백을 한다. 며칠 뒤 학교에서 교사에게 성적 학대 사실을 고백한 18살짜리 동생 주리의 경우는 더욱 경악할 만한 것이었다. 친부의 성폭행으로 임신했다가 친부의 손으로 직접 낙태까지 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두 자매가 상세하게 고백한 내용은 지역사회를 충격으로 몰아넣었고, 이 상담을 들은 교사는 에리카와 주리의 아버지를 사법당국에 고발한다.

현직 경찰이었던 아버지 폴 잉그램은 졸지에 피의자로 전락해서 조사를 받았다. 영문도 모른 채 체포되었던 아버지는 취조실에서 불과 하룻밤을 지내고 나서 자신이 저질렀던 비행에 대해 소상한 진술서를 작성한다. 평소 신앙심이 깊다고 소문난 자신이 실은 악마의 예식에 참여한 적이 있으며, 딸들에 대한 성적 학대와 폭행은 그 예식의 과정이었다는 것이다. 진술된 폴의 범죄 내용 안에는 심지어 살인과 식인까지 포함되어 있었고, 그 뒤 여죄를 추궁하는 과정에서 폴 잉그램은 미궁에 빠져 있던 연쇄 살인도 자신이 저질렀다고 고백한다. 유죄를 증명하는 물적 증거들은 빈약했지만, 폴 잉그램의 진술이 워낙 구체적이었으며, 두 딸이 오죽했으면 아버지의 비행을 폭로했겠느냐는 상식적 판단은 증거의 헛점을 상쇄하고도 남았다. 극악무도한 범죄자 폴 잉그램은 그리하여 20년 형을 언도받고 수감되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사건의 숨겨진 내막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아버지로부터 강간을 당해 임신했다가 낙태를 했다는 주리가 산부인과 진찰 결과 임신은커녕 성관계를 가져 본 적도 없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뿐만 아니라 이들이 고백했던 친부의 성적 학대와 살인 또한 모두 지어낸 것이었음을 알게 된다. 무죄가 판명된 아버지 폴 잉그램은 그제서야 석방된다. 무려 14년 6개월의 수감생활을 겪은 다음에....

그러면 도대체 왜 딸들은 아버지를 거짓 고발해서 긴 세월을 흉악범으로 살게 했을까? 아버지 폴 잉그램은 왜 딸들의 거짓 고발에 동조해서 스스로 범행의 구체적인 내용까지 지어내며 진술했을까?

2. 악마화의 심리학

당시 정신분석학자, 임상 상담가와 치료사들은 어릴 적 부모로부터 받은 억압이 훗날 자녀들의 불행한 삶의 원인이 되며, 이 억압의 실체를 밝혀내는 것이야말로 치유의 핵심이라는 이론에 함몰되어 있었다. 에리카와 주리가 참석했던 성경학교 프로그램도 이런 시류에 따라 마련된 것이어서, 참석자들은 자신의 삶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 부모의 악영향을 고백하도록 유도되었다.

이 와중에 에리카와 주리는 자신들의 불만족스런 현재가 악마 같은 아버지로부터 기인했다고 고백함으로써 동정과 주목을 받고 싶었고, 여기서 시작된 작은 거짓말이 갈수록 눈덩이처럼 커진 나머지 급기야는 실제로 그런 일이 있었던 것처럼 자기 세뇌에 빠져 버린 것이었다. 아버지 폴 잉그램 또한 정신분석학자와 범죄심리분석가들의 거듭되는 질문을 통해 마치 자신이 그런 죄를 실제로 지은 것으로 착각하게 되었던 것이다.

▲ 사람들은 현재의 모든 문제의 근원이 악마 같은 개인이나 조직에 있고, 이 사악한 존재들을 뿌리 뽑을 때 온갖 악이 근절되고 유토피아가 실현된다고 생각한다. (이미지 출처 = Pixabay)

결국 문제는 현실의 고통과 어려움의 책임을 억압하는 부모라는 악마화된 존재에게 떠넘기고, 그 악마적 존재를 제거하는 것만이 행복하고 해방된 자아를 회복하는 유일한 길이라는 시각에 있었다. 인간사의 고통과 고난이 결코 단일한 악마적 존재의 탓으로 소급될 수 없음에도, 어떤 숨겨져 있는 악마적 존재를 상정하고, 그 악마적 존재의 비열하고 음험한 속내를 폭로함으로써 순결한 영혼을 구원에로 이끈다는 태도를 임상심리학자 나히 알론과 하임 오메르는 ‘악마주의적 관점(Demonic view)’이라 일컫는다.(Nahi Alon & Haim Omer, The Psychology of Demonization, Lawrence Erlbaum Associates, 2006) 알론과 오메르에 따르면 악마화의 심리 기전은 개인의 차원뿐만 아니라 사회 구조적인 차원에서도 발현될 수 있다고 한다. 현재의 모든 문제의 근원이 악마 같은 개인이나 조직에 있고, 이 사악한 존재들을 뿌리 뽑을 때 온갖 악이 근절되고 유토피아가 실현된다는 시각이 그것이다.

하지만 한 개인의 삶도 사회 구조적 문제도, 어떤 악마적 존재에게 책임을 몰아넣는다고 해서 해결될 만큼 단순하지 않다. 악마적 존재만 제거하면 금세 회복될 순결하고 고원한 삶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인간 모두는 죄와 죽음으로 어떻게든 서로 얽혀 있다.

따라서 참된 치유는 고통이 인생의 본질적 부분임을 받아들이고, 연대와 협력을 통해서 그 고통을 분담하고 개선해 나가는 데서 시작한다.

그러기에 가톨릭 사회교리는 건강하고 바람직한 사회 구조를 이루는 일을 ‘하느님나라’와 동일시하지 않는다. 어떤 악마적 존재를 벌하고 제거하는 것은 정의의 과정이지만, 그것이 정의의 완성은 아니다. 하느님 뜻에 부합하는 정치 경제 구조를 갖추는 것이 하느님나라를 위한 발걸음이되, 하느님나라 그 자체는 아니라는 것이다.

3. 인간은 구원을 필요로 하는 존재다

선거를 앞두고 ‘악마화’의 손가락질을 쉽게 목격한다. ‘친북 좌파’만 없애면 된다, 특정 대선후보만 아니면 된다는 악마화의 손가락질 말이다. 사실 그런 악마화는 어디에나 존재한다. ‘친북 좌파’ 악마, ‘극렬 귀족 노조’ 악마, ‘전교조’ 악마 등등, 이 사회에서 악마로 몰리고 만악의 근원으로 지목 받는 악마들 말씀이다. 무슨 말을 해도 악마화되다 보니, 그렇게 손가락질 받는 쪽도 악마를 소환함으로써 응수한다. ‘기득권층’ 같은 악마 말이다.

갈등과 쟁투의 현장에서 교회의 사회 참여는 이 악마화의 논리를 극복해야 할 과제를 안고 있다. 이 세상의 악이 하느님과 맞서는 악마로부터 온다는 이원론적 세계관은 초세기 교회부터 싸워 온 오류 아니었던가. 인간은 구원을 필요로 하는 존재이고, 구원은 하느님께로부터 오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은 그래서 악마화의 실체를 폭로하고 겸손하게 그분의 구원을 갈망한다. 정치공학과 책략 대신에 하느님의 역사에 이바지하는 길을 선택한다. 그래서 그리스도교 공동체는 부활의 기쁨 속에 이렇게 기도한다. 오소서 성령이여. 믿는 이들의 마음을 충만케 하시고 그들 안에 사랑의 불을 놓으소서.

 
 
박용욱 신부(미카엘)

대구대교구 사제. 포항 효자, 이동 성당 주임을 거쳐 현재 대구가톨릭대학교 의과대학과 간호대학에서 윤리를 가르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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