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18일, 105일차 생명평화 오체투지 순례

"여기 사람이 있다 "는 절박한 외침을 외면한 순간 우리 모두는 사회적 공범이 되었습니다. 6명의 희생자가 발생하고 100일이 넘었지만, 변한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다시 그 앞 도로에는 무수한 차량이 여전히 달리고 있고, 부끄러운 우리 사회는 그곳에 경찰버스로 벽을 만들어 참사현장을 가리고 있습니다. 그 경찰버스에 가로막힌 것은 현장이 아니라 시대와 우리의 스스로의 부끄러운 자화상일 뿐입니다.

<시대의 양심에 호소합니다>
우리 시대의 갈등과 대립을 넘어 희망을 찾기 위해 사람의 길, 생명의 길, 평화의 길을 찾아가는 오체투지 순례단. 오늘 105일차를 맞아 우리 시대의 부끄러운 자화상을 마주하였습니다.
독단과 독선, 속도전이라는 시대의 키워드는 사람의 생명도 자연의 생명도 가벼이 여기고 있습니다. 자연과 사람 모두 소통 부재의 시대가 되고 있습니다.

"여기 사람이 있다"는 절박한 호소가 끝내 외면당하고, 돈만 벌면 된다는 자본의 가치관이 제일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세상이 잔인해지다 못해 6명의 소중한 생명이 죽임을 당해도, 우리 사회는 여전히 이 사안을 합리적으로 해결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상황을 눈앞에 보면서 참담한 심정으로 정부와 종교계, 그리고 지식인 사회에 호소합니다. 우리가 시대적 과제인 용산 참사를 합리적으로 해결하지 못하며, 우리는 자본의 지배를 받는, 사람의 모습이 없는 사회를 만들게 될 것입니다.

이에 오체투지 순례단은 간곡히 호소합니다.
이와 같은 참사가 재발하지 않기 위해서 또한 유가족과 우리 사회가 받은 상처가 하루 빨리 치유되고, 희생자들에게 평온한 안식을 줄 수 있도록 사회적 지혜와 관심을 모아 주십시오.
법리 논쟁에 앞서 유가족의 응어리진 한을 풀어주지 못한다면, 누가 정부의 말을 믿고 따르겠습니까? 투명한 자료의 공개로 재발방지대책을 사회적으로 모색해야 합니다.

종교계와 지식인 사회 역시 함께 지혜를 모아주실 것을 간곡히 호소합니다.

순례단은 오늘 이 가슴아픈 시대의 현장에서 우리의 지난날을 참회하고 희생자와 유가족의 평화를 위해 기도합니다. 우리의 간절한 염원으로 이 땅에 생명평화의 작은 불씨가 이곳에서 시작되기를 기도합니다.

<105일차 순례길>
105일차 순례의 아침. 오늘도 출발장소에는 순례 참여자들이 아니라 전경차가 먼저 순례단을 무심히 기다리고, 출발 시간이 가까워지자 하나 둘 순례자들이 도착하기 시작합니다. 오늘은 시대적 아픔이자 부끄러운 자화상인 용산 참사 현장을 지나는 날. 세분 성직자는 아침부터 마음이 아픈 듯, 출발 장소 인근에서 마음을 모아 나가지만, 유달리 몸과 마음이 힘든 하루라 합니다.

수경스님은 오늘 함께 순례길에 동참한 정토회 청년 불자들을 대상으로 말씀을 나누고, 문규현 신부님은 휴식시간 조차 용산 참사 현장의 순례길 생각에 표정이 무겁기만 합니다.

용산 참사 현장이 보이는 지역에 도착하니, 인근 지역에서는 여전히 철거가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무고한 희생이 이어졌고, 무엇하나 진실이 규명되지 않았음에도 참사 현장을 제외하고는 여전히 공사를 위한 사전 준비들이 진행되고 있더군요. 이윤을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라도 하겠다는 발상이 아니라면, 어떻게 저렇게 소중한 생명이 죽임을 당한 곳에서 태연하게 재개발을 위한 공사가 천연덕스럽게 진행되는지, 그리고 그 모습을 아무런 일도 아니라는 듯이 결정하고 지켜보는 우리 스스로와 우리 사회 모두 이렇게 모질게 살아가는 것이 익숙해진 것인지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법적 논쟁보다 더 중요한 것은 사람의 마음일 것입니다. 사람의 마음을 얻지 못하면 아무것도 얻지 못한 것이고, 침묵한다 하여도 그것은 강압에 의해 침묵하는 것일 뿐입니다. 광화문 촛불을 바라보면 반성하였다는 권력자의 마음은, 어느새 사람도 자연의 생명의 정말 가벼이 여기고 있을 분입니다. 이것이 잘못되었고 비정상적이라는 것을 구호가 아니어도 말이 아니어도 세상 사람들이 이미 모두 알고 있습니다.

 용산 참사 현장에서 2㎞ 남짓한 거리에서 출발하였지만, 사람과 사람 사이의 평화가 깨어진 곳으로 향하는 발걸음이었기에 힘겨웠던 오전 순례는 용산 참사 현장 인근에서 마무리되었습니다.

<용산은 나의 미래이고 우리의 미래이다>
순례단은 오후 출발 후 얼마 시간이 지나지 않아, 용산 참사 현장에 도착하였습니다. 세분 성직자의 조문과 분향에 이어 유가족과의 삼배가 이어졌습니다. 희생자들은 여전히 우리 곁에 있어 부활할 것이며, 또한 이분들의 고귀한 뜻으로 하늘과 땅과 사람이 조화로운 세상이 되길 염원하는 마음이었습니다.

다시 참사 현장 앞에 선 순례단. 말없이 108배의 기도를 시작합니다. 누구 하나 말이 없습니다. 유가족의 마음을 알기에, 희생자들의 원혼이 평온한 안식을 취하기를 간절히 염원하는 마음으로 한 배 한 배 기도를 할 뿐입니다. 여기서 무슨 말이 필요할까요?

자국민에게 죽임을 주고도 평온한 안식을 허용하지 않는 정부를 대신해 참회할 뿐입니다. 우리 스스로 자본과 물신의 가치관에 경도된 삶을 살아온 것을 참회할 뿐입니다. 누구 하나 말이 없습니다. 다만 하늘과 땅에 울리는 징소리를 통해 온 몸으로 기도할 뿐입니다.

108배를 마친 순례단. 누군가의 아버지이자 아들이었을, 그리고 벗이었을 희생자들의 간절한 염원을 가슴에 안고 다시 길을 떠납니다. 사람이 이어져 길을 만들고, 그 길에 생명과 평화가 함게 이어지길 기도할 뿐입니다. 그리고 그 길에서 용산 참사가 하루 빨리 합리적으로 해결되고, 유가족의 가슴에 맺힌 한을 조금이나마 닦아주길, 다시는 용산 참사가 재발하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신용산역을 지나 삼각지역 그리고 다시 용산미군기지 인근에 도착한 순례단 하루 힘겨웠던 여정을 마무리하였습니다. 소중한 생명이 죽임을 당한 사회에서 벌어지는 옹졸한 대응들을 보며 그날 죽임을 당한 것이 바로 우리 사회의 양심이 아니었는지 되돌아보는 하루 순례길이었습니다.

<또 다른 나를 마주하며>
나와 우리 사회 모두의 미래인 용산 참사. 점심 식사 이후 참석자들은 용산 참사에 대한 의견을 서로 나눕니다.

"우리가 관심을 가지지 않으면 안 된다. 그것은 나의 미래이고 우리의 미래이기 때문(하승우)",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오로지 기도(혜수스님)", "용산참사는 토건업자, 재벌, 부실한 행정관리, 자본주의 시장경제 등의 총체적이고 복합적인 문제이다. 가진 자를 위한 개발이며 탐욕적 발상이다. 만일 이익을 나눌 생각이 있다면 그러한 참사가 일어나지 않는다. 하지만 제일 큰 죄는 우리의 무관심이다(정동수)", "요즈음은 용산참사가 아니라 용산학살이라는 말을 쓴다. 용산학살의 문제는 결국 폭력에서 온 것이다. 비뚤어진 폭력적 습관이 극대화 한 것이 용산 학살이(최광수)", "정부 정책에 의해 피해를 보고 죽음까지 이르러 놀랐다. 이로 인해 언론의 제재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이선주)", "마음이 아프고 안타깝다. 피해자가 결국 가해자가 되었다. 유가족 마음을 잘 보듬었으면 좋겠다. 잊어져 가서 슬픈데 오체투지를 하면서 주변을 지나니 조금이나마 부채가 덜어 지는 것 같다(박효진)", "미안하다는 막연한 감정이다. 사실 무관심 하였다. 그 동안 내 문제에만 급급하였지만 오체투지를 하면서 결국 나도 책임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이현아)", "가슴이 많이 아프다(송지홍)", "정부와 관련자들은 어려운 사람들의 삶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권완수)", "정부가 이해가 안 된다(이주연)", "독재정권의 시절로 돌아 간 것 같다. 우리가 풀어야 할 숙제이다(정수진)", "참사가 아닌 학살 만행이다. 약 4조 1천억 정도의 이익이 난다고 한다. 그중 0.1% 만 나눠줘도 충분히 보상이 가능하다. 자본주의의 그릇된 부자들을 퇴출시키고 용산문제를 철저히 규명하여야 한다(최문길)", "남의 일이라 무관심했다. 하지만 현장을 가보았고, 책도 보고 여러 정보를 접하면서 많은 반성을 하였다. 오로지 내 부모, 친척, 지인의 일이 아니라고 간과해서는 안 되는 일이다. 그 분들과 함께 하기를 빈다(오현철)", "다른 사람 일에 관심을 갖는 일이 함께 사는 길이다(김옥경)", "용산참사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죽었습니다. 그래서 나왔습니다. 생명이 이렇게 우습게 여겨진다는 것에 대한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저 스스로 보석하기 위해 나왔습니다(비재희)"

하늘과 땅 사이에 사람이 있고, 그 하늘과 땅 사람이 조화를 이루어 생명과 평화를 만들어 갑니다. 오늘 우리가 사람의 생명조차 가벼이 여긴다면, 우리는 내일 또 다른 생명을 지킬 수 없을 것이며, 우리의 평화를 지킬 수 없을 것입니다. 그렇기에 지금 용산의 문제를 사회적으로 합리적 해법을 모색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앞으로도 계속 유사한 사례에 무관심할 것입니다.

오늘의 용산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면, 내일의 용산 문제 역시 해결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지금이야말로 무관심이 아니라 사회적 지혜를 모아나가야 할 때입니다.

<함께하는 사람들>
- 수브라(프랑스) / 안현(서울) / 김세열(서울) / 최광수(인천) / 김옥정 외 41명(정토회) / 오현철(서울교정사목위원회) / 하승우(서울) / 최문길(라디오인) / 정동수(서울) / 나승구 신부(신월동 성당) / 전철연 용산 4구역 10여명 / 용산범대위 40여명 / 김옥형 수녀(원죄없으신마리아교육선교수녀회 불광동) 등이 참여하였습니다.

<일정 안내 - 변동 가능>
● 5월 20일(수) : 남영역과 삼각지역 사이(시작) - 명동성당
● 5월 21일(목) : 명동 성당(시작) - 조계사
● 5월 22일(금) : 조계사 대웅전(시작) - 서대문구 홍제동 SK주유소(종료)

<후원에 감사드립니다>
- 청년정토회, 5591차량, 해방촌 성당 등에서 후원해주셨습니다.

* 공지 : 5월 20일(시국미사.명동성당.5시) / 5월 21일(시국법회. 조계사. 5시)

* 순례 수정 일정과 수칙은 http://cafe.daum.net/dhcpxnwl 공지사항을 참고 바랍니다.

2009. 5. 18
기도 - 사람의 길, 생명의 길, 평화의 길을 찾아서
진행팀 문의 : 010-9116-8089 / 017-269-2629 / 010-3070-5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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