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중 대주교, “강요 아닌 가톨릭 윤리에 맞는 표준 제시”

한국 천주교주교회의가 사전연명의료 의향서에 관한 지침과 해설을 4월 20일 발표했다. 이 지침은  지난 춘계 정기총회에서 승인됐다.

지난해 2월 ‘호스피스·완화의료 및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 결정에 관한 법률’이 제정돼, 사전연명의료 의향서를 쓰는 제도가 만들어졌다. 이 법은 2018년 2월 4일 시행 예정이다. 주교회의는 가톨릭교회의 가르침에 비추어 의향서를 작성하도록 해설을 마련했다.

법에 따르면 연명의료는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에게 하는 심폐소생술, 혈액 투석, 항암제 투여, 인공호흡기 착용의 의학적 시술로, 치료효과 없이 임종과정의 기간만을 연장하는 것”이다. 사전연명의료 의향서는 “19살 이상인 사람이 자신의 연명의료 중단 등 결정 및 호스피스에 관한 의사를 직접 쓴 것”이다.

주교회의는 “이 문서(의향서)가 죽음을 결정하려는 것이 아니라 환자에게 실행하거나 실행하지 않을 의료 행위를 판단할 때 의료진이 고려할 환자의 의향을 명시하려는 것”이라고 분명히 하고, 그 판단 기준은 ‘균형적 의료행위’와 ‘불균형적 의료행위’의 구별이라고 강조했다.

균형적 의료행위는 환자의 상태에 비추어, 환자에게 도움이 되고 지나친 부담과 부작용을 동반하지 않는 적절한 행위이며, 불균형적 의료행위는 환자에게 효과는 미미하지만, 환자에게 끼치는 부담이나 부작용은 너무 큰 경우를 말한다. 주교회의는 이런 처치를 판단하기 위해 담당의사의 의학적 소견을 바탕으로 환자의 신체적, 정신적, 심리적 상황이 고려되어야 하며, 의료행위가 균형적이라고 판단되면 실행할 의무가 있고, 불균형적이라고 판단되면 실행을 거부하거나 유보할 수 있다고 했다.

또한 어떤 경우에도 영양과 수분 공급(관을 이용한 공급과 정맥주사 포함), 산소의 단순 공급, 체온 유지, 욕창 예방, 위생관리, 통증 조절 등의 기본적 돌봄은 계속 시행되어야 한다고 강조했고, 말기 환자는 호스피스, 완화돌봄을 받을 것을 권고했다.

예를 들어 천주교 신자인 베드로 씨(55살)가 지금 중병을 앓지는 않지만, 죽음을 대비해 연명의료에 관한 의향을 사전연명의료 의향서로 쓰기로 했을 때 교회의 권장은 다음과 같다.

호스피스, 완화의료의 대상이라면 이를 희망하고, 통증 완화를 위한 의료행위와 영양, 물, 산소 공급, 체온 유지, 욕창 예방, 위생 관리 등의 기본적 돌봄은 마지막까지 실시한다. 또 죽음을 직, 간접적으로 초래하는 의도적 행위는 모두 배제한다. 다만 심폐소생술, 혈액투석, 항암제 투여, 인공호흡기 착용 등의 의료행위가 ‘불균형적’이라고 의학적으로 판단되면, 이를 동의하거나 거부할 수 있다.

법에서도 연명의료 중단을 결정할 때 “통증 완화를 위한 의료행위와 영양분 공급, 물 공급, 산소의 단순 공급은 시행하지 아니하거나 중단되어서는 아니 된다”고 명시돼 있다.

중요한 것은 ‘불균형적 의료행위’인데, 실제로 사전연명의료 의향서를 쓸 때는 환자의 상태가 고려되지 않기 때문에, 교회는 이를 보완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 주교회의 지침에는 ‘안락사’나 ‘존엄사’가 말 그대로 안락하고 존엄한 죽음을 위한 적절한 조치라면 문제가 없을 것이나 실상은 다르다며, 가톨릭교회에서는 ‘환자를 죽도록 하는 모든 경우를 안락사’라고 했다. 또 교회는 적극적 안락사와 소극적 안락사를 구분하지 않으며, “이름은 안락사이지만 내용은 무고한 사람을 죽이는 살해”이고 의사조력자살 또한 마찬가지라고 했다. 교회는 존엄사라는 말도 사용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이 지침에는 사전연명의료 의향서 양식도 첨부되어 있는데, 가톨릭 신자를 위한 교육용으로 법적 효력은 없다.

한편, 지난 3월 24일 주교회의 총회 폐막 브리핑에서 주교회의 의장 김희중 대주교는 이 지침이 참고자료이며, 강요하는 것은 아니라고 밝혔다. 그는 “신자로서 가톨릭 윤리에 적절하게 진행하면 좋겠고, 표준을 제시한 것”이라고 말했다.

주교회의 홍보국장 이정주 신부는 “가톨릭교회는 인위적 죽음은 받아들일 수 없으며, 최소한의 영양, 물, 산소 공급은 반드시 이뤄져야 하고, 이를 바탕으로 의료계가 제시하는 것 중 수용할 수 있는 것은 수용하고, 거부할 것은 거부하는 방식”이라고 설명했다.

의향서 작성에 관한 지침과 해설은 주교회의 홈페이지에서 볼 수 있다.

▲ 가톨릭 신자를 위한 교육용 사전연명의료 의향서 양식. (이미지 출처 = 한국 천주교주교회의)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저작권자 ©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