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대전가톨릭대 총장 김유정 신부

“총장으로서 무엇을 할지 계획이 없다”

총장으로서 어떤 일을 해 나갈 것이냐는 상투적 물음에 대전가톨릭대 총장인 김유정 신부는 다소 도발적으로 “계획이 없다”고 답했다.

그러나 인터뷰를 통해 그가 가진 생각을 나누면서, “계획 없음”은 “홀로 일하지 않겠다”는 다짐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김유정 신부는, 이야기 내내 공동체를 통한 양성과 성장, 사제가 된 뒤에도 가져야 할 공동체성 그리고 공동체를 통한 경험으로 이 세상이 잃어버린 공동체성을 회복할 책임에 대해 강조했다.

그런 맥락에서 김 신부는, “무엇을 해야 할지는 사제 양성의 최고 주관자인 성령이 신학생 공동체, 교수 공동체를 통해 나에게 말씀하실 것이라 믿는다. 그 목소리를 듣고 공동체 안에서 함께 고민하며 할 몫을 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 말은 김 신부가 이번 입학미사에서 취임사로 언급한 내용이다. 그는 미사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의 모범을 따르고,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교황 권고 “현대의 사제 양성” 첫 제목인 ‘그 시대를 사는 사제’로서 충실하며, 신학교 모든 구성원들의 일치 안에서 일하는 성령을 따르겠다고 했다.

교회 담을 넘어, “그 시대를 사는” 사제

▲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교황 권고 "현대의 사제 양성"은 제2차 바티칸공의회에서 본격적으로 다루지 못한 사제 직분에 대해 다뤘다. ⓒ정현진 기자
“하느님께서는 항상 구체적인 인간 상황과 교회 상황 가운데서 당신의 사제들을 부르십니다. 따라서 사제들은 어쩔 수 없이 그러한 상황들로부터 영향을 받기도 하지만 동시에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이 구체적인 인간 상황과 교회 상황으로 파견되는 것입니다.”("현대의 사제 양성" 5항)

사제이자 양성자로서 스스로 가진 ‘사제상’이 있을 터였다. 그가 걷고 있고, 앞으로 후배들과 함께 걸어갈 사제의 상은 무엇일까. 그는 답을 하기 위해 책장에 꽂힌 “현대의 사제 양성”을 펴들었다.

곳곳에 줄을 치고 주를 달아 가며 본 듯한 낡은 책 1장의 첫 제목은 “그 시대를 사는 사제”였다. 그는 이 말을 총장 임명 직후부터 계속 곱씹고 있다고 했다.

그는 “오늘의 세상과 교회에 파견될 사제들에게는 시대와 관계없이 지켜야 할 것이 있지만, 오늘 이 시대의 요청을 끊임없이 살피고, 특히 가난한 이들에 대한 태도가 어떠해야 하는지 생각해야 한다”면서, “자선으로 할 일을 다 했다고 여기지 말라는 교황의 당부처럼, 가난한 이들을 가난하게 만드는 구조에 문제를 제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제는 세상으로 파견될 사람이다. 지금 이 시대에 일어나는 사건, 세상을 복음적으로 식별하는 눈을 키워야 한다. 그래서 사회교리가 중요하다”는 그는, 선배 사제로부터 언젠가 “오늘 네가 읽은 신문기사 내용이 너의 기도 안에 들어와 있는가?”라고 받은 질문을 잊을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런 맥락에서 김 신부는, 지난해 말 6개 신학교 학생들이 국정농단에 대한 입장을 낸 것를 비롯해, 대전 신학교 학생들이 세월호 광장, 백남기 농민 농성장, 노란봉투법 캠페인 등에 참여한 것에도 의견을 밝혔다. 신학생들의 이런 참여를 두고 어떤 사람들은 정의를 위한 목소리를 내는 신학생들의 용기에 감사했지만 어떤 이들은 신학생들의 ‘편파성’을 걱정하기도 했다.

그러나 김 신부는, “세상 일에 대한 관심, 시대적 아픔에 대한 고민이 없는 신학생들이 사제가 되었을 때, 갑자기 관심을 가질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그는 “신학생들의 행동은 국정농단뿐 아니라 백남기 사건, 세월호 참사로부터 겪었던 아픔과 고민의 결과로 외칠 수밖에 없었던 것”이라면서, “신학생들은 결코 어린 사람들이 아니다. 한참 민감한 20대에 세상의 일들을 고민하고, 보편 가르침인 ‘사회교리’ 안에서 답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지난 2016년 ‘평화의 날 담화문’에서 말했던 “무관심의 세계화”를 빌려, “무관심은 우리가 정보와 관심을 혼동하는 데서 온다”고 지적했다. 그는, “뉴스에서 들은 정보는 관심이 아니다. 관심이 있다면 세월호 분향소를 찾고, 현장을 찾고, 가족들의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며, “신학생들이 현장에 가는 것은 관심이다. 그렇게 하라고 지시할 필요도 없다. 이미 그들 스스로 의지를 갖고 있고, 학교와 교회에 대한 신뢰가 있기 때문”이라며, 그들의 관심을 지지하겠다고 말했다.

▲ 김유정 신부는, "이 시대를 사는 사제"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강조하고, 시대를 복음의 빛으로 살피고자 하는 신학생들을 지지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현진 기자

신학생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인성’
스스로가 자기 양성의 ‘주체’임을 깨달아야

“말씀(예언직)과 성사(사제직) 그리고 ‘작은 이들’에 대한 봉사(사목직) 안에 현존하는 그리스도를 알아뵙는 사람”이라고 사제의 존재와 직분을 말하는 그는, 이런 사제를 위해서는 지성과 인성, 영성, 사목을 갖추고 균형을 잡아 가야 하는데, 이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인성’이라고 말했다.

김 신부는 사제 양성 권고에 따르면 사제 양성은 인성과 영성, 지성 그리고 사목 네 가지 차원이 있다. 최근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에 선교(복음화)와 공동체를 더했다면서, 그 모든 것이 균형을 이뤄야 하지만 우선 ‘인성’의 바탕 위에 다른 것들이 세워져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그 ‘인성’은 곧 ‘인간 교육’으로, 공동체 생활을 통해 이뤄진다고 했다.

그는 또 양성은 신학교에서의 초기 양성과 사제품 이후 평생 양성 두 가지 차원으로 이뤄진다면서, “양성의 최고 주관자는 성령이지만 그 다음 중요한 것은 ‘자기 자신’이다. 사제가 된 뒤에는 공식 양성 과정이 없지만, 스스로 평생 양성을 위한 책임이 있다는 것을 능동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사제가 십자가를 지는 사람이 되느냐, 십자가가 되느냐는 신학교부터 시작되는 평생의 양성 과정을 긍정적이고 주체적으로 받아들이느냐의 여부에 달려있다고 강조했다.

▲ 프란치스코 교황이 2014년 8월 대전신학교를 방문했을 당시 신학생들에게 남긴 글. 김 신부는 이 당부를 살기 위해 애쓰겠다고 했다. ⓒ정현진 기자

김유정 신부는 대전신학교 역시 2년째 ‘자기 양성’을 화두와 목표로 삼고 함께 논의하고 있다면서, “주어진 일과나 교과과정을 자신을 어떤 모양으로 찍어 내는 ‘틀’로만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주어진 것과 스스로의 양성 의지 사이에서 균형을 맞춰야 한다. 그러니 때로는 그 ‘틀’에 대한 문제제기도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신학생의 주체성이 존중받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교회에 대한 사랑과 섬김의 삶을 시작하면서,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각자에게 보여 주신 사랑과 섬김의 길을 따르시기를 빕니다.”(2014년 8월, 대전신학교를 방문한 프란치스코 교황의 글)

김 신부는 마지막으로 학교를 둘러보면서 발견한 프란치스코 교황의 글귀를 보며, “저 말씀대로 따를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신학생들에게, “하느님은 언제나 그 시대에 맞는 사제를 주신다”는 말과 함께, “예전보다 지금은 사제로 살아가기에 훨씬 쉽지 않은 환경인데도, 사제직에 응답했다는 것이 더 대단한 일일 것이다. 여러분이 대견스럽고, 또 사랑한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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