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성욱 선생의 학교]

지난 2012년에 이어 올해에도 한국고용정보원의 직업만족도 순위가 발표되었다. 2016년 6-10월까지 우리나라 621개 직업종사자 1만 9127명을 대상으로 직업의 발전 가능성, 급여만족도, 직업 지속성, 근무조건, 사회적 평판, 수행 직무 만족도를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순위를 매겼는데 올해의 1위는 판사였다.

교육과 관련된 분야는 지난 조사와 마찬가지로 상위권에 들어 있다. 2012년에 1위를 차지했던 초등학교 교장(교감)이 6위, 초등교사는 17위를 차지했다. 특히 초등학교 교장(교감)은 사회적 평판 부문(자신의 직업을 자녀에게 권유하고 싶은가?)에서 판사마저 제치고 당당히 1위를 차지했다. 이 외에도 대학교 총장, 교수, 장학사 등이 제법 높은 순위를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나 5년 전과 마찬가지로 교육 분야 직업의 만족도가 여전히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났으며 앞으로도 이러한 현상은 꾸준히 유지될 것으로 예측하는 전문가들도 있었다.

600여 개의 직업 중에서 17위에 오른 초등교사도 상당히 높은 순위에 해당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5년 전에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이보다도 더 월등하게 만족하고 있는 사람들은 교장, 교감들, 이른바 학교 관리자들이다. 도대체 이들은 왜 이리 만족도가 높은 것일까?

어느 학교를 가나 그 학교에서 가장 시설이 좋고 쾌적한 곳은 아이들이나 교사들이 있는 곳이 아니라 교장실이다. 교사용 책상은 다 부서져 가도 교장실의 책상만큼은 어느 기업 회장님 못지않은 것들이 들어가 있다. 우리 학교만 해도 작년에 일부 리모델링 공사를 진행하면서 가장 아이들에게 교육하기 좋은 신관 2층 공간에 교무실과 교장실, 행정실을 배치했다. 교장실 옆에는 각종 회의를 여는 회의실이 붙어 있고 교장실의 은밀한 공간에는 교장만을 위한 싱크대와 냉장고, 세면대 등이 갖춰져 있다. 수십 명의 아이들이 뒹구는 먼지 가득한 교실과 달리 교장실은 항상 낯선 가구들, 제법 비싸 보이는 화분들과 쾌적함, 그리고 고급스러움으로 가득하다. 영화 '매트릭스'에서 문을 열면 전혀 다른 세상이 펼쳐지는 것처럼 교장실의 문을 열면 익숙하지 않은 세상이 펼쳐지게 된다.

시설뿐만 아니라 예산에서도 교장은 많은 특혜를 누린다. 학교 예산에 교장실 운영 항목이 따로 편성되어 있는데 예산이 삭감되어 모든 부서가 예산을 줄이는데도 교장은 그 의무에서 벗어난다. 교장 스스로 자신과 관련된 예산을 삭감하겠다고 하지 않는 이상 교장과 관련된 예산을 줄이도록 강제할 수 있는 방법이 사실상 없는 것이다. 실제 우리 학교는 학교 예산 안에 교장실 운영항목으로 내빈접대용 물품 구입비(130만 원), 학교내외행사추진비(250만 원), 직책급 업무추진비(343.2만 원), 심지어 경조사비(50만 원)까지 책정되어 있다. 이를 모두 합하면 773.2만 원으로 1년간 전교생을 위한 과학교구 및 실험재료 구입비 260만 원, 체육교구 구입비 180만 원, 2학년부터 6학년까지 다섯 개 학년의 학교스포츠클럽 운영비 100만 원을 다 합친 금액보다도 수백만 원이나 많다. 교장의 손님을 접대하기 위한 내빈접대용 물품을 구입하는 비용이 130만 원인데 학교 전체 30개 교실의 환경을 개선하는 학급환경비가 고작 90만 원이다. 계산해 보면 학급 환경비라고 주는 돈은 한 반에 3만 원이다.

▲ 교장이라는 자리에 앉는 순간 후줄근한 학교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 아방궁에 들어가게 된다. (이미지 출처 = Pixabay)

결국 교장이라는 자리에 앉는 순간 이 후줄근한 학교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아방궁에 들어가 경조사 같은 사적 용도까지 배려 받으며 돈을 받고 작은 왕국의 제왕이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은 특권을 누리는데 이를 자신의 자녀에게 권하지 않는다면 그것이 오히려 이상한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문제는 교장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전체의 문제로 확대할 수 있다.

국회의원을 보자. 우리나라 국회의원 1인당 보좌관은 7명+2명, 총 9명을 채용할 수가 있다. 이들을 위해 국회의원 1인당 연간 3억 원이 넘는 인건비를 지출하고 있다. (물론 국고에서 지원받는다.) 연봉은 무려 1억 3000여만 원, 항공기, KTX, 선박 등 교통수단 공무이용 전액지원, 연 2회 해외시찰 국고 지원, 가장 저렴한 보험료(A등급) 납부, 11억 6000만 원이 넘는 국회 내 개인 사무실 제공, 불체포, 불소추 특권 등등. 국가의 주인이라는 민주국가 국민들은 감히 상상도 못하는 각종 특혜들을 국민의 종이라는 국회의원들은 잔뜩 누리며 살고 있다. 게다가 주당 노동시간은 계산하기조차 어렵다. 일을 너무 많이 하기 때문이 아니라 도대체 언제 일하는지 알기 어렵기 때문이다.

감히 비교대상도 되지 않지만 스웨덴 국회의원 보좌관은 의원 3-4인당 달랑 1명이다. 최대 1/36. 좋은 노동여건 덕분에 스웨덴 노동자들의 평균 노동 시간은 주당 35-40시간에 불과하지만 스웨덴 국회의원의 노동시간은 주당 80시간 이상이다. 교통비 무료는 고사하고 자동차도 지급되지 않아 대부분 대중교통을 이용한다. 국회의원이라는 직업 자체가 4년 임시직이다. 우리의 비정규직이라는 말이다. 국회의원들의 이직률은 무려 30퍼센트가 넘는데 이직의 가장 큰 이유는 일이 너무 힘들어서다. 인구는 900만 명 정도인데 국회의원의 수는 우리보다 훨씬 많은 349명이다. 스웨덴의 국회의원 투표율은 평균 90퍼센트. 90퍼센트의 지지를 받은 349명이 900만 명을 위해 4년 동안 특별하게 받는 것도 없이 죽어라 일하는 사회. 그곳이 스웨덴이다.

우리는 너무나 당연하게도 보다 높은 자리에 올라가면 더 많은 것을 누리고 더 많은 것을 배려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보다 훨씬 행복하게 잘 사는 나라들을 보거나 박근혜 정권을 비롯한 우리 현대사를 살펴보면 과연 정말 그래야 하는 것일까? 라는 의문을 품게 된다. 교장에게는 그 으리으리한 교장실이 꼭 있어야 하는 것일까? 교장이 교무실 한쪽에 있거나 교장실이 있더라도 지금보다 간소하면 안 되는 것일까? 경조사비까지 학교 예산에 포함이 되어야 하는 것일까? 업무추진비라는 명목으로 월급에 웃돈을 얹어 주어야만 하는 것일까? 국회의원은 그렇게 많은 보좌관이 필요한 것일까? 정말 가난한 사람들도 면제가 아닌 할인을 받는 마당에 월급 1000만 원이 넘는 국회의원은 항공기, 고속철까지 교통비를 모두 받아야 하는 것일까?

▲ 보스와 리더. (이미지 출처 = flickr.com)

리더와 보스의 차이를 극명하게 보여 주는 제법 유명한 그림이 있다. 리더는 다른 사람들의 맨 앞에서 수레를 끌며 이끄는 반면에 보스는 그 수레에 올라타서 이래라 저래라 소리를 지르는 그림이다. 리더는 다른 사람의 앞에서 방향을 잡고 가장 힘들게 짐을 이끌며 책임을 지는 사람이건만 애석하게도 지금까지 난 그런 교장을 거의 만나 보지 못했다. 관리자랍시고 온갖 것들은 다 누리면서 골치 아픈 사건이 터지거나 막상 책임을 져야 할 사안이 생기면 자신을 보호하고 도망가는 데 급급했으며 심지어 다른 교사들에게 덮어씌우기나 하는 그런 교장들을 많이 겪어 왔다. 교장, 교감을 칭하는 말부터 책임자가 아니라 관리자다. 도대체 무엇을 관리하는지, 이것이 관리의 방식인지 도무지 알 길이 없다.

이는 우리 사회의 권력자들도 마찬가지가 아닌가? 국민들을 개, 돼지라고 칭하지 않나, 국민이 잠시 허용해 준 권력을 사리사욕을 채우는 데 남용하고도 반성은커녕 대다수의 국민들을 불순분자, 선동당한 사람들로 매도하고는 자신만이 애국자요 진리를 아는 사람인 것마냥 오만하지 않은가? 어느 나라 대통령은 살도 빠지고 머리도 백발이 되어 퇴임을 하던데 우리나라 대통령은 파면을 당하면서도 환하게 회춘한 모습이지 않던가? 사실 자신이 가진 것을 잃기 싫어 말을 조심할 뿐이지 이미 많은 권력자들이 일반 국민들을 개, 돼지로 생각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 아니던가?

이처럼 이른바 승진자들, 보다 높은 자리에서 많은 권력을 쥐게 되는 자들에게 너무나 당연하게 온갖 특권까지 쥐어 주는 사회에서는 개인이 정말 투철한 청렴성과 삶의 철학을 지니고 있다고 하더라도 변질될 우려를 안고 있게 된다. 어느새, 자신도 모르게 나는 특별한 존재라는 오만한 사고를 품게 하고 국민에게 봉사해야 할 봉사자를 지배자로 만들며 리더를 보스로 만들어 버리고 있는 것이다. 스웨덴처럼 조금만 깊게 생각해 보면 거의 대부분의 특권이란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는 것인데도 말이다. 외국에서 배울 점은 이런 것들이 아닐까?

우리 학교 선생님과 전 교감이 각각 교감과 교장, 이른바 관리자가 되는 연수 대상자로 선정되었다며 센스있게 축하의 메시지를 전해 달라는 알림이 왔다. 수많은 국민들에게 절망감을 안겨 주고도 뻔뻔하게 국회의원에 도전한 한 친박 인사는 당선되었다며 마치 세상을 다 얻은 듯한 표정으로 꽃목걸이를 걸고 있었다. 축하보다는 위로와 격려와 당부를 전할 수는 없는 것일까? 당선의 기쁨보다 앞으로 국민을 위해 열심히 노력해야겠다는 결연하고 겸손한 표정을 볼 수는 없는 것일까?

권력자들보다 평범한 사람들이 더 살기 좋은 사회. 교장의 만족도는 찾아볼 수 없어도 교사의 만족도는 상위권에 있는 학교. 국회의원들이 힘들어서 못해 먹겠다는 탄식이 나오는 사회. 그런 권력자들에게 일반 국민들이 고맙다고, 힘내라고 소주 한 잔 건네는 사회. 이런 사회가 되지 않는 이상, 이런 사회로 나아가려는 의지가 없는 이상 우리에게 희망이란 없다. 어느 영화 대사처럼 국민이 정부를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정부가 국민을 두려워하는 사회가 아니라면 언제든 제2의 개, 돼지, 제2의 박근혜가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쩌면 이미 그들은 그들만의 또 다른 시작을 준비하고 있는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채성욱 교사(루도비코) 

2003년부터 인천과 경기도 초등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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