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 강변구] "싸우는 심리학", 김태형, 서해문집, 2014

예전 후배가 퇴사하면서 자신이 제대로 적응하지 못한 거 같다며 자책하는 말을 들었다. 나는 “아니야, 나쁜 공간에 적응하면 나쁜 사람 돼.”라고 말해 준 적이 있다. 대개 적응이란 말은 좋게만 쓰이는 것 같다. 반대로 적응하지 못한 사람들은 ‘부적응자’라는 딱지를 붙여 사회 밖으로 밀어내 버리고 만다. 그렇다면 녹조 라떼가 되어 버린 4대강에 잘(?) 적응한 큰빗이끼벌레나 실지렁이를 두고 성공했다고 하고, 숨이 막혀 죽은 뭇 생명들은 실패했다고 말해야 하나. 적응/부적응을 말하기 전에 과연 지금이 어떤 세상이고, 회사고, 학교인지를 먼저 밝혀야 한다. 저자 김태형은 “프롬에 의하면, 병든 세상에 순응하거나 적응해서 얻을 것이라곤 오직 정신병뿐이다.”라고 한다.

▲ "싸우는 심리학", 김태형, 서해문집, 2014. (표지 제공 = 서해문집)
요즘 사람들의 마음 건강은 어떨까. 페이스북 타임라인을 한번 죽 훑어보면 곳곳에 분노, 우울, 강박적 소비 성향을 띤 사람들의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아마도 한국 사람들 치고 어느 정도 마음의 병을 갖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이 드물 것이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많은 사람들이 먹고 살기 위해 현재의 대한민국 사회에 나름대로 적응해서 살아간다. 혹은 적응에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도 있다. 사회 자체가 잘못되어 있다면 거기에 적응한 사람대로 또 실패한 사람대로 마음의 병이 생기지 않을 수 없다. 그럼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는 어떤 곳일까?

한국 사회는 자본주의 국가 중에서도 극심한 경쟁과 불평등이 만연한 곳이다. 그렇지 않아도 자본주의는 그 속성상 인간의 자연스러운 본성을 제대로 발현시켜 주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을 막아야만 존속될 수 있는 시스템이다. 그렇기에 좀비 영화가 인기가 많은 것 같다. 사람들이 마치 저 좀비들처럼 산 것도 아니요, 죽은 것도 아닌 상태로 배회하고 있는 자신들의 처지를 느끼기 때문 아닐까. 이 사회에서 인간은 예민하게 살아 있으면 힘들어서 견딜 수 없고, 또 완전히 무기력해져도 쓸모가 없다. 그래서 적당하게 마치 좀비처럼(?) 일상의 동일 동선을 배회하도록 강제하는 것이다.

저자는 자본주의 사회가 타인과 사랑하며 관계 맺으려는 인간의 본성적 욕구를 억압하고 이기적 존재가 되어 무한경쟁을 벌이도록 만든다고 한다. 그래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이웃들에게 무관심하고 적대시하며 짓밟아야 한다. 이런 가르침에 순응하여 잘 적응한 사람들일수록 물질적 대상에 의존하기에 무력하다. 쾌락에 탐닉할수록 자기 혐오에서 헤어 나올 수 없다.

원래부터 사람의 운명이 이랬던 것일까? 자본주의 경쟁 사회에서 열심히 살면 미쳐 버리고, 도피하면 생존 자체가 난관에 부딪히는 얄궂은 갈림길이 언제부터 있었던 걸까? 자본주의는 농촌공동체를 해체하여 농민을 도시 노동자로 공급하면서 발달해 왔다. 좋든 싫든 농촌공동체는 오늘 하루 자신이 해야 할 일과 삶의 의미를 제공해 주었다. 내가 누구인지 혼란을 겪을 필요도 없었다. 나는 어디에 사는 누구의 아들/딸이라는 정체성으로 충분했으니까. 그러나 일자리를 찾아 도시로 몰려든 노동자들은 갑작스레 고립된 사회적 환경을 견뎌야 했다. 이때 노동자들을 연결시켜 준 것이 노동조합이다. 노동조합은 조합원 상호간의 우정 어린 연대를 바탕으로 자신의 사회 경제적 처지를 바꾸어 내고, 사회를 변혁하는 조직이었다. 또한 그렇게 변화된 사회를 통해 건강하고 새로운 인간이 탄생할 수 있었다. 노동운동의 역사는 그 길을 따라 한 발 한 발 밀고 나갔다.

지금 이 순간 고립감과 무력감에 빠져 괴로워하는 사람에게 당장 필요한 것을 무엇일까? “무력감은 근본적으로 고립을 탈피할 수 있는 힘, 즉 ‘동포와 연대할 수 있는 능력’에 의해서만 극복할 수 있다. 이런 힘이야말로 무력감에서 해방되어 세상을 변혁할 수 있게 해 주는 유일한 원천이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야 한다고 했던가. 왜? 절이 싫으면 주지를 쫓아내고 바꿔야지, 왜 스님들이 떠나야 하나. 이제는 병든 세상에 적응이 안 된다고 자책하지 말자. 싸우면서 “사람답게 사는 데 참 행복이 있다!”

 
 
강변구 
출판노동자, 파주에 있는 출판사에서 십여 년째 어린이책을 만들고 있습니다. 
올해 3살 난 딸과 함께 지내는 새내기 아빠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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