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천교구 만천 본당 신자 조효선 씨

세월호참사 뒤 3년 동안 천주교 춘천교구에서는 신자들이 자발적으로 만든 모임이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세월호 진실규명을 위한 춘천지역 가톨릭인’ 모임이다. 이 모임은 누리소통망(SNS)인 ‘밴드’를 통해 기도와 활동 소식을 나누며 세월호참사의 진실과 책임을 묻고, 우리 사회의 변화를 요구하는 지역사회 사람들과도 함께해 왔다.

이 모임을 처음 제안한 조효선 씨(엘리사벳, 만천 본당)에게 이들의 기도와 활동 이야기를 들었다. 세 아이의 어머니인 조 씨는 가톨릭학생회 출신이고, 학생 때 배운 ‘신앙인이 사회 문제에 침묵하면 안 된다는 생각’을 실천하고자 노력해 왔다고 말했다. 시민단체 활동과 함께 본당 활동도 열심히 해 온 그는 “사회 참여의 동력은 신앙”이라고 했다.


- 왜 ‘세월호 진실규명을 위한 춘천지역 가톨릭인’ 모임을 만들게 됐나?

조 - 세월호참사 당시 나는 지역아동센터 교사였고, 내 아이들도 있었다. 내 앞의 아이들 같은 또래 아이들이 희생된 그 참사를 보면서 정말 소름 끼쳤고, 많이 울었고, 너무 가슴 아팠다. 내가 할 수 있는 게 촛불 들고 집회에 나가고 혼자 기도하는 것밖에 없지만, 더 많은 사람이 함께하면 더 빨리 세월호 진실 규명이 이뤄지고 큰 힘을 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춘천은 보수적인 지역이다. 세월호참사 이후 다른 지역에서는 미사가 봉헌되고 교회 내 움직임이 있는데, 춘천교구에서는 큰 움직임이 없었다. 세월호참사 뒤 촛불집회에 갔는데 신자들이 조금씩 눈에 띄었고, 그들 중에는 참사에 대해 안타깝고 마음 아프면서도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분들이 있었다.

그래서 ‘기도를 함께 해도 좋고, 촛불집회에 갈 때도 함께 갈 수 있다. 함께라면 무엇이든 더 오래 할 수 있고 잊지 않을 수 있겠다’는 생각으로 2014년 9월 16일에 내가 밴드를 만들고, 아는 사람들, 뜻이 같은 분들을 모셨다. 그분들이 기꺼이 응해 줬고 주변 사람들 중 함께할 분들도 초대했다.

10여 명의 지인들에게 전화해 “같이 할 거죠?” 하니 그분들은 “그래!” 하며 나서고, 같이 할 만한 사람을 더 초대했다. 사실 주변에 그런 분들이 있었기에 용기를 낼 수 있었다.

▲ 4월 19일 춘천 죽림동 주교좌 성당에서 ‘세월호 진실규명을 위한 춘천지역 가톨릭인’ 신자들이 합창하고 있다. ⓒ강한 기자


- 어떤 이들이 모임에 참여했나?

처음에는 내가 주도해 밴드를 만들었지만, 감사하게도 점점 한 분, 한 분이 자기 역할을 가져 주셨다. 꾸준히 기도를 이어가며 ‘기둥’이 되어 주신 분들이 있다. 미사 때마다 신자들의 기도(보편지향기도)를 전담한 친구가 있었고, 해설을 전담해 주신 자매님도 있다. 합창을 앞두고 인원이 모자라자 적극적으로 본당 신자들을 조직해 주신 분도 있었다.

이 모임이 사모임처럼 비춰지거나, 여러 사람이 모이다 보면 의도하지 않은 방향으로 갈 수 있을 것 같아 조심스러웠다. 그래서 당시 춘천교구 정의평화위원회 담당이던 최창덕 신부님에게 밴드에 참여해 달라고 부탁했다. 신부님이 같이 하면 신자들이 활동하는데 그리스도인답게 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최 신부님이 참여하고, 다른 신부님들도 초대했다.

그렇게 점차 밴드에 참여하는 사람이 하나둘 늘어나 지금은 150명 정도 된다.

밴드에는 착한 목자수녀회 등 수녀님들도 많다. 탄핵 시국에도 착한 목자수녀회 수녀님들이 지역 촛불집회에 하루도 안 빠지고 나와서 아주 유명해지셨다.

서로 놀라웠던 것은 일면식도 없지만 뜻을 같이 하는 분들이 춘천 지역에 많았다는 것이다. 기뻤다. 보수적인 동네다 보니 세월호 리본 달고 다니면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보고 뭐라고 하는 분들도 있는데, 함께하는 분들이 있다는 게 의지가 됐고, 번개 모임도 몇 번 했다. 송년회도 해마다 하고, 2016년에 가장 많이 모였던 것 같다.

또 저희 원로 사제 두 분, 허동선, 임홍지 신부님이 매월 미사, 송년회, 합창 공연도 함께해 주셨다. 허 신부님은 입원 때문에 3주기 미사에 못 오셨다. 신자들에게는 성직자, 수도자들이 함께해 주는 것이 큰 힘이 된다.


- 참여한 평신도들은 어떤 사람들인가?

다양하다. 직업, 의식면에서 천차만별이다. 공무원, 교사도 있고 자영업자도 있다.

의식 있고 진보적인 분들이 춘천에도 많다는 것을 알게 돼 놀랐다. 새누리당(현재 자유한국당) 지지자였던 분이 중, 고등학생 아들딸을 둔 사람으로서 세월호참사를 보며 너무 가슴이 아파 함께 기도하고 싶어서 밴드에 가입하시고, 합창도 함께했다. 무척 보수적인 분이었기 때문에 깜짝 놀랐다.

지금은 각 성당별로 한 분씩 밴드 운영위원을 맡아, 무슨 일을 결정해야 할 때 함께 의논하고 있다.


- 모임이 그동안 펼친 활동으로 특히 기억에 남는 것은?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작고 기본적인 것부터 시작하자며 묵주기도로 시작했다. 묵주기도가 어려우면 주모경이라도 하자며 기도부터 했다.

모임이 만들어진 2014년 9월은 세월호참사 5달 뒤였고 세월호특별법 제정이 주된 구호였다. 특별법 제정과 유가족, 희생자들을 위해 매일 묵주기도를 했다. 그해 9월에 묵주기도 1000단을 목표로 했는데 2000단이 넘게 모였다. 영적 선물로 액자에 담아 세월호참사 희생자의 이모 정현숙 수녀님에게 전달했다. (세월호와 관련된) 모두를 위해 기도한 것이지만, 수녀님이 그 의미를 잘 아시는 분이기 때문이었다.

10월에도 거의 6000단 정도의 묵주기도를 봉헌했다. 춘천에서 2014년 10월 28일에 유가족 간담회가 있어서 우리가 기도를 전달했다. 그분들이 가톨릭 신자가 아니었기에 의미를 설명해 드렸다.

▲ 2015년 9월 21일, 춘천교구 사회사목센터에서 세월호 희생자 추모 미사가 끝난 뒤 참석자들이 미수습자 조은화 양의 어머니 이금희 씨(오른쪽 첫째)가 신자들과 포옹하고 있다. (사진 제공 = 최미경)


- 어떻게 하면 묵주기도를 그렇게 많이 할 수 있나?

처음에는 5단씩 올리는 분들이 있었는데, 시간이 흐르면서 매일 거르지 않고 50단씩 하는 분들도 생겼다. 레지오마리애에 열심인 회원으로 하루 종일 묵주를 손에서 놓지 않는 분도 있다. 이런 분들이 계시니 이어갈 수 있었다.

그분이 ‘내가 묵주기도를 너무 많이 해서 다른 신자들을 위축되게 하는 것 같다’고 하셔서 저는 무척 놀랍고 좋다고 생각하니 계속 모범을 보여 달라고 부탁했다. 정말 꾸준히 한결같이 기도하셨다.


- 교구 세월호 월례 미사가 시작되는 데도 모임의 영향이 있었다고 들었다.

2014년 10월부터 우리 지역에서도 미사를 하면 좋겠다는 마음에 최창덕 신부님에게 부탁을 드려 세월호특별법과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첫 미사가 10월 20일에 봉헌됐다. 밴드 회원들이 각 본당을 찾아다니며 포스터를 붙여도 될지 부탁하며 홍보했다.

12월 15일에 천주교 신자 유가족을 초청한 간담회는 그해 최고의 폭설이 내린 날 열렸다. 눈을 뚫고 온 70명 정도가 모였던 것 같다.

2015년 4월 16일 1주기 미사 때 ‘매월 미사를 봉헌하면 좋겠다’는 제안을 드렸고, 그 뒤 춘천교구 사회사목국 주관으로 매달 세월호 미사를 진행하게 됐다.

또 특별한 것은 길거리 합창단이었다. 2015년 3월에 춘천에서도 “금요일엔 돌아오렴” 북콘서트를 했다. 그때 밴드 회원 약 30명이 합창을 준비하고 공연을 했는데, 그것이 참석자들에게 무척 감동적이었나 보다.

세월호 추모곡으로 유명한 ‘천개의 바람이 되어’와 생활성가 ‘하늘의 태양은 못 되더라도’를 불렀는데, 그 뒤 추모문화제만 있으면 저희에게 합창 요청이 들어와서 몇 번이나 했다. 노래는 계속 바뀌었다. 1주기 춘천지역 추모문화제, 500일 문화제 때, 1, 2주기 미사, 900일 문화제 때도 공연을 했다.


- 다른 신자들의 이해 부족 때문에 힘든 적은 없었나?

(세월호 관련 활동이나 노란 리본 착용에 대해) 저는 날선 말을 들은 적이 없다. “그만 해”라고 말한 분은 없다. 그러나 “가슴 아프지만 그만할 때도 됐다”는 말씀을 들으면 안타까웠다. 해결된 것이 아무 것도 없는데 무엇을 그만하라는 것인가.

위아래로 훑어보는 등 곱지 않은 시선도 있었다. 차에도 노란 리본을 붙였는데 누군가 스티커를 떼어버린 적은 있다. 그래서 다시 붙였다.

▲ '세월호 진실규명을 위한 춘천지역 가톨릭인' 모임이 2014년 9월에 바친 묵주기도 2061단을 표시한 액자를 정현숙 수녀가 전달 받고 있다. (사진 제공 = 세월호 진실규명을 위한 춘천지역 가톨릭인)


- 지난 4월 16일 예수 부활 대축일이자 세월호참사 3년째 날을 맞아 소회가 남달랐을 것 같다.

처음 밴드를 만들 때는 이 이름으로 오래 가지 않을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3년이 지나도록 진실 규명이 되지 않고, 3년째 같은 기도를 하는 것이 가슴 아팠다. 아직도 진실 규명을 말하고, 미수습자 수습을 위해 기도해야 한다는 것이....

4월 16일이 예수님의 부활과 함께, 미수습자 수습과 세월호참사가 일단락되고 진실이 어느 정도 드러나고 앞으로 나아가는 시기가 되어 있기를 간절히 바랐는데 그렇지 못했다. 3주기까지 온 것이 씁쓸하고 안타깝지만 인양이라도 되어 참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밴드 회원들끼리 미약하나마 기도하고 미사를 드리자고 이야기 나눴다. 기도의 힘은 강하다. 함께하는 기도의 힘은 더욱 강하다. 우리 기도의 힘을 믿자. 그 힘들이 모였기에 지금 이렇게 인양까지 될 수 있지 않았을까? 앞으로 더 열심히 기도하고 함께 행동하면, 머지않아 진실이 밝혀지지 않을까? 이런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

안타깝지만 우리의 노력은 헛되지 않았을 것이다. 기도의 결과는 바로 드러나는 것은 아니다.

세월호 국면이 지난 뒤에 이분들이 참 귀한 분들일 것이다. 앞으로도 함께 지역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의 어두운 부분, 그런 사안들에 대해 함께 기도하고, 정의와 평화를 위해 함께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 춘천교구 세월호 월례 미사가 마무리되고, 여러 사회문제를 함께 고민하고 기도하는 미사를 마련할 움직임이 있다고 들었다. ‘세월호 진실규명을 위한 춘천지역 가톨릭인’ 모임은 앞으로 어떻게 되나?

다들 우리 모임을 없애지 말자고 하셨다. 이 모임은 신자들에 의해 자생적으로 만들어졌다. 정의, 평화를 위한 일에 우리의 기도를 보태고, 아직 세월호가 마무리되지 않았기에 세월호 진실 규명을 위해 계속 기도할 것이다.

세월호가 아닌 다른 사안에 함께하고 기도와 미사를 드릴 필요가 있다면 회원들의 동의를 구해야 할 것 같다. 아마 대부분이 동의하실 것 같다.

이후에 그런 역할을 할 수 있는 모임으로 만들고 싶다. 교구 정의평화위원회가 활발해지면, 밴드 회원들이 열심히 참여할 것 같다.

꿈도 못 꿨을 일이다. 교구 안에서 귀한 분들을 알게 된 것 같아 감사하다. 신앙적으로, 사회적으로도 느낀 것이 많았고 시각이 많이 바뀌었다. 사람을 겪어 보지 않은 채 함부로 판단하지 말아야겠다. 보수적인 춘천에서 의외의 분들이 함께해 주셨다. 인간을 함부로 판단하면 안 된다는 것을 활동하며 배우게 됐다.

정말 내년 세월호참사 4년은 ‘4년’이 아니라 ‘4주기’로 맞이하면 좋겠다. 춘천교구 추모 미사 때 신부님 강론 말씀대로, 아직 미수습자들이 있으니 ‘3년’이라 표현했다. 미수습자들을 모두 찾고 진실이 규명되어 4주기에는 기도도 조금 다른 내용으로 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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