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티에레스 신부] 4월 9일(주님 수난 성지 주일) 마태 26,1-27.66

우리는 성주간으로 들어가고 있다. 파스카 신비, 죽음으로부터 생명으로의 과월은 우리 신앙의 핵심이다.

신앙의 핵심

예수님의 수난, 죽음 그리고 부활은 복음서들의 가장 오래된 부분을 구성한다. 이 부분은 제자들이 제일 처음에 기록했던 부분이다. 그들에게 이 사건은 주님에 대한 증언의 중심이다. 그런 다음에 차츰 유년 시절의 이야기처럼, 예수님의 행적과 말씀이 더 첨가되었다. 그러므로 스승의 죽음의 희생과 그분을 일으킴으로써 죽음에 대한 승리를 가져온 아버지의 행위에 비추어 볼 때에 다른 모든 것들이 의미를 갖게 되는 것이다.

마태오의 기록은 자세하게 이 사건을 다룬다. 제자들의 배반, 두려움 그리고 부정이 다 드러나 있다. 스승은 그들을 당황케 한다. 또한 예수님을 죽이려고 애쓰는 로마인들이나 유다의 지도자들도 마찬가지로 어리둥절할 뿐이다. 복음서에 표현된 대립은 그들의 안전함을 앗아 간다. 위선적으로 그들은 이 문제에 대한 책임을 벗어 버린다. 그러나 일관성이 없는 그들의 태도가 더 분명해진다. 그들은 예수님이 왕이 되고 싶어 한다고 비난한다. 그리스도는 왕권을 받아들이나 그분의 나라는 로마의 카이사르나 헤로데의 것과 다르다. 그분의 나라는 지배가 아니라 섬김의 나라다. 아버지 하느님의 사랑을 증언하기 위하여 “당신 자신을 비우시어 종의 모습을 취하시고”,(필리 2,6) “십자가의 죽음”에 순명했던(필리 2,8) 하느님나라다. 우리에겐 아마도 고통의 주제를 쉽사리 연상시키는 십자가가 바로 전적인 순명의 표현이다.

▲ 주님의 나라는 지배가 아니라 섬김의 나라, "십자가의 죽음"에 순명했던 하느님나라다. (이미지 출처 = Pixabay)

들을 귀

이러한 겸손(kenosis는 바오로가 썼던 그리스 말로서 필리 2,7에 나온다)은 다른 이들을 섬기는 길에 있어 필수적인 것이다. 그것은 또한 스승이 따랐던 길이며 제자들과 교회 전체가 따라야 할 길이다. 역사나 사회적 위치가 준 특권들을 교회가 내어놓지 않는다면 그 교회는 우리가 사랑이신 하느님에게 어떻게 갈 수 있는지 말해 줄 위치에 있지 못하다.

이것이 바로 이사야서가 “제자의 혀”(“나에게 말솜씨를 익혀 주시며”, 이사 50,4), 다시 말하자면 주님을 따르기 시작한 사람의 혀라고 말한 것의 의미다. 가난한 이들의 고통에 가까이 다가갈 때에 우리들의 귀가 열리어 복음의 모든 요구에 귀를 기울이게 되는 것이다. 그렇지 않는다면 우리는 주님의 도전에 저항하고 거역하는 것이다.(이사 50,5)

오늘날 가난한 이들과 연대하는 것은 그리스도께 충실하려는 교회에게 “모욕과 수모”(이사 50,6)를 당하게 만든다. 그러나 그러한 모욕과 수모를 경험함으로써 교회는 이미 의료적으로 치료되는 질병의 희생자가 되고 불확실한 자리에서 살아가며 정당한 임금을 요구할 때 억압을 받는 가난한 이들이 겪는 고통을 나누게 될 것이다. 가난한 이들의 그 같은 현실이 역사적으로 형성된 것은 모호함이 있을 수 있지만(어떤 인간 조건 하에서도 피할 수 없는) 그렇다고 해서 가난한 이들이 덜 고통스럽다거나 불의가 아니라고는 말할 수 없다.

이사야서의 고통받는 종처럼, 우리도 하느님이 우리를 돕고 있으며 겁쟁이가 되도록 내버려 두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해야 한다. 우리는 하느님이 모든 사람을, 특히 가장 약하고 소외된 이들을 사랑한다고 증언하는 우리의 결단에 어떤 것이 닥쳐온다 해도 주님의 도움이 있을 것이라는(이사 50,7) 사실을 알고 있다. 주님은 우리 각자와 모두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죽었으며 부활을 통하여 그분의 생명을 우리에게 준다. 그것은 죽음, 죄악, 불의를 이기는 생명이며 우리 형제자매들에 대한 무관심을 벗어나게 해 주는 생명이다.

 
 
구스타보 구티에레스 신부
1928년 페루 리마 출생. 의대를 졸업한 뒤에 사제로 살기로 결단했다. 사제가 된 뒤에는 리마 가톨릭대학에서 신학과 사회과학을 가르치면서 리마 빈민지역에서 가난한 이들을 위한 사목을 했다. 대표적인 해방신학자로 빈민의 관점에서 복음을 증거해 왔다. 주요 저술로는 "해방신학"(1971) 외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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