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작영화 <잘 알지도 못하면서>

홍상수 영화는 김기덕 영화만큼 극명하게 갈린다. 대중의 반응이나 평단의 평가가 극단적으로 나뉜다. 맹렬한 마니아층이 있는 반면, 아예 외면하는 대중도 적지 않다. 그들 영화에서 상업적인 성공을 기대하는 일은 애초부터 무리한 요구다. 그런 까닭에 여타 상업영화와 구별되는 매우 독특하고 남다른 면모를 찾아보는 쌉쌀한 유쾌함도 있다.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에서 시작하여 <강원도의 힘>과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를 거쳐 <극장전>에 이르기까지 10년 세월 홍상수의 관심은 남녀의 시시콜콜한 사랑이다. 올해 지천명의 나이에 이른 그가 다시 사랑과 인생과 그 내부에 틈입하는 잡다한 감정 등속을 가지고 돌아왔다. 왜 그는 남녀문제에 그토록 줄기찬 관심을 내보이는 것일까.

그가 그려내는 인물은 대개 지식인이다. 소설가, 출판인, 대학 강사와 교수, 영화감독 등이 홍상수가 만들어내는 인물군상의 전형이다. 지난 세기 90년대 중반부터 21세기 10년에 이르는 시간 속에서 그가 포착하는 지식인 사회의 사랑과 성의 풍속도가 홍상수 영화의 중심축인 셈이다. 이런 몇 가지를 염두에 두고 <잘 알지도 못하면서>를 생각해보자.

구경남과 부상용, 그리고 공현희

2005년 여름부터 시작된 '제천국제음악영화제' 심사위원으로 초빙된 영화감독 구경남이 2008년 8월 땡볕에 대면하는 제천 사람들 이야기. 이것이 영화 전반부다. 영화는 구경남의 일상과 결부된 크고 작은 사건을 축으로 진행된다. 마흔 살을 바라보는 나이에 아직 미혼으로 사는 구경남의 성생활은 그다지 폭이 넓지도 깊이가 있어 보이지 않는다.

영화판과 결부된 애인과 주고받는 휴대전화 통화내용이 그것을 입증한다. 그다지 활동적이지도 않고, 대인관계가 원만하지 않은 구경남을 한낮에 불쑥 찾아온 후배 부상용. 한때는 영화사 설립을 함께 기획하고 꿈꾸었던 그들은 대낮부터 낡은 향수와 술에 취한다. 문제는 그들 관계가 매우 헐겁고 느슨하지만 단단한 무엇으로 얽혀있다는 점이다.

부상용의 남루하지만 단단한 일상과 삶의 배후에는 유신이 있다. '빛과 같은 여자'라고 유신을 소개하는 상용의 얼굴에 득의만면한 웃음이 그득하다. 남자에게 빛으로 다가온 여인 유신과 그녀를 바라보는 경남의 엇갈리는 눈길. 제천에서 이틀 밤을 보내는 경남에게 수수께끼처럼 다가온 유신과 상용의 관계는 사랑의 다채로운 빛살 가운데 하나를 보여준다.

영화제 프로그래머 공현희는 입체적인 인물이다. 능숙한 영어와 화려한 외모, 상당한 음주량까지 겸비한 그녀는 쿠페를 몰고 다니는 제천의 자랑이다. 하지만 그녀 이름에서 연상되는 ('공연히'로 읽히는 독음을 기억하시라!) 헛되고 무의미한 어떤 것이 우리의 발길을 붙든다. 채워지지 않는 욕망과 자기과시의 최종지점을 확인해주는 여인 공현희.


구경남과 양천수, 그리고 고순

영화 전반부에서 열이틀 흐른 시각. 우리의 구경남은 제주에 도착한다. '제주 영상아카데미' 초청을 받은 그가 자신의 영화와 관련하여 대학원생의 도발적인 질문에 답한다. '왜 남들이 이해하지도 못하는 영화를 만드세요?' 자신의 영화철학을 펼쳐가는 구경남의 말투에 힘과 진실성이 듬뿍 묻어난다. 그럴수록 공허해지는 반응과 쓸쓸한 웃음소리.

경남을 제주에 초정한 선배는 또 다른 선배 양천수를 술자리로 인도한다. 미대출신 영화감독 구경남의 까마득한 선배화가 양천수. 그는 지금 제주에서 젊은 여자와 살고 있다. 영화 후반부는 이렇게 구경남을 둘러싼 또 다른 삼각관계에 기대어 이어진다. 양천수의 원숙한 지혜와 깨달음이 어떻게 성적 판타지로 작용하는지 사람들은 낱낱이 경험한다.

사람들은 기억하고 싶은 것만 기억하고, 듣고 싶은 것만 듣는다. 지난밤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왜 그랬는지, 그 결과가 무엇인지 그들은 무관심하다. 경남은 양천수의 아내 고순과 담담하게 해후한다. 상당한 나이 차이에도 무척이나 행복한 두 사람을 바라보는 경남의 몸과 시선에 쓸쓸함이 담긴다. 그것은 바다로 향하는 그의 질주에 묻어난다.

문제는 그들 관계가 생각보다 깊고 넓게 펼쳐져 있다는 것이다. 쉽게 외면하거나, 단지 부러워하거나 질투하는 관계 이상의 복선이 부설되어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런 점이 홍상수 영화의 특징일지도 모른다. 슬쩍 지나치는가 싶더니 이내 딴죽 걸면서 눈을 흘기는 영화. 그러기에 고순이 경남에게 남기는 말은 상큼하되 아프게 다가온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아는 체 하지 마. 아는 만큼만 안다고 그래."


인생이란 무엇인가

경남은 영화를 찍으면서도 인생의 비의를 제대로 알지 못하는 인물처럼 보인다. 특히 고순의 마지막 말에 온전하게 대응하지 못하고 쩔쩔매는 경남은 여성의 심리와 내면포착에 성공한 감독처럼 보이지 않는다. '쿨 하게' 경남을 떠나가는 고순의 내면풍경을 그가 올바르게 독서했는지, 그것이 정말로 궁금하다. (그는 아마 잘 모르지 않았을까!)

<잘 알지도 못하면서>는 여러 가지 면에서 숙제 같은 영화다. 남녀의 심리와 내면을 다각도로 풀어가는 면에서 흥미롭기까지 하다. 가볍게 문제를 제기하고, 거기서 유발된 과정과 결과를 찬찬히 돌이킴으로써 사태의 핵심에 다가가는 홍상수의 태도는 직선적이고 저돌적인 우리 관객과 상당한 거리가 있다. 영화감독으로서 그의 매력이자 단점이다.

공현희가 과시하는 음주량은 에로배우의 음주량과 차이가 난다. 그것이 불러오는 일상의 일탈과 예기치 못한 결과를 바라보면서 우리는 생각한다. 술 취한 자들의 작고 사소한 행위 하나로 인해 야기되는 돌이킬 수 없는 파국의 양상을 생각한다. 홍상수 영화의 힘이다. 하지만 그것은 이내 망각된다. 술에서 시작하여 마침내 술로 끝나기 때문이다.

고순과 경남의 해후가 결과하는 내용 역시 또 다른 생각거리를 선사한다. 왜들 저러고 사나, 하는 물음과 그것에 대응할 자세를 되물으면서 의표를 찔렸다는 느낌이 든다. 행복하고 넉넉한 양천수의 행각과 그를 넉넉하고 훌륭한 인간이라 주장하는 고순의 자세에 남겨진 빈 부분. 인간의 내밀한 욕망과 그것의 성찰을 담은 영화 <잘 알지도 못하면서>.


술과 욕망 그리고 사람

대한민국 문화ㆍ예술계 행사가 늘 그러하듯 '제천영화제'에서도 으레 술과 관계가 동반한다. 그들이 맺는 관계의 중심에 술이 자리한다. 술이 없다면 관계도 없다. 이것은 제주에서도 고스란히 되풀이된다. 자리와 차수를 바꿔가면서 음주에 음주를 거듭하는 사람들. 따라서 영화 내내 그들은 마시거나 취해 있거나, 흔들리고 있다. 술과 욕망 탓이다.

술을 매개로 진행되는 영화 <잘 알지도 못하면서>는 술의 힘으로 인간을 탐사한다는 혐의가 짙다. 자신도 감추고 싶은 욕망을 술김에 분출하는 인간군상의 허술함과 그것에서 발원하는 결과를 그려내기 때문이다. 여기서 재미난 점은 경남을 축으로 돌면서 관계가 뒤얽힌다는 사실이다. 관찰자가 행위자로, 욕망하던 자가 실행하는 자로 화하는 것이다.

부상용과 유신의 관계에서 경남은 단순히 욕망하는 구경꾼이며 황홀한 환각과 몽환상태에 빠져있다. 반면에 그의 내면에 깊이 새겨진 것은 상용의 확신이다.

"인간의 행복과 불행은 짝을 만나는 데 있어. 돈이나 권력이 아니라, 자기와 가장 잘 맞는 짝을 만나면 사람은 정말 행복해진다니까."

아직도 세상을 떠돌면서 짝을 구하는 인간 경남의 눈에 들어온 두 번째 쌍 양천수와 고순의 관계. 내밀하지만 강렬하게 욕망하던 경남의 구체적 행위유발 요인을 제공하는 쪽지와 확인행위는 영화의 결말을 확연하게 드러내 보인다. 욕망과 행위 사이의 거리확인 결과가 무엇인지 영화는 숨기지 않고 전부 까발리는 것이다.


홍상수 인물들의 이름

홍상수는 인물의 이름을 가지고 그들의 기본적인 성격을 관객에게 통지한다. 예컨대 구경남이란 이름에는 '구경하는 남자'의 의미와 '남을 구경하다'의 의미가 들어있다. 이름처럼 경남은 남들이 살아나가는 삶의 조각을 들여다보는 구경꾼이자 영화감독이다. 특히 그는 남녀의 애정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그것을 찬찬히 살피고 관찰하는 인물이다.

상이용사를 연상시키는 부상용은 마음의 상처를 안고 제천으로 내려온 인물로 자신을 치유하는 여인을 만나 새로운 삶을 살아간다. 손에 감고 있는 붕대는 그가 언제든지 부상당할 위험이나 가능성에 노출되어 있음을 암시한다. 유신은 부상용을 새로운 삶으로 인도하는 빛과 같은 인물로 낡은 것을 혁파하여 새로움으로 인도한다는 의미를 지닌다.

고순의 이름에서 우리는 '지고지순'을 연상한다. 결혼과 인생에 대한 깨달음, 육체를 향한 인간적이고 소박하며 순수한 갈망을 그녀에게 확인한다. 고순이 보여주는 무한히 자유롭고 허허로우며 당당한 자세는 무척 신선하다. 반면 공현희에게서 우리는 막연하면서도 어떤 비어있음과 허망함, 가벼움과 깊이 없음 따위를 어렵지 않게 연상할 수 있다.


짧은 맺음말

<잘 알지도 못하면서>는 상당히 재미있다. 홍상수 감독의 전작처럼 그다지 어렵거나 심각하지도 않다. 우리가 항용 부딪치는 일상과 나날의 풍경을 도처에서 확인할 수 있다. 영화에서 구경남이 말하듯 어떤 강력한 주제를 논하는 것도 아니고, 주장을 설파하지도 않는다. 아름답거나 기막힌 장면을 선사하지도 않는 영화가 <잘 알지도 못하면서>다.

정말이지 잘 알지도 못하면서 상대방 성격이나 상황을 이해하려드는 경우가 있다. 그때 영화는 넌지시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듯하다. "조금 더 생각해봐. 남의 입장과 관점에서 다시 한 번 돌이켜봐. 그리고 가능하면 여러 번 숙고하고 행동하면 좋겠어. 특히 술에 취했을 때는 더욱 조심하고, 남을 생각하면 좋겠어." (잘 알지도 못하면서 이런 글을 쓴다!)  <기사제공: 열린문화웹진 온장 http://onjang.or.kr >

김규종 선생님은 현재 경북대학교 노어노문학과에서 러시아 문학을 가르치고 계십니다. 젊은 날 혁명가와 시인을 꿈꾸었으나 지금은 영화 평론가로 데뷔, 영화 평론집까지 내신 열혈 시네마 키드이시죠. 양복 차림에 운동화를 신고 캠퍼스를 휘젓는 선생님은 민교협 활동도 활발히 하시면서 현재 대구 민예총의 영화비평연구소 소장을 맡고 계십니다.

역서와 저서로는 <마야꼬프스끼전집(3) 희곡 미스쩨리야 부프>(마야꼬프스끼),<강철은 어떻게 단련되었는가〉(N.오스뜨로프스끼)>, <문학교수,영화속으로 들어가다>(경북대출판부,2005), <문학교수,영화속으로 들어가다2>(신아사,2008), <대학생으로 살아남기>(써네스트,2008) 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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