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한선의 '세븐' - 15]

상편- 감정과 뇌
중편- 이성과 뇌
하편- 자유 의지와 뇌

1848년 9월 13일 뉴잉글랜드에서 철도 부설이 한창이었다. 현장을 감독하던 피니어스 게이지는 화약을 다루는 전문가였다. 그는 바위에 낸 구멍에 화약을 밀어 넣고 쇠막대기로 잘 다지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그는 아주 솜씨 좋은 기술자였고, 또한 사람을 잘 다루어 인부들 사이에서도 인기가 높았다. 그러나 그날의 사고 이후 모든 것이 바뀌었다. 화약이 폭발하면서 쇠막대기가 튀어 게이지의 얼굴을 관통해 버린 것이다.

▲ 피니어스 게이지의 초상화. 그는 사고로 이마 윗부분의 뇌 상당 부분과 왼쪽 눈을 잃은 뒤 성격이 괴팍하게 변했다. 사려 깊고 결단력이 넘치던 그는, 우유부단하고 산만한 성격으로 바뀌었고 전에 없이 저속하고 무분별한 행동을 했다. (이미지 출처 = commons.wikimedia.org)
쇠막대기는 게이지의 왼쪽 뺨을 뚫고 눈 뒤쪽을 지나서 전두엽을 관통해 날아갔다. 쇠막대기는 23미터 떨어진 곳까지 날아가 땅에 박혔다. 아마 이런 정도의 사고를 당했다면 대부분 죽었을 것이다. 그러나 놀랍게도 게이지는 ‘멀쩡’했다. 그는 근처에 있던 수레를 타고 마을로 갔는데, 의식도 잃지 않았을 뿐 아니라 다른 사람과 대화를 하기도 했다. 곧 의사가 도착해서 치료를 했는데, 게이지는 의사와 농담을 주고받기도 했다. 의사는 뇌의 일부를 끄집어냈고, 뇌의 일부는 코 뒤로 넘어가 들이마시기도 했다. 몇 번의 고비가 있었지만 게이지는 목숨을 건질 수 있었는데, 이 사건으로 그는 신경학의 역사에 길이 남게 되었다.

전두엽(frontal lobe)은 흔히 이성을 담당한다고 알려진 뇌의 부분이다. 사실 전두엽은 운동 기능을 담당하기도 하고, 발화와 같은 언어 기능도 맡고 있다. 그러나 전두엽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부위는 인간 고유의 정신 기능을 담당하는 앞부분의 전전두피질(prefrontal cortex)이다. 이는 크게 안와전전두피질(OFC)과 배외측전전두피질(DLPFC), 복외측전전두피질(VLPFC), 내측전두피질(mPFC)로 나뉘는데, 각각 눈 윗부분의 전두엽과 위, 아래, 안쪽 부분의 전두엽을 말한다.

이러한 전전두엽은 합리적 판단과 사회적 관계를 조정하는 기능을 담당한다. 또한 고차원적 사고와 계획 수립, 의사 결정 등을 담당하며, 한편으로는 공감과 윤리, 도덕적 능력도 맡고 있다. 전전두엽이 고장 나면 사회적인 상황에서 부적절한 말이나 행동을 하며, 두서없는 계획을 세우거나 엉뚱한 판단을 내리기도 한다. 특히 복내측전전두피질이 손상되면 공감 능력이 사라지는데, 그래서 사이코패스는 이 부분의 기능이 부족하다고 알려져 있다.

따라서 전두엽은 사실상 칠죄종 모두와 관련되는 뇌 구조물이라고 할 수 있다. 다양한 감정과 욕망, 충동으로 가득한 마음을 다스리고 합리적인 판단에 의거하여 윤리와 도덕의 기준에 맞추어 행동하게 하는 것이다. 다른 동물도 전두엽이 있지만, 인간의 전두엽은 유독 크게 발달되어 있다. 그래서 가장 고위 기능을 담당하는 뇌로 간주되기도 한다. 교만과 인색, 질투, 분노, 색욕과 탐욕, 나태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경험하는 감정이지만, 의식적 노력으로 우리는 이러한 감정을 적절하게 조절할 수 있다. 그 역할을 바로 전전두피질이 하는 것이다.

▲ 전두엽.(Frontal lobe) 붉게 칠한 부분이 전두엽이다. 인간의 전두엽은 다른 동물에 비해서 예외적으로 크다. 특히 전두엽의 앞부분, 전전두피질은 계획과 판단, 도덕, 양심 등을 담당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미지 출처 = commons.wikimedia.org)

끔찍한 사고를 겪은 뒤에도, 겉으로 볼 때 게이지는 건강했다. 그러나 전과 달리 성격이 이상하게 변했다. 예전에 따뜻하면서도 단호한 성격을 가지고 있었던 현장 감독 게이지가, 사고를 당한 뒤 참을성 없고 변덕스러운 사람이 된 것이었다. 어느 하나의 일에 집중하지 못했고, 계획은 계속 바뀌면서 쉽게 짜증을 냈다. 그리고 전과 달리 ‘상스러운 욕’을 마구 내뱉었다.

우리는 흔히 이성과 감정이 싸운다는 이야기를 한다. 작게는 야식으로 치맥을 먹을 것인가 말 것인가에 대한 고민부터, 크게는 자신에게 해를 입힌 타인에 대한 증오와 분노의 감정을 다스리는 힘겨운 고뇌의 과정들이 바로 이러한 내적 갈등의 순간이라고 할 수 있다. 충동과 욕망을 억누르고, 보다 높은 가치를 추구하며 인내하는 능력이 바로 전전두엽이 가지고 있는 독특한 기능이다.

▲ 밴 혼 박사 외. (2012) 피니어스 게이지의 뇌 손상 부위에 대해서 재구성한 이미지. 게이지는 사고 즉시 좌측 전전두엽의 상당 부분을 잃었고, 이후 발생한 감염 및 당시의 미숙한 의료 기술 때문에 추가 손상도 상당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미지 출처 = journal.pone.0037454)

게이지는 더 이상 염치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처럼 되었는데, 주치의는 이를 두고 ‘동물적 욕동’에 지배당하는 것 같다고 하기도 했다. 사랑하는 가족과 친구들에게 차갑고 냉담해졌다. 그리고 어떤 의미에서는 ‘고상한’ 관심 자체가 사라졌다고 할 수 있었다. 실제로 전전두엽 손상을 입은 사람은 음악이나 미술, 정치, 문학 등 인간만이 향유하는 높은 수준의 문화에 대해서 완전히 ‘무관심’해진다.

그렇다면 칠죄종을 많이 저지르는 연약한 사람들은, 전전두엽의 기능이 부족하다고 할 수 있을까? 안타깝게도 그렇게 쉽게 설명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마치 전전두엽의 기능이 강하면 보다 선한 사람이고, 이 부분의 기능이 약하면 보다 악한 사람이라는 식으로 단순화하는 것은 위험하다. 인간의 영혼은 일대일 대응으로 판단할 수 없다.

게다가 쇠막대기가 게이지의 머리가 아닌 몸을 다치게 했다고 해도, 상황이 크게 달라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게이지는 사고를 당하여 왼쪽 눈의 시력을 잃었는데, 별다른 보상은 받지 못했을 뿐 아니라 오랫동안 일하던 직장도 잃었다. 얼굴은 흉측하게 변했다. 이런 상황에서 욕설을 달고 살지 않는다면, 즉 성격이 변하지 않는다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인지도 모른다.

게이지의 이후의 삶에 대해서는 알려진 것이 별로 없다. 알려진 것은 4년 뒤에 칠레로 이민을 갔고, 그곳에서 오랫동안 여객 마차를 몰았다는 것이다. 어떤 연구자는 이에 대해서 뇌의 가소성, 즉 회복 능력을 보여 주는 사례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말을 돌보고, 요금을 계산하고, 마차를 모는 것은 절대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주치의의 기록대로 게이지는 사고 이후 ‘성격이 괴팍하게’ 변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알 수 없는 엄청난 힘’을 통해서 삶의 상당 부분을 회복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물론 뇌가 다시 자라났을 리는 만무하다. 뇌 손상, 그리고 정신장애를 앓는 사람들은 마치 ‘영혼’이 손상된 것처럼 보이지만, ‘뇌=영혼’으로 간단하게 생각해서는 곤란한 이유다.

▲ 상습적인 고기능 정신병질자, 즉 사이코패스는 전전두엽의 기능이 저하되어 있다. 그렇다면 그의 죄는 단지 ‘뇌의 한 부분’에서 시작된 것일까? 인간의 죄악을 단지 전전두엽의 기능장애로 환원할 수 있을까? (이미지 출처 = thebluediamondgallery.com)
전두엽의 기능이 떨어져서 사이코패스가 된다면, 그의 범죄에 대해서 면책해 주어야 할까? 실제로 일부 범죄자가 이러한 주장을 하기도 했다. 자신의 ‘뇌’가 고장 나서 범죄를 저지른 것이지, ‘자신’이 죄를 지은 것이 아니라는 항변이다. 물론 사이코패스의 형사상 면책은 대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하지만 인간의 고유한 도덕과 양심을 뇌의 기능으로 환원하려고 하면, 반드시 이러한 모순에 빠지게 된다. 칠죄종을 저지르는 것은 ‘나’의 잘못일까? 혹은 ‘뇌’의 잘못일까?

하지만 확실한 것은 전전두엽의 상당 부분이 사라진 피니어스 게이지가 당시로는 엄청난 모험, 즉 칠레 이민을 감행했다는 것이다. 계획과 실행 기능을 담당하는 전전두엽 손상을 당한 상태에서 말이다. 그리고 비교적 성공적인 마차꾼으로 활동할 수 있었다. 자세한 기록은 없지만 7년 이상 어려운 마차 운행을 할 수 있었다면, 아주 부적절하거나 무능했다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 게이지는 도대체 어떻게 이런 일을 해낼 수 있었던 것일까?

지난 편에 충동과 욕망의 원천으로서의 변연계에 대해서 이야기하였다. 그리고 이번에는 이를 통제하고 감독하는 전전두엽에 대해서 이야기하였다. 그러나 인간의 죄악을 단지 망나니 변연계와 감독관 전전두엽의 갈등으로 환원할 수는 없다. 죄는 ‘뇌’가 저지르는 것이 아니라 ‘내’가 저지르는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나’는 무엇일까? 다음 편에는 인간의 자유의지와 뇌에 대해서 다루도록 하겠다.

-계속-

 
 
박한선
경희대 의대 및 대학원을 졸업하고 이대부속병원 전공의 및 서울대병원 정신과 임상강사로 일했다. 성안드레아병원 정신과장 및 이화여대, 경희대 의대 외래교수를 지내면서, 서울대 인류학과에서 정신장애의 신경인류학적 원인에 대해 연구 중이다. 현재 호주국립대(ANU)에서 문화, 건강 및 의학 과정을 연수하고 있다. '행복의 역습'(2014)을 번역했고, "재난과 정신건강"(공저, 2015), "토닥토닥 정신과 사용설명서"(2016), "어머니 혹은 여자의 몸은 어떻게 진화했을까"(2017) 등을 저술했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저작권자 ©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