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교회, 젊은 세대 성직자들 주도

(피터 포이어허드)

가톨릭교회들이 재-개축을 하는 가운데, 교회 건축이 (가톨릭교회 안 진보, 보수파 간의) 전례 전쟁 전면에 등장하고 있다. 마이클 드샌티스는 교회건축 컨설턴트이자 신학교수로서 요즘 기분이 좋지 않다.

복고지향적 사목자들은 대부분 제2차 바티칸공의회가 상당히 지난 뒤의 세대로서, 변화들을 명령하고 있다. 이들이 때때로 “피자헛” 교회라고 깔보는 건물들의 시대는 지나갔다. 이들의 목표는 전통을 복원하는 것이다. 이들은 (제2차 바티칸공의의회 이전의 성당들처럼) 제대와 신자석을 가르는 제대난간을 설치하도록 강요하고 성체성사는 제대 근처에서만 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성소 영역을 구분하는 대리석을 비싼 돈을 들여 마루 위에 설치함으로써 성직자들의 전례 행위만을 위한 폼 나는 장소임을 드러낸다. 때로는 성가대를 뒤편의 2층 신자석으로 쫓아내어 실체 없는 소리만 들려 주기도 한다. 제대를 중심으로 둘러앉게 배치된 신자석을 뜯어고쳐 긴 사각형 신자석으로 재배치하는 본당들도 있다.

드샌티스는 펜실베이니아 주 이리에 있는 개넌 대학에서 미술과 사목학을 가르친다. 최근에 <엠마누엘>에 쓴 글에서 교회건축에서의 이러한 변화는 새로운 성직주의의 표현이라고 밝혔다. 이러한 움직임의 목표는 전례를 집전하는 사제를 전례에 참여하는 신자대중과 떼어 놓으려는 것으로, 제2차 바티칸공의회(1962-65)에서 평신도의 참여를 장려하고 (성직자와 평신도 회중 사이의) 장벽들을 강조하지 않도록 하는 데 초점을 뒀던 것에 반대되는 것이다.

그는 최근 <NCR>과의 전화인터뷰에서 “건축은 우리가 전례를 표현하는 방식”이라면서, 제2차 바티칸공의회 이후 세대의 사제들은 전례 중에 성소에서 나와서 신자들과 교류하는 모습이었다고 강조했다. 이 세대는 교회를 지을 때 원형으로 디자인하는 데 초점을 둬서 신자들이 서로를 더 가깝게 느끼도록 하고, 제대의 높이도 낮춰서 사제가 회중과 더 가까이하도록 했다.

하지만 성직자는 (평신도와) 구분되어야 한다고 다시 강조한 베네딕토 16세 교황의 생각이 반영된 신학교에서 양성된 (요즘의) 더 젊은 세대 성직자들이 본당을 맡기 시작하면서 이러한 모습은 변했다. 드샌티스가 알기에는 미국 전역에서 수많은 사제들이 1960-70년대에 지어진 도시 외곽의 성당들을 사제의 행위에 초점을 맞춘 성당으로 개축하고 있다.

▲ 그리스도의 빛 성당이라고도 불리는 캘리포니아의 오클랜드 대성당. (이미지 출처 = en.wikipedia.org)
이러한 움직임은 제2차 바티칸공의회 후 세대 신자들에게 상처를 주면서 진행되고 있는데, 이들 상당수는 성직자의 지위를 강조하기 위해 교회 설비를 재배치하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드샌티스는 자기가 아는 많은 신자들은 자기가 다니던 현대적 디자인 성당을 다시 개축하려는 움직임이 일면 그냥 다른 본당으로 옮겨 간다고 말했다. 이들은 현대 이전 교회를 향한 향수를 좋아하지 않으며, 이렇게 다시 고쳐 짓는 데 돈이 드는 것에 분개한다는 것이다.

그는 “우리는 더 이상 대충 받아들이지 않는다. 존중 받으려면 노력해야 한다”고 했다.

그의 글에서 드샌티스는 많이 비방을 받는 (제2차 바티칸공의회 뒤의) 도시 외곽 교회들이 공동체를 키우는 데 장점이 있다면서 옹호하였다.

그는 2차대전 뒤의 산물인 이리의 성 유다 사도성당의 예부터 시작한다. 이 교회는 눈에 띄는 첨탑 십자가가 있는 현대주의 건축물로서, “현대 세계 안에서 완전히 집에 있는 것처럼 편안히 예배를 할 장소”로 지어졌다.

“현대성은 성 유다 성당 사람들에게는 낯설거나 특별히 위협적인 것이 아니라 이들 제2차 대전 이후 미국의 번영하고 대졸교육을 받은 이들에게는 자기 교회에서 행하는 오래된 예식들만큼이나 상상력을 주는 그런 것이었다. 이들이 어린 자식들과 함께 살기로 선택한 이곳의 밝은 교외 분위기의 풍경에 이 성당의 뚜렷한 현대적 모습이 속속들이 녹아들었다.

그는 성 유다 성당은 현대의 미국인들이 많이 사는 교외 주거지의 풍경과 어울리며, 그것이 장점으로서, 옛 유럽의 대성당들과 닮지 않았지만 전혀 변명할 문제가 없었다고 강조한다.

하지만 이제는 변했다. 성 유다 성당은 요근래 재-개축을 하고 있다.

이제는 성소 둘레에 멋진 촛불들을 켜 놓아서 신자석과 구분해 놓았다. 제대 영역은 대리석으로 만들어서 한눈에 쉽게 구별해 놓았다. 전통적 요소들을 복원하려는 의도인 이러한 구조는 “나를 봐”라는 성직주의 사고방식을 담고 있다고 드샌티스는 썼다.

그는 이러한 변화는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전례 개혁에 영감을 받은 한두 세대 이전 사제들이 이룬 성취를 다시 되돌리려 열심인 사제들의 물결”이 물리적 변화를 통해 표현하는 “깐깐한 세력권 의식”을 보여 주는 사례들이라고 강조한다.

그는 자기의 표현들이 너무 직설적일지도 모르겠다면서도 방향은 맞는 비판이라고 했다. 그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자기와 같은 편이라고 본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교회를 일종의 박물관으로 만들지 말라고 비판하고, 복음을 환영하고 선포하는 대신에 전례 복장은 외적 표현에 초점을 두는 것을 경계해 왔다.

그는 젊은 성직주의 복고주의자들이 혹평하는 나쁜 현대주의 디자인 성당도 있었다고 <NCR>에 인정했다. 하지만 그는 “교회는 우리가 중세에 살고 있는 것처럼 느끼게 계속 그래서는 안 된다”고 했다.

그의 건축 디자인 목표는 “우리 시대에 걸맞은 전례적, 건축학적 스타일을 갖추는 것”이다. 그는 일리노이 주 휘턴에 있는 성 미카엘 성당을 예로 들었다. 이 성당을 디자인할 때 그가 자문했다. 또 캘리포니아 주 오클랜드에 있는 빛이신 그리스도 대성당도 예로 들었다.

그는 현대주의 스타일은 꼭 외면만 다른 것이 아니라고 했다. 현대주의 스타일은 위대한 유럽식 성당들만큼이나 가장 깊은 인간 내면에 영향을 줄 수 있다. 그는 현대 미국의 위대한 기념물들인 워싱턴의 베트남전 전몰자기념물과 뉴욕의 9.11테러기념물을 예로 들었다.

그는 교회 건축은 성직자와 평신도를 하나로 만들어 줄 필요가 있으며, 서로가 나뉠 기회를 더 만드는 식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모든 나이대의, 서로 다른 전례관을 가진 사제들이 자신들이 책임진 평신도들로부터 도피하는 피난처로보다는 교회가 자신의 기도를 말할 때마다 신자들과 더 깊이 일치하는 바로 그 입구로서 자신의 일터를 대하기 시작하는 것”이 그의 희망이다.

(피터 포이어허드는 <NCR>의 야전병원 본당 시리즈에 기사를 쓰고 있으며, 또한 뉴욕에 있는 세인트존스 대학의 신문방송학과 교수다.)

기사 원문: https://www.ncronline.org/blogs/ncr-today/new-clericalism-imposing-old-ways-modern-church-architec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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