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영화 - 정민아]

▲ '아뉴스 데이' 티저 포스터. (포스터 제공 = 씨네 블루밍)
전쟁이 끝난 직후, 독일의 공격으로 잿더미가 된 1945년 폴란드를 배경으로, 수녀들과 그들을 돕는 프랑스 출신 여의사의 실화를 영화화한 프랑스 영화다. 감독은 '코코샤넬'(2009), '투 마더스'(2013) 등으로 한국에도 알려진 안느 퐁텐이다.

영적이고 경건한 수녀들의 기도와 합창은 보는 이에게 평화로움을 주지만, 그건 그저 보이는 것일 뿐이다. 이 수녀원은 엄청난 비극과 비밀을 간직하고 있다. 빛과 어둠이 극적인 대비를 이루는 물리적 공간은 실제로 빛과 어둠의 이야기를 숨기고 있었다. 순결 서약을 맹세한 수녀들의 믿음과, 전쟁으로 인해 어쩔 수 없이 육체에 가해진 수난이 충돌할 때, 사람은 피폐해지게 마련이다.

의대를 막 졸업한 젊은 마틸드는 프랑스 적십자 소속으로 폴란드로 들어가 다친 프랑스 병사들을 돕고 있었다. 어느 날 젊은 수녀가 그녀를 찾아와 도와 달라고 애원하고, 수녀를 따라 수녀원 문턱을 넘은 마틸드는 깜짝 놀랄 현실을 목격한다. 독일군이 철수한 뒤 소련군이 바르샤바 지역에 침투해 수녀들은 독일군과 소련군에게 연이어 강간당하고, 일곱 명의 수녀가 곧 출산을 앞두고 있었던 것이다.

철저한 유물론자인 마틸드는 출산을 앞둔 수녀들의 신앙과 죄책감의 충돌을 정서적으로 이해하지 못한다. 영화는 병원과 수녀원, 두 공간을 긴밀하게 오가며 마틸드와 수녀들의 문제 해결 의지와 깨달음, 그리고 서로에 대한 깊은 이해를 통해 밑바닥에서 희망을 건져 올리는 위대한 결정을 시간 순으로 보여 준다.

의사로서의 사명감 때문에 이들을 버릴 수 없어 상부의 허락을 받지 않은 채 몰래 수녀원을 넘나들던 마틸드의 개인사도 수녀원 사건의 전개와 함께 진행된다. 병원 규율을 어기며 수녀들과의 약속을 지키느라 늘 고달픈 그녀지만, 죄책감에 시달리며 긴급한 순간에도 하느님에게 기도를 올리는 수녀들이 영 마땅치가 않다. 그러나 수녀를 돕는다고 생각했던 그녀에게도 수녀로부터 도움을 받는 순간이 찾아오고, 힘들기만 한 의료 행위가 어느 날 기쁨으로 다가온다. 마틸드와 수녀의 관계는 공적인 의사와 환자 관계에서 사적 인간관계를 맺어 나가는 것으로 발전한다.

▲ '아뉴스 데이' 중 한 장면. (이미지 제공 = 씨네 블루밍)

영화는 전쟁의 참상을 보여 주지 않아도, 전쟁의 결과가 사람들에게 얼마나 참혹한 잔재를 남기는지 충분히 보여 준다. 격리되어 있어서 더욱 폐쇄적으로 일처리를 해야 했던 수녀원이기에, 겉으로는 영적으로 충만해 보여도 가까이 들여다보면 내적 갈등이 극에 달해 있다. 평온하고 고요한 가운데 분출되는 극적인 긴장감을 끌어내는 연출력이 일품이다. 똑같은 옷을 입고 똑같이 기도하며 비슷한 얼굴을 하고 있는 수녀들 같지만, 하나하나 들여다보면 각기 다른 생각과 행동을 하는 개성 있는 개인들이다.

근본주의 신앙을 가진 원장수녀의 선택은 충격적이지만 일면 이해가 간다. 폴란드어를 못하는 마틸드와 주로 대화하게 되는 마리아 수녀가 원장수녀의 뜻을 거스르게 되는 용기에 찬 결단에는 박수를 보내게 된다. 임신 사실에 충격을 먹고 의사의 손길을 거부하는 수녀, 아기를 돌보기 위해 모성애를 발휘하며 새로운 인생을 선택하는 수녀, 좌절하는 수녀, 이 가운데 기쁨을 깨닫는 수녀 등 다양한 인간 군상은 우리 현대인이 경험하는 끝없는 갈등과 선택과 다르지 않다. 수녀원이나 병원 안에는 의견 충돌이 있을지언정 악인은 없다. 결국 희망은 사람으로부터 나온다는 숭고한 메시지를 전한다.

▲ '아뉴스 데이' 중 한 장면. (이미지 제공 = 씨네 블루밍)

폴란드에서 활동했던 프랑스 의사 마들렌 폴리악이라는 여성이 쓴 노트가 발견되며 이 사건은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고 한다. 지금도 전쟁은 끝없이 일어나고 있고, 여성의 성은 남성의 소유물로 인식되어 전리품처럼 점령국 남성 군인에 의해 멋대로 유린된다. 위급한 시기일수록 인간으로서의 여성 존재성은 상실된다. 전쟁 성노예가 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가 엄연히 생존해 있고, 국가가 마땅히 국민의 일원인 이들을 유린한 상대국에 합당한 보상과 사과를 요구해야 함에도 그렇지 못한 현실 또한 우리에게 큰 비극이다.

마들렌 폴리악의 목숨을 건 위대한 인류애에 경의를 표한다. 그녀는 이 사건이 있은 이듬해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하지만 70년이 지난 뒤 후대는 그녀의 용감한 짧은 생에 대해 곱씹고 있다. 영화의 힘이 다시금 느껴진다.

 
정민아(영화평론가, 성결대학교 교수)

영화를 통해 인간과 사회를 깊이 이해하며
여러 지구인들과 소통하고 싶어하는 영화 애호가입니다.
Peace be with 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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