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인숙의 여행(女幸), 여행(旅行) -1]

섬진강은 꽤 오랫동안 가보지 못했지만 늘 다시 가고 싶은 곳이었다. 섬진강에 특별한 추억도, 연고도 없으면서 그렇게 오랜 시간 그리워할 수 있다는게 오히려 신기할 정도로 섬진강은 나를 향해 손짓해 주었다. 해마다 봄이 오는 길목이면 섬진강을 따라 걷다 매화꽃 피는 마을에 들러보리라 생각했고, 또 가을이 찾아 오면 섬진강변의 갈대를 막연히 그리워했다. '섬진강' 이란 이름이 주는 그리움일런가.

놓칠세라 따라오는 강줄기, 섬진강에서

부산에서부터 길을 잡아 경상도와 전라도를 잇는 철길을 따라 달려온 길. 아스팔트로 잘 포장된 길은 때로는 철길을 만나고, 때로는 헤어지면서 구불구불 잘도 이어지고 있었다. 그 길에서 잠깐 잠이 들었나 보다. 눈을 뜨니 왼편에서 나를 놓칠세라 따라오는 강줄기. 내가 그리 그리워하던 섬진강이었다.

강은 많이 야위어 있었다. 가뭄 탓이리라. 아니, 어찌 가뭄 탓만 있겠는가.
국토의 남단, 지리산 남쪽 수백리 길 앞을 막아앉아 장구한 세월을 흘러온 강물. 그 수려한 풍광은 여전하지만 인간사 탐욕을 묵묵히 안고 가기에는 속앓이가 너무 깊은 탓일런가. 더러는 강바닥을 훤히 드러내 보인다. 4대강 정비니, 경인운하니 하는 소리가 어찌 여기 섬진강 귀엣머리엔들 들리지 않았겠는가. 다행히 섬진강 시인의 노래가 가만히 가슴을 쓸어내리게 해준다.

....(전략)
흐르다 흐르다 목메이면
영산강으로 가는 물줄기를 불러
뼈 으스러지게 그리워 얼싸안고
지리산 뭉특한 허리를 감고 돌아가는
섬진강을 따라가며 보라
섬진강물이 어디 몇 놈이 달려들어
펴낸다고 마를 강물이더냐고,
지리산이 저문 강물에 얼굴을 씻고
일어서서 껄껄 웃으며
무등산을 보며 그렇지 않느냐고 물어보면
노을 띤 무등산이 그렇다고 훤한 이마 끄덕이는 .....(후략)
<김용택 '섬진강 1.'>



'지리십경' 가운데 하나로 꽂히는 섬진청류. 지리산에 올라 바라보는 섬진강 물줄기는 마치 은빛 실타래처럼 반짝인다. 하동과 구례를 잇는 19번 국도. 느릿한 강물을 따라 가뭇가뭇 도로 아래로 마을이 보인다. 시간에 쫒겨 차에서 내려 마을로 들어가지 못한 것을 아쉬움으로 남겨두고 강변을 달린다.

대하소설 <토지>의 무대 평사리

하동에서 11.5km 정도. 오른쪽으로 악양면 진입 도로가 보인다. 악양면 평사리는 故 박경리 선생의 대하소설 <토지>의 주요 무대다. 1969년 연재소설로 쓰기 시작했던 소설 <토지>는 1994년 탈고로 25년간 대장정의 막을 내렸는데, 구한말 최참판 댁을 둘러싼 파란만장한 이야기들을 담아 이곳 평사리에서 드라마로 재탄생했다.

2003년 드라마 세트장으로 만든 이곳에 하동군이 50여 억원을 들여 3천평 규모의 관광자원으로 개발해 놓았다. 조선 후기의 건축물과 사회상을 철저한 고증을 통해 복원시켰다는데, 동학혁명에서부터 근대사까지 한민족 대서사시 <토지>의 배경인 이 곳 평사리에 한옥 14동과 초가집 등을 그대로 재현해 놓았다.

마을을 병풍처럼 둘러싼 산 기슭에 소담스레 자리한 최참판댁 마을에 4월의 봄볕이 한가로이 내려 앉는다. 이곳을 찾은 관광객들은 삼삼오오 짝을 지어 마을을 둘러본다. 아주머니 소리들이 왁자지껄 들린다.
"여기가 용이네 집이네", "월성네가 불쌍타-" 등등.

아주머니들은 드라마의 대사를 기억나는대로 나누며 용이네 집을 돌아 사라진다. 드라마의 힘을 다시한번 느낀다. 드라마가 방영된 지가 언젠데 아직까지 대사를 기억하는가. 예전에 이 마을 아낙들도 삼삼오오 우물가에 모여 사는 얘기들을 나누었으리라. 마을 안 작은 텃밭에 보리가 푸르게 자라고 있다. 예나 지금이나 땅은 생명을 품고 나눠준다고 생각하니 푸른 보리를 안은 좁디좁은 땅뙈기에 고개가 숙여진다.

마을 초입에 말과 망아지가 서 있다. 아마 마차로 마을을 한바퀴 돌아보게 해주는 상품인듯 했다. 망아지의 눈망울이 너무 선연해 가까이 가 보았다. 망아지는 사람을 겁내지 않았다. 털갈이를 하는지 털이 부스스하다. 말을 타고 사진을 찍으면 액자에 넣어 5천원을 받는다는 안내문이 있었다. 말과 사진 찍으면 300원이란 글도 보인다. 고개를 갸웃하는 내게 동료가 귀뜸을 해준다. 자기네가 찍어 사진을 뽑아주면 5천원, 말을 배경으로 관광객이 자신들의 카메라로 촬영하면 300원.

말하자면 300원은 배경 값이었다. 피식 웃음이 나왔다. '역시 최참판 댁은 관광지구나'란 생각에 잠시 허탈했다. 왜 그러지 않았겠는가. 최참판 댁을 구석구석 다녔고, 별당에선 댓돌 위에 신을 벗어 놓고 마루에 올라 서슬퍼런 서희의 모습까지 기억해 낸 터이니......

"여기는 최참판 댁이야! 홍가 것도, 조가 것도 아닌!
찢어 죽이고 말려 죽이고 말테야.
내가 받은 수모를 하난들 잊을쏘냐!"

절규에 가까운 서희의 외침이 어찌 역사 속에만 있겠는가. 과거의 시간 속에 박제돼 있겠는가. 그것은 핍박받는 자들의 비명이요, 짓밟히는 자들의 아픔이 아니겠는가. 오늘날 우리 사회 속에서 얼마나 많은 서희가, 얼마나 많은 내 이웃들이 눈물 흘리고 아파하며, 고통 당하고 있는가. 권력으로부터, 기득권으로부터 가난하다는 이유로, 특히 사회적 약자라는 이유로. 나의 무심함이 순간 자책감으로 밀려온다. 서희의 공간으로 재현됐던 별당 마당에는 붉은 작약 꽃이 흐드러지게 피어나 있다.

문학은 삶을 성찰케 하는 도구

얼마 있지 않으면 박경리 선생의 1주기가 돌아온다는데 생각이 미쳤다. 아니게 아니라 최참판댁 외벽에도 선생의 1주기를 기억하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지난해 5월5일 하느님 품에 안긴 선생은 지금 세상을 본다면 무슨 생각을 할까? <버리고 갈 것만 남아 참 홀가분하다>는 선생의 유고집 제목처럼, 버리면서 산다면, 그럴 수 있다면 이 사회의 혼란도, 지나친 욕심도 햇살에 스러지는 이슬처럼 잦아들지 않겠는가.

문학은 과거의 사건을 재현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는다. 오늘의 삶 속에서 그것을 끊임없이 길어 올려, 살아가야 할 길을 보여준다. 문학의 힘은 삶을 성찰케 해 준다. 지금도 평사리 상평 마을의 은근한 돌담길과 옹기종기 모여있는 초가 지붕이 민초들이 엮어낸 삶의 언어를 토해내는 듯하다.

최참판 댁 대문을 나서 가슴 시원하게 펼쳐진 악양 벌판을 바라본다. 참판 댁에서 본 악양 평사리 들녁 너머로 섬진강이 구비쳐 흐른다. 지리산 넉넉한 품에 안겨, 섬진강의 다정한 속살거림으로 들판의 곡식들은 한껏 생명을 토해내고 있다. 봄날 푸른 들녁은 여름을 향해 내달리며 잊지 않고 가을을 준비하리라. 벌판 중앙에 버티고 서 있는 나무에 시선을 주며 최참판은 정말 세상에 부러울 것이 없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곳에 서서 내려다보면 세상을 다 안은듯 하지 않는가. 시원한 바람 한 줄기가 내 생각에 고개를 끄덕여 주는듯 하다.

악양에서 구례 방향으로 8km 정도 더 가면 화개장터가 나온다. 화해와 상생의 상징처럼 화개장터는 자리매김을 했는가. 평사리에선 따스하던 바람이 어느새 차갑게 변해 심술을 부린다. 동료가 촬영을 하는 틈에 이곳저곳 장터를 기웃거리다가 국화차를 하나 샀다. 초의선사가 화개에서 나는 차가 세상에서 제일 좋다고 했다는 말이 떠올랐다. '쌍계사' 이정표를 보며 문득 들렀다 가고 싶은 마음이 든 것도 그 때문일까.

그러나 일정에 따라 길을 또 떠나야 한다. 구례와 곡성을 거쳐 군산까지. 군산에는 문화재로 지정된 간이역 '임피역' 이 있다. '탁류'를 쓴 채만식 선생이 태어난 곳이다. 섬진강과 지리산 자락을 뒤로 하고 우리 일행은 군산 채만식 문학 기념관으로 향한다. 섬진강은 내게 또하나 시 한 수를 선사한다.

<새벽 섬진강에서>

가을 강가 풀섶에 물새 소리만 어둠을
밀어내고 피어오르는 새벽안개 속엔 도무지
얼굴이 떠오르지 않는다 삼심년을 따라다니는
그리움은 가슴을 짓누르고 강물 위엔 육중한
지리산 자락만 침묵으로 자리하여 살아 움직이는
것들은 움직이지 않지만 노란 들꽃만이 깃을 벌리고
강물만이 흘러, 그래 생각할 사람이 남아 있다는건
그래도 행복한거야 강가에 앉아 끄덕거려 보지만
피어오르는 새벽안개도 서서히 걷히지만 아직도
그리운 얼굴은 떠오르지 않아, 혼자 섬진강 물줄기만
물끄러미 바라본다 -양동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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