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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 시장원리라면 벌써 사라진 핵발전[시사비평 - 박병상]

<경향신문>은 지난 4월 11일자에 핵발전소를 옹호하는 교수의 기고문을 실었다. “원전의 질서 있는 퇴진”에 대해 먼저 기고한 다른 교수의 의견에 대한 일종의 반론이었다. 그 신문은 재반론을 실을지 알 수 없다. 일반적으로 정기 기고의 글이 지상 토론으로 이어지지 않기 때문인데 재반론에 허점이 지나치게 많다. 반드시 재반론이 필요한데, 그 방면 전문지식은 부족해도 한마디 거들어야겠다. 비전문가의 시각으로 재반론을 펴도 충분할 정도로 어설픈 반론이지만 독자의 판단을 어지럽힐 수 있기 때문이다.

우선 ‘핵발전’이라 칭해야 옳다. ‘제3의 불’이라며 교과서로 학생 뇌리에 최면을 걸 초기부터 정부와 전문가는 핵발전이라고 했다. 우라늄이든 플루토늄이든, 원자 한가운데의 핵을 고속 중성자로 때려 분열시켜 전기를 생산하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원자력’은 핵발전소의 끔찍했던 사고로 부정적 인상을 가진 ‘핵’이란 단어를 의도적으로 순치했을지언정 지나치게 포괄적이다. 한마디로 과학적이지 않다.

폭발한 지 6년이 넘은 후쿠시마 핵발전소는 복구비용이 20조 엔, 우리 돈으로 200조 원이 훌쩍 뛰어넘을 것으로 NHK방송이 지난해 말 추정했다. 우리나라 1년 예산의 거의 절반이고 핵발전소 건설비용의 수십 배에 달한다. 예상되는 사고를 전기 원가에 포함한다면 핵발전소에서 생산하는 전기료는 크게 오를 수밖에 없다. 따라서 시장원리에 맡기면 핵발전소는 유지될 수 없다. 핵발전이 유지되는 건 핵발전으로 이익을 보는 세력이 우리나라에 강하기 때문이다. 탈핵단체가 ‘핵동맹’이라 말하는 세력이 비민주적으로 정치권과 경제권, 학계와 주류 언론계를 흔들기 때문이다.

핵발전소에 근무하는 친구는 한 차례도 사용하지 않을 안정설비 때문에 들어가는 비용을 제외하면 전기료는 더욱 싸질 수 있다고 확신한다. 그는 이미 미국, 구소련, 그리고 일본에서 사고가 발생했어도 우리 핵발전소의 사고 가능성을 조금도 염두에 두지 않는다. 우리나라는 사고가 난 나라보다 핵발전소의 설계가 확실하고 관리운영이 분명한가? 핵발전소 주변에서 발생하는 비리와 은폐는 상상을 초월한다. 운영과 관리가 투명하지 않을수록 비리는 커진다. 사고 가능성과 더불어 커진다. 지금까지 은폐하려다 발각된 사고는 얼마나 될까? 1000건 미만이라고 자랑할 텐가?

보험업계의 유명한 ‘하인리히 법칙’을 상기해 보자. 중상자가 발생한 교통사고가 1건 있다면 그와 비슷해도 경상자가 발생한 사고가 29건, 사고로 이어질 뻔했던 경험이 300회라고 한다. “1대 29대 300”이 핵발전소 사고에도 예외가 없는 하인리히 법칙이다. 화력발전소도 비슷한 사고가 있을 것인데, 핵발전과 다른 치명적 차이는 방사능이다. 사고가 빈발하는 낡은 화력발전의 시설은 교체하거나 폐기하면 그만이지만 핵발전은 쉽지 않다. 인체는 물론이고 생태계를 항구적으로 오염시키는 방사능이 치명적으로 나오기 때문이다.

사고가 발생하지 않는 핵발전? 그런 건 없다. 하도 은폐해 우리 눈에 쉽게 띄지 않을 뿐이다. 이제까지 드러난 600건 이상의 사고만이 아닐 게 분명한데, 후쿠시마 이상의 사고가 없어 다행이다. 하지만 방사능 누출은 없지 않았다. 핵연료 폭발 사고가 없지만, 낡아서 결국 폐쇄할 핵발전소는 다행히 전기를 값싸게 생산한 걸까? 우리는 전기료를 어떻게 계산하는지 모른다. 많은 원가는 가격에 포함되지 않는다. 다만 다른 데 떠넘겨질 뿐이다.

   
▲ 사고가 나지 않는 핵발전은 없다. 하도 은폐해 우리 눈에 쉽게 띄지 않을 뿐이다. (이미지 출처 = Pixabay)

핵발전소 폐쇄 비용을 정확하게 예측하기 어렵다. 폐쇄 비용은 전기요금에 정확하게 반영되지 않았다. 핵발전소 건설비용보다 작을까? 그건 희망사항이다. 폐쇄하는 기간은 건설기간보다 짧을까? 아닐 가능성이 확실히 높다. 핵폐기물을 안전하게 보관, 격리할 수 있을까? 그건 불가능하다. 연약지반에 만든 경주 핵폐기장은 위험시설이다. 사용 후 핵연료는 대대손손 엄격하게 관리하지 않으면 후쿠시마 이상의 방사능을 누출할지 모르는데, 전기요금에 제대로 반영되지 않았다.

핵발전의 질서 있는 퇴진론에 반론을 편 교수는 “재생 가능한 에너지가 야기하는 환경문제도 매우 심각하다”고 물타기 하면서 어떤 문제가 어떻게 발생하는지 일체 제시하지 않았다. 그가 거론한 재생 가능한 에너지의 정체는 무엇인가? 댐으로 생태계를 파괴하는 수력인가? 조력으로 갯벌과 해양 생태계를 황폐화하는 조력인가? “핵발전소의 사생아”라고 탈핵운동가들이 비유하는 양수발전인가? 설마 태양광이나 풍력을 예로 든 건 아니겠지? 태양광이나 풍력이 환경문제가 있다는 건 아니다. 하지만 그 문제는 쉽게 해결할 수 있다. 위험성이 대중의 교통수단이나 일반 건축 구조물보다 심각한 건 아니지 않은가?

반론을 편 교수의 주장에 재반론을 펼 사람은 비전문가 중에도 참으로 많다. 그래서 시시콜콜 이야기할 생각은 없는데, 그가 피력한 ‘늦장 대응’에 대한 핑계는 참으로 위험한 발상이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지난 3월 28일 발생한 고리 핵발전소 4호기의 원자로 냉각재 누설사고 이후 가동 정지에 이틀 걸린 사실을 탈핵단체는 늦장 대응이라 지적했다. 그 교수의 어설픈 반론처럼 고장난 자동차를 수리하는 데 하루 이틀 이상 걸릴 때가 많다. 하지만 위험을 의심할 만큼 고장난 차를 몰고 다니는 사람은 없다. 핵발전 시설의 사고는 방사능 유출로 이어질 수 있다. 더구나 냉각재가 누출되면 그 가능성은 더욱 커진다. 고장 원인을 찾고자 핵발전소를 이틀 가까이 가동했다는 게 자랑인가?

수백만 개 부품이 들어간 거대한 기계설비의 사고 원인을 찾는 데 필요한 기간이 길 수 있다는 걸 부정하는 탈핵단체는 없다. 하지만 그들이 문제 삼는 건 수리 기간이 아니다. 투명하지 않은 대응이다. 부품이 많을수록, 설비가 낡을수록, 은폐가 심할수록, 사고 가능성은 커진다. 탈핵단체는 핵동맹의 이익과 세력 유지를 위한 수단으로 은폐가 고집스레 이어진다고 의심한다. 핵발전은 우리나라만 유지하는 게 아닌데, 지나치지 않은가? 핵발전소가 낡아도 우리보다 안전하다 믿는 나라는 우리와 참 다르다. 핵발전소를 건설 운영하는 부서는 안전을 감시하고 운영을 통제하는 부서와 완벽하게 분리되었다. 우리는 두 부서의 인적 교류가 사고를 은폐하고 싶을 만큼 활발하다. 아니 그런가?

민주주의가 강한 나라일수록 핵발전소가 없거나 퇴조인 이유는 무엇일까? 유럽 최대의 산업국가인 독일은 전기소비도 많다. 1인당 평균 소비는 우리보다 작아도 가정의 전력소비는 우리의 거의 두 배인데, 독일 정부는 모든 핵발전소를 2022년까지 폐쇄하기로 국민에게 약속했다. 태양 빛의 세기가 우리보다 낮은 독일이 태양만으로 전기 소비를 충족한 날이 많았다. 미세먼지 발생을 막기 어려울 뿐 아니라 온실가스 배출이 막대한 화력발전도 차차 줄이려고 노력한다. 생산자가 의사를 독점하는 우리와 다르다. 소비자의 의사를 주목한다. 시민사회의 참여가 적극 보장된 상황에서 정책 결정자의 투명한 논의가 활발하다. 그런 논의는 사회에 신뢰를 높인다. 민주주의의 힘이다.

이 재반론을 본 핵동맹은 사용 후 핵연료는 다시 재활용해 비용도 줄이고 환경도 살리겠다고 주장하고 싶을지 모른다. 지금까지 수십 년 이상 연구했지만 많은 국가가 핵무기 연료가 아닌 핵 재처리를 포기했다. 걷잡을 수 없게 늘어나는 치명적 위험성과 감당할 수 없는 비용 때문에 경제성이 있다. 아니라고 부정해도 소용없다. 경험적이고 과학적인 증거가 수두룩하지 않은가. 그 사실을 알아도 사용 후 핵연료의 재처리를 밀어붙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한 줌 핵동맹의 이권과 세력유지를 바라기 때문이라고 탈핵단체는 비판한다. 민주주의가 활발해지면 결국 드러날 사기 행위와 다르지 않다고 확신한다.

핵발전은 시장원리가 아니라 그들, 핵동맹의 탐욕으로 지속될 뿐이다. <경향신문>에 실린 모 교수의 반론을 읽으니, 핵발전이든 사용 후 핵연료의 재처리든, 반드시 해결해야 할 적폐의 핵심이라는 생각이 더욱 분명해진다.

 
 
박병상 

인천 도시생태, 환경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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