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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은 기억이다[장영식의 포토에세이]

   
▲ 칠곡 현대공원 열사묘역에서 열린 "4.9통일열사 42주기 추모제"를 마치고, 유족들과 참석자들이 함께했습니다. ⓒ장영식

한국 현대사의 가장 슬픈 역사는 분단의 역사입니다. 분단의 역사를 상징하는 숱한 사건 중의 하나가 42년 전의 인혁당 사건입니다. 우리는 그 이후 마흔두 번째 봄을 맞았지만, 대선 후보 그 누구도 인혁당 문제를 언급하는 후보가 없습니다.

분단의 역사가 반민특위를 무산시켰고, 제주 4.3항쟁과 한국전쟁을 낳았습니다. 분단의 역사가 숱한 양민학살을 낳았습니다. 분단의 역사가 이승만 체제와 박정희 체제, 전두환, 노태우 체제를 낳았습니다. 분단의 역사가 이명박, 박근혜 체제를 낳았습니다. 분단의 반공 이데올로기는 ‘빨갱이’를 낳았고, ‘종북좌빨’을 낳았습니다.

   
▲ 도예종 열사의 부인이 고인을 추모하며 오열하고 있는 모습이 어찌나 그리도 아프고 안타깝던지요. ⓒ장영식

아직도 분단의 역사가 한국 현대사 곳곳에 뿌리박고 있습니다. 분단의 역사가 사드를 낳았고, 생화학무기 도입을 낳았습니다. 분단의 역사가 북핵을 낳았고, 한반도 전쟁론을 낳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4.9통일열사 42주기를 맞아 대선 후보도 언론도 이 문제를 다루지 않고 있습니다. 그것은 대선 후보 그 누구도 지금 현재 한반도의 문제를 정확하게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과 다름 아닙니다.

분단의 적폐청산 없이는 한반도의 평화는 없습니다. 분단의 적폐청산 없이는 민주화는 없습니다. 분단의 적폐청산 없이는 한반도의 미래는 없습니다. 분단의 적폐청산 없이는 미국과 중국의 이익 사이에서 흔들리는 한반도의 상황을 바꿀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 송기인 신부가 추모사를 낭독하고 있습니다. 송기인 신부는 참여정부 때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 위원장을 지냈고, 인혁당 사건의 재심을 통해 무죄 선고를 받는 데 노력하였습니다. ⓒ장영식

*다음은 4월 8일(토) 오전 11시 칠곡 현대공원 열사묘역에서 열린 “4.9통일열사 42주기 추모제”에서 송기인 신부가 영령들에게 바친 추모사 전문입니다.

[추모사] 유신은 가고, 님들은 왔습니다

말 그대로 암흑천지였습니다. 탄압하지 않고서는 정권을 유지할 수 없었으며, 그 과정에서 님들의 유신체제 반대 활동은 박정희의 표적이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유신의 광기가 1970년대 미치지 않은 곳이 어디에 있었으랴마는 사건은 그렇게 조작되어졌습니다.

그렇게 조작된 것도 억울한데, 유신정권은 대법원 선고 바로 다음 날 사형을 집행, 세계 사법사상 유례가 없는 사법대학살이 이뤄졌습니다. 그것도 모자라 대법원 판결이 선고도 되기 전에 이미 군법회의 검찰부에 사형선고 통지가 접수되었고, 사형을 집행한 구치소에는 사형집행 후에야 사형선고 통지가 왔습니다.

어디 그뿐입니까? 오늘 여기에 참석하신 가족들은 사형이 집행되기까지 단 한 번도 면회하지 못했습니다. 인두겁을 쓰고는 도저히 저지를 수 없는 만행이었지요. 천인공노할 박정희 정권의 무법살인에 치를 떨지 않을 수 없었지요. 이렇듯 당시의 그 아픔을 어떻게 일일이 다 열거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역사는 진실을 외면하지 않았고, 정의가 외롭지 않았습니다. 비록 온전하지는 않지만, 2007년 1월 님들은 무죄판결을 받으셨고, 지난 달 그 유신의 피를 물려받은 박근혜는 감옥 갔습니다.

이 사실이 님들과 가족들의 피 맺힌 고통과 한을 풀어 드릴 수는 없겠으나, 분명 위로는 될 것입니다. 그 다음부터는 남은 자들의 몫일 테지요. 진실규명, 책임자 처벌, 명예회복 및 배상 등 모든 역사 정의 바로 세우기 사업은 온전히 살아 남은 저희들의 몫입니다.

후대들을 위해서라도 남은 우리는 반드시 그 책무를 다해 갑시다. 기록과의 싸움이 역사라면, 기록은 정의에 기반 한 진실을 담는 그릇이어야 하기에, 그 그릇을 정직하게 빚어 내도록 합시다.

그래야만 역사가 바로 서고, 정의가 바로 서야만 건강한 대한민국이 만들어질 수 있으니까요. 그 길에 님들의 사상과 정신을 등불로 삼고, 가슴 깊은 심장에 님들을 고이 묻으며 님들이 추구하셨던 억압과 착취가 없고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갈 수 있는 그런 대한민국, 민주와 평화가 꽃피는 그런 대한민국 만들기에 작은 걸음이지만, 오늘 이 42주기 추모제가 그 시작이 될 수 있도록 해 나갑시다.

님들이시여! 2017년 4월 유신의 겨울이 끝나고, 민족, 자주, 통일의 봄이 오고 있음이 들리시나이까? 작은 국화 꽃 한 송이 놓습니다.

송기인(신부, 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 위원장)
 

 
 

장영식(라파엘로)

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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