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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과 영성
징표와 명령 사이[구티에레스 신부] 4월 16일(주님 부활 대주일) 요한 20,1-9
구스타보 구티에레스  |  editor@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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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4.13  09:5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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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인간의 고통 앞에서, 특히 가난한 이들과 가난한 나라들의 고통이 우리가 외치는 기쁨의 소리를 목구멍에서 죄이는 것 같은 상황 앞에서 어떻게 부활의 기쁨을 기념할 수 있을 것인가?

여인들, 처음에 도착한 사람들

초기에, 그리스도인들은 주님의 부활을 기다리며 모여서 밤새 잠들지 않고 깨어 있곤 했다. 그들은 예수님의 죽음을 기억했고 새벽녘에는 죽음을 정복한 그분의 승리를 기념했다. 부활성야가 그들에게 전부였다. 후에 부활성야 예식이 갈라지고 다른 요소들이 덧붙여지면서 점차 현재 우리가 지내는 성주간이 되었다. 과월-죽음으로부터 생명으로의 과월-은 너무나 중요한 개념이므로 부활에만 해당되는 의미가 아니라 성탄, 주님의 공현과 성령강림절에도 중요한 개념이다.

파스카 전야예식 때 우리는 마태오, 마르코, 루카 복음의 이야기들을 읽는다. 이제 전례는 요한의 이야기를 내놓는다. 여인들이 맨 처음 무덤에 당도했으나, 요한은 막달레나 여자 마리아만 거명한다.(요한 20,1) 루카 사도가 지적한 것처럼,(마르코도 지적한다. 16,9-11) 제자들은 여인들의 말을 믿지 않는다. 주님은 처음에, 당시 열등한 대우를 받았던 (지금도 그렇지만) 사람들, 즉 여인들에게 나타난다. 그래서 제자들도 여인들의 말을 믿지 않았는지 모른다. 생명의 선포는 죽음, 소외 그리고 학대받던 바로 그 사람들로부터 시작된다.

베드로와 다른 제자는 막달레나 여자 마리아가 말해 주었던 내용을 확인하기 위하여 뛰어간다. 젊은 제자가 처음에 당도했을 때, (의심할 바 없이 요한 자신이다) 그는 베드로 보고 먼저 무덤 속으로 들어가도록 한다.(요한 20,4-6) 그리고 나서 요한이 들어간다: “그는 보았고 믿었다”(요한 20,8) 제자들이 발견한 것은 빈 무덤뿐이었다. 그 빈 공간에서 그들은 새로운 현존, 죽음을 정복하고 우리에게 생명을 주는 주님의 현존을 인식한다.

   
▲ 빈 무덤. (이미지 출처 = flickr.com)

위에서 오는 것들

부활에 관한 수많은 자료들과 논문들은 공허하게 들릴지 모른다. 그것은 저자들이 불의한 죽음을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불의한 죽음이 자주 목격되는 라틴아메리카에서 부활은 에너지로 충만하고 사람들이 새로운 심연에 도달하도록 해 준다. 이런 까닭에 우리는 바오로의 서간 구절을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아났다”는 사실을 상기시켜 주는 직접적인 표현 뒤에 따라오는 것은 명령법의 형태를 띄고 있다: “위의 것들을 추구하라.”(콜로 3,1) 부활은 우리 신앙의 핵심이다. 그러므로 부활은 우리 행동의 위대한 모형이기도 하다. 오늘의 성서 구절처럼(사도 10,37-43) 베드로의 첫 번째 설교가(사도 2장) 예수님의 부활에 초점을 두었을 때 청중들은 그에게 묻는다: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사도 2,37) 우리도 자신에게 항상 이와 똑같은 질문을 물어야 한다.

성서에서 “위에 있는 것들”이란 표현은 하느님의 것들과 같은 의미다. 우리는 마음을 그것들에 두어야 한다.(콜로 3,2) 삶은 그 전체가 하느님을 드러내고 있다. 우리가 말하는 물질과 영적인 것, 일시적인 것과 영원한 것은 모두 생명이라는 무상의 선물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다. 부활을 믿는 것은 “살아 있는 이들과 죽은 이들의 심판관”(사도 10,42)인 그분을 증언하는 것이다. 우리는 오로지 우리가 믿는 그리스도처럼 생명을 줄 때에, 파스카의 기쁨을 경험할 것이다. 어려움과 문제들 가운데에서 많은 사람은 가장 도움이 필요한 이들, 자신의 권리를 옹호하고 고통을 경감시키기 위하여 스스로를 조직하는 사람과의 연대를 표현하고자 한다. 그들 중에 많은 사람들은 신앙으로부터 자극과 격려를 받으며, 부활절의 기쁨은 그들의 증언에 활력과 의미를 가져다준다.

 
 
구스타보 구티에레스 신부
1928년 페루 리마 출생. 의대를 졸업한 뒤에 사제로 살기로 결단했다. 사제가 된 뒤에는 리마 가톨릭대학에서 신학과 사회과학을 가르치면서 리마 빈민지역에서 가난한 이들을 위한 사목을 했다. 대표적인 해방신학자로 빈민의 관점에서 복음을 증거해 왔다. 주요 저술로는 "해방신학"(1971) 외 다수가 있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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