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 신자, 교구에 탄원서 내고 집회 거듭

천주교 서울대교구 인헌동 본당이 ‘사무장 퇴진’ 논란으로 내부 갈등을 겪고 있다.

교구가 서로 화해하고 용서할 것을 촉구했고, 본당에서 내부 해결을 위해 노력 중이라는 목소리도 있지만, 문제를 꺼내든 신자들은 물러서지 않고 있다.

2005년 설립된 인헌동 성당은 서울 관악구에 있으며, 천주교 주소록에 쓰인 신자 수는 1991명이다. 주임신부 1명이 사목을 맡고, 사무실 직원으로는 사무장 1명이 근무하는 비교적 작은 본당이다.

사무장 경질을 요구하는 신자들의 주장은 첫째, 사무장이 교구 평균보다 훨씬 많은 급여를 받아 왔고, 둘째, 영상기기 설치와 CCTV 등 공사 진행에 비리 의혹이 있다는 것, 셋째, 사무장이 신자들에게 폭언을 했다는 것이다.

서울대교구 사무처는 이 가운데 사무장 급여와 시설비에 대해 확인한 결과 문제를 발견하지 못했고, 사무장과 신자 사이에 언쟁이 있었던 사실은 확인돼 사무장의 시말서를 받았다고 신자들에게 3월 15일 문서로 밝혔다.

그러나 문제를 제기하는 신자들은 교구의 해명과 조치를 납득할 수 없다며, 항의를 계속하겠다는 입장이다.

전 사목회 부회장 등, ‘성당 정상화 추진 모임’ 만들어 집회

사목회 부회장을 지낸 신자 등이 포함된 ‘(가칭) 인헌동 성당 정상화 추진 모임’(이하 정상화 모임)은 이 문제에 대해 유인물을 만들어 신자들에게 나눠 주고, 명동 서울대교구청 앞에서 수차례 집회를 열었다. 이들은 30여 명이 정상화 모임에 참여하고 있으며, 오는 주일인 4월 23일에도 교구청 앞에서 집회를 열 것이라고 <가톨릭뉴스 지금여기>에 말했다.

4월 초 <가톨릭뉴스 지금여기>와 만난 정상화 모임 신자 4명은 “6개월 전부터 본격적으로 사무장 경질을 위해 나섰다”고 설명했다.

이들 중 한 명은 본당에서 10년 넘게 일한 “사무장의 근무 태만, 불친절, 그리고 교무금, 봉헌금 정산에 의혹을 가졌다”고 말했다. 그러던 중 주임 김성권 신부가 2015년 9월 부임한 뒤 “사목위원들과 사목을 안 하고, 사무장, 측근과 일하는 모습을 보며 누적된 불만이 터졌다”는 주장이다.

이어서 그는 “신부님과 소통이 안 되니 몰래 가서 교구에 탄원서를 냈다”고 설명했다. 정상화 모임에 따르면 사무장 퇴진 요구에 394명이 서명했고, 서명과 탄원서는 교구장 염수정 추기경과 주교들에게 제출했다. 이들은 탄원서 제출 뒤, 주임신부가 본당 사목협의회(사목회)를 해산시켰다고 전했다.

정상화 모임은 “사무장이 퇴진하면 당장이라도 제대 앞에서 무릎 꿇고 주임신부님에게 사죄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본당 단체에서 활동했던 한 신자는 “신부가 사무장을 감싸고 있는 상황이라 문제 해결 가능성이 적다”고 4월 18일 <가톨릭뉴스 지금여기>에 말했다. 그는 “신자들이 사무장의 고용주들”이라고 강조하며 “교구의 신부 해임과 사무장 해임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 3월 18일 천주교 인헌동 본당 신자들이 명동 서울대교구청 앞에서 사무장 경질을 요구하는 집회를 열고 있다. (사진 제공 = (가칭) 인헌동 성당 정상화 추진 모임)

무슨 일이 있었을까?
정상화 모임의 주장과 교구의 입장 엇갈려

정상화 모임은 3월 15일자 교구 사무처장 명의의 공문을 받았다. 이 공문에서는 “2016년 10월부터 올해 2월까지 인헌동 본당 사무장과 관련된 투서가 교구청에 접수되었으며, 이에 주임신부님의 설명과 주교님 방문으로 화해와 용서의 인헌동 본당 모습을 기대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이어 “그러나 최근 관련된 의혹들을 나열한 사무장 퇴진운동 전단지까지 교구에 접수되어 이에 대한 사실을 확인한다”며 사실 관계 확인과 교구의 입장을 밝혔다.

교구는 정상화 모임의 탄원 내용 중 사무장이 “교구의 급여 규정에도 없는 점심 식사비를 매월 20만 원씩 부당 수령”했다는 주장에 대해, “타 본당과 비교해 본 결과 특별한 사안으로 볼 수 없다”고 밝혔다. 교구는 “(각) 본당 사정에 따라 주임신부님 결재 하에 직원 식대보조를 지원해 주는 경향이 있다”며 “교구에서는 본당의 모든 비용을 행정점검 등을 통하여 점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한 “2012년 기준 본당 직원 인건비가 4094만 원”으로 사무장이 “서울대교구 전체 본당 평균보다 30-40퍼센트나 많은 최고 수준의 급여를 받았다”는 지적에 대해, 교구는 “매년 적립하여야 하는 직원(사무장, 주방근무자) 퇴직급여 충당금 적립을 이행하지 않아 사무장 7년 치, 주방근무자 2년 치의 퇴직급여충당금(2148만 2155원)을 인건비에 속한 ‘퇴직급여충당금전입액’ 계정으로 회계처리했다”고 해명했다. 신자들이 이 액수까지 급여로 오해했다는 뜻이다. 교구 설명에 따르면 그 당시 연말정산 기준으로 사무장의 연봉은 2913만 4600원이었다.

서울대교구 내 본당에서 일하는 사무장, 사무원 등은 본래 교구장이 임용하는 ‘교구 소속 직원’이다. 급여도 교구 직원 보수규정에 따라 소속 본당에 상관없이 일괄 적용된다. 임용권은 본당 주임신부가 위임받아 행사하며, 급여도 본당 재정에서 마련해 주고 있다.

교구는 본당 내 영상기기 설치, CCTV 공사 등에 상임위원회와 사목위원도 모르게 1600만 원의 공사대금이 지불됐고, 용산 전자상가에서 동일 모델로 견적서를 받아 본 결과 약 725만 원으로 차이가 컸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확인 결과 “인헌동 본당 건은 특별한 사안으로 볼 수 없다”고 밝혔다. “인헌동 성당 규모의 빔프로젝트 설치비는 기기의 사양과 자재비용, 인건비 등을 고려하면 1000만-3000만 원의 비용이 발생”하며, 이는 타 본당 행정점검시 비교할 수 있다는 것이다.

교구가 문제를 인정한 것은 사무장의 언행 하나뿐이다. 사무장이 나이가 많은 신자들에게 “조폭적인 언행”을 하고 “막말과 삿대질, 폭언”을 했다는 정상화 모임의 지적에 대해, 교구는 사무장의 경위서, 소명서를 통해 2011년, 2016년에 있었던 2건의 언쟁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교구는 “본당에서는 서울대교구 취업규칙 제12장(포상 및 징계), 제86조(징계사유) 7항 ‘대내외적으로 직원으로서의 품위를 손상하는 행위를 한 때’를 위반사항으로 판단하여 사무장에 대한 징계로 시말서 제출을 명하였으며, 이에 사무장은 시말서를 이미 제출했다”고 덧붙였다.

교구는 또한 “주임신부에게 사무장에 대해 본연의 업무인 사무행정(시설관리포함)에 충실하도록 지속적인 지도와 사무장을 포함한 본당 모든 직원의 업무 지침 마련과 업무분장 정리를 시행해 줄 것을 권했다”고 밝혔다.

끝으로 교구는 “교구 취업규칙 제100조(직원인사위원회) 관련 규정에 의거하여 직원과 관련된 중요 인사 문제를 의결할 수 있도록 보편적인 인적구성으로 ‘본당직원인사위원회’의 조속한 설치를 주임신부님께 요청했으며, 추후 발생되는 본당 직원 인사문제에 대하여는 교구장님으로부터 위임받은 주임신부님과의 상의 그리고 ‘본당직원인사위원회’를 통해 문제 해결을 해 주실 것을 바란다”고 요청했다.

그러나 정상화 모임은 이 같은 교구의 입장을 받아들이기 어렵다며, “제 식구 감싸기”라고 <가톨릭뉴스 지금여기>에 말했다.

“서로 양보하고 원점부터 시작해야”
“사무장의 근무지를 다른 본당으로 옮길 수 없나”

<가톨릭뉴스 지금여기>는 인헌동 성당 주임신부, 사무장 등의 의견을 듣고자 전화와 팩스로 연락했지만 답을 들을 수 없었다. 사무장은 <가톨릭뉴스 지금여기>와 전화통화에서 본당 내 갈등에 대해 언론의 인터뷰 요청에 응하지 않는 것이 본당 입장이라고 말했다.

정상화 모임은 이 갈등을 적극적으로 외부에 알리고 싶어 했지만, <가톨릭뉴스 지금여기>가 만난 인헌동 성당의 다른 신자들은 갈등이 알려지는 것을 원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본당의 한 원로 신자는 공동체 내부에서 문제를 해결하고자 노력 중이라며,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들은 교적상 신자 약 2000명 중 20명 정도로 소수라고 말했다.

또 다른 신자는 “이렇게 가면 서로 끝까지 가는 수밖에 없다”며 “지금이라도 서로 양보해서 새로 원점부터 시작해야 하는데, 양쪽 다 버티기만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교구가 사무장의 근무지를 다른 본당으로 옮기게 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냐고 묻는 신자도 있었다.

서울대교구에서 본당 주임을 맡고 있는 한 신부는 <가톨릭뉴스 지금여기>에 이러한 성격의 본당 갈등은 해결되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인헌동 본당 갈등 해결에 시간이 오래 걸리고 공동체가 상처를 많이 입을 것을 걱정했다. 그는 서울의 보통 규모 성당에서 20-30명의 신자는 적은 수가 아니라며, 정상화 모임이 소수더라도 가볍게 볼 문제가 아니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 신부는 본당 주임신부가 어떻게 적극적 역할을 하느냐에 따라 상황이 달라질 수도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한편, 그는 (교구의 명령으로) 사무장의 임지 이동이 가능한지 묻는 질문에 전례가 없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저작권자 ©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