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의 '땅과 자유', 권정생 2주기 추모의 밤 열어

▲ 대부분이 '땅과 자유' 멤버들인 참석자들은 조촐한 음식을 마련해놓고 권정생처럼 행복한 반란을 조용히 꿈꾸고 있다.

지난 5월 15일 대구 범어동에 위치한 어느 숯불갈비집 2층에 있는 공간00(구 녹색평론사 사무실)에서 아동문학가 권정생 선생의 2주기를 추모하는 작은 모임이 열렸다. '땅과 자유'라는 인터넷 카페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이들이 모여서 권정생 선생의 작품을 나눠 읽는 낭독회를 열고, 평소 권정생 씨와 가까이 지내면서 겪은 이야기들을 나눴다.

이 모임을 주선한 정수근 씨는 2007년 5월 17일 이승을 떠난 권정생 씨를 기억하며 "그분이 살아오신 삶을 생각하면 먼저 눈시울부터 붉어지는 것은 평생을 가난하게 살며 항상 하찮은 존재들과 함께했던 한 ‘진실한 인간’의 표상을 보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시작에 앞서 이들은 권정생의 작품 <강아지똥>을 소재로 한 애니메이션을 감상했는데, 처지를 슬퍼하며 울고 있는 강아지똥에게 수레에서 떨어진 흙덩이가 "하느님은 쓸모없는 것은 아무것도 만드시지 않았다"고 위로하는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정수근 씨는 이 영화가 <길>이나 <파이란>이라는 영화를 떠올리게 한다고 했는데, 가련한 인생들이 희망을 찾아서 아름답게 분투하는 모습을 본 것 같다.

안동에서 교편을 잡으면서 권정생 씨와 친밀한 관계를 나누었던 김용락 교수는, 이 애니메이션이 고증과 사실에 충실하지 않다고 아쉬워했다. 마을을 둘러싼 산도 백두산처럼 크고, 작품이 만들어진 1961년에는 달구지 모습도 사실과 다르고, 안동에 전등도 들어오지 않았다고 한다. 한편 최근 <랑랑별 때때롱> 출간으로 가진 북리뷰에서 어떤 사람이 "동화책을 쓸 때마다 선생이 아이들을 위해 이 책을 다 쓸 때까지 죽지 않게 해달라고 하느님께 빌었다고 하지만, 선생은 그런 분이 아니다. 한때 선생이 하느님께 매달렸던 시절이 있었지만 이오덕, 전우익 선생 등을 만나고 나서는 교회도 안 다니시던 분"이라는 것이다. 김용락 교수에 따르면, 이미 권정생 씨는 종교에 걸림이 없이 가련한 사람에게 주목했다는 것이다.

<우리들의 하느님>을 쓰고 나서도 개신교에선 '하느님'이란 말을 썼다고 비난하면서 책을 사보지 않았고, 오히려 가톨릭 수녀들이 그 책을 많이 사서 읽었다고 한다. 또한 권정생 씨 사후에 일직교회에서는 없던 종을 새로 사서 달았다고 하면서, 유명세를 타고 이러는 것은 정직하지 못한 태도라고 비판했다.

▲ 시를 읽고, 권정생 선생에 대한 경험을 나누면서 환하게 웃고 있다.

김용락 교수는 자신이 추모시로 쓴 '너 왜 그렇게 사노?'를 낭독했다. 

권정생 어린이문화재단
현판식 한다는 연락받고
강의 급 휴강 하고
안동 시내 유품전시장까지 내리 달렸다

그 사이 못 참고
학생들 학교 뒷산 올라  담배 피우다

3월 이른 봄 산에 산불 번져
소방차 10대 헬기 5대가 뜨는 생난리가 났단다

이 소식 식장에서 폰으로 전해듣고
황망히 떠오른 권정생 선생님 생각

너 그렇게 살지 마라
너 왜 그렇게 사노?

한편 이 자리에 참석한 유창렬 씨는 "어느 현자가 '여러분은 이 사회에서 얼마나 더 위험한 사람이 되었습니까?'라고 물었다는데, 우리가 얼마나 불온한지가 중요하다"면서 권정생 씨는 이 체제에 정말 위험한 사람이었다고 말했다. 현이동훈 씨는 <도토리예배당 종지기 아저씨>를 읽고와서 평등한 삶에 대해 이야기했고, 어느 참석자는 <몽실언니>를 이야기하며 "위로받아야 할 사람에게 말은 위로가 안 된다. 우리가 그들처럼 불행해지거나 그들을 불행에서 건져내야 한다."는 말을 끄집어 냈다. 또한 이 <몽실언니>가 1992년에 MBC 드라마로 방영된 것을 기억해 내기도 했다. 

학교에서 교편을 잡고 있다는 한 참석자는 <하느님의 눈물>에 실린 '아기소나무'란 작품을 읽어주었다. 세상에서 제일 착하게 해주겠다는 달님아줌마의 말에 "보통으로 착하면 된다"고 하던 정말 착한 아기소나무이야기다. <어머니 사시는 그 나라에서는>을 읽어준 참석자도 있었는데, 긴 낭독에도 사람들은 숙연히 들었다.

세상의 어머니는 모두가 그렇게 살다 가시는 걸까.
한평생
기다리시며
외로우시며
안타깝게……

배고프셨던 어머니
추우셨던 어머니
고되게 일만 하신 어머니
진눈깨비 내리던 들판 산고갯길
바람도 드세게 휘몰아치던 한평생

그렇게 어머니는 영원히 가셨다.
먼 곳 이승에다
아들 딸 모두 흩어 두고 가셨다.
버들고리짝에
하얀 은비녀 든 무명 주머니도 그냥 두시고
기워서 접어 두신 버선도 신지 않으시고
어머니는 혼자 훌훌 가셨다.

어머니 가실 때
은하수 강물은 얼지 않았을까
차가워서 어떻게
어머니는 강물을 건너셨을까
어머니 가신 거기엔 눈이 내리지 않는 걸까
찬바람도 씽씽 불지 않는 걸까

그들이 읽은 시와 동화에는 모두 아픔과 작은 것에 대한 애잔한 사랑이 듬뿍 담겨 있었다. 장애를 가진 김운용(스테파노)씨는 서툰 솜씨였지만 마음을 담아 '청계천8가'라는 노래를 들려주었다. 정수근 씨는 자리를 마무리하면서 "좋은 책을 보고 필자를 만나면 실망할 때가 많다. 권정생 선생은 두 번 뵙고 왔는데, 글을 보는 것보다 느낌이 더 좋았다"고 했다. 마침 옆 사무실에 지율 스님이 오셔서 막판에 잠깐 합석했다.

▲ 청계천 8가를 부르는 김운영 씨
그들이 읽은 시와 동화에는 모두 아픔과 작은 것에 대한 애잔한 사랑이 듬뿍 담겨 있었다. 김운용(스테파노)씨는 서툰 솜씨였지만 마음을 담아 '청계천8가'라는 노래를 들려주었다. 고성준 씨는 자리를 마무리하면서 "좋은 책을 보고 필자를 만나면 실망할 때가 많다. 권정생 선생은 두 번 뵙고 왔는데, 글을 보는 것보다 느낌이 더 좋았다"고 했다. 마침 옆 사무실에 지율 스님이 오셔서 막판에 잠깐 합석했다.

천성산 생명살리기에 나서 단식을 했던 지율 스님은 건강해 보였다. 지율스님은 권정생 씨를 기억하며 "단식을 끝내고 조탑동에 찾아갔을 때, 권선생이 '위험해 보인다. 건강에 신경써라'고 하던데, 제가 보니 선생이 더 위험해 보이더라고요"하며 웃음을 지었다. 그 만남 이후 2년 뒤에 권정생 씨가 이승을 떠났는데, 지율 스님은 "먼저 가서 다행이지. 그때 나도 따라 갔어야 하는데, 그러면 4대강 개발이고 뭐고 안 봐도 되는데..."하며 말끝을 흐렸다. 요즘 지율 스님은 2달째 자전거 여행 1달째 도보로 낙동강 유역을 돌며 사진을 찍고 있다고 한다. 지율 스님은 현재 50여건의 소송을 걸고 있는데, 천성산 단식 당시에 시비를 걸었던 정부당국자나 언론사를 상대로 한 것이다. 최근 법원에서는 조선일보에 화해권고결정을 내어 명예훼손을 이유로 '정정보도'하도록 했다.    

▲ 지율스님, 맑고 건강한 눈매가 단식 때의 핍진한 모습을 단단히 극복했다.

이번 낭독회를 준비한 '땅과 자유'는 "모심의 자세로, 살림의 길을" 찾는 젊은이들의 모임이다. <녹색평론> 평론을 읽고, 이반 일리히를 연구하고, 땅을 상품으로 전락시킨 세상을 전복하는 꿈을 꾸면서, 최근엔 농사도 배우면서 공동체를 갈망하는 사람들이다. 작년 5월엔 권정생 생가를 찾아갔는데, 올해는 이렇게 낭독회를 가지며 권정생을 생각하며 어떻게 살 것인지 고민하는 자리를 마련한 것이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
 

아기소나무-권정생
이 글은 권정생의 1984년 동화집 <하느님의 눈물>에 수록되었던 동화입니다. 

동산에 떠오른 달님은 만져질 듯이 가까이에 있었습니다.
오늘은 팔월 한가위, 1년 중 가장 커다란 달님이기 때문입니다.
희고 둥근 달님의 얼굴이 온 세상을 아름답게 비추었습니다.

"달님 아줌마! 달님 아줌마!"
산등성이 외딴 봉우리에서 작지만
또랑또랑한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어엉, 누구니?"
달님은 소리나는 쪽으로 눈과 귀를 한꺼번에 돌렸습니다.
"저예요. 여잖아요!"
달님이 자세히 내려다보니, 조그만 소리로 부른건 바로 아기소나무였습니다.
세 살짜리 아기소나무는 봉우리꼭대기에 팔을 번쩍 치켜들고 서 있었습니다.
"오오! 너였구나. 그래 나를 왜 불렀니?"
"저. 말예요."
"으응."
"지난 여름, 억수같이 퍼붓던 물 누가 쉬한 거에요?"
"....?"
"아줌마가 눈 거예요? 아니면 해님 아저씨가 눈 거에요?"
달님은 금방 얼굴이 빨개지고 말았습니다.
"아기소나무야, 그건 쉬한 게 아니다."
"에그 거짓말. 아줌마 얼굴이 빨개진 걸 보니 달님이 쉬했군요. 그렇죠?"
"아니야, 그건 오줌이 아니고 '비'라고 하는 거야. 온 세상의 나무들이 잘 자라라고 하느님이 내려 주시는 거야."
"그럼, 그때 시커먼 포장은 왜 잔뜩 가려 놓았어요? 누가 볼까봐 궁둥이 감추느라 그랬죠?"
"포장이 아니고 그게 바로 '구름'이라는 물통이야. 여름엔 날씨가 덥고 농사철이기 때문에 물이 굉장히 많아야 되거든. 시원하고 달짝한 비를 너도 실컷 마시고 컸잖니?"
달님은 진땀이 나도록 차근차근 들려 주었습니다. 아기소나무는 약간 알아들은 듯했습니다.
"참말 그랬어요. 시원하고 달짝한 걸 보니 쉬는 아닌 것 같아요."
"아닌 것 같은 게 아니라 정말 아니다."
아기소나무는 입을 다물었습니다. 자꾸 따지고 들면 버릇이 없을 테니까요. 달님은 그런 아기소나무가 맘에 들었습니다. 무명베처럼 희고 질긴 달빛을 쏟아 비춰 주었습니다.
"아기소나무야, 너는 이담에 키가 얼마만큼 크고 싶니?" 달님이 물었습니다.
"달님한테 내 손이 닿도록 크고 싶어요."
"어머나! 그만치 커서 무얼 하려고 그러니?"
"언젠가 바람이 내게 가르쳐 줬어요. 저어기 산골짜기랑, 시냇가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모두 슬픈 사람들이래요. 아들들은 군인으로 뽑혀 가고, 딸들은 도시의 공장으로 돈벌이 가고....."
"쯧쯧, 안됐구나. 정말....."
"그래서 할머니랑 할아버지들은 달님만 쳐다보고 '저기 저기 저 달속에 초가삼간 집 짓고 살고 싶어라.' 한데요."
"정말 그렇겠구나."
"그러니까 내가 하늘만큼 키가 자라서 튼튼해지면, 그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나를 베다가 초가집 짓고 살으시라고요."
아기소나무는 가슴에 두 손을 모아 쥐면서 정성껏 말했습니다.
달님은 갑자기 목이 메려고 해서 억지로 참았습니다.
"아기소나무야, 고맙다."
"달님 아줌마도 저 아래 산 밑, 한국의 할아버지랑 할머니들이 불쌍하세요?"
"그래, 할아버지 할머니들뿐만도 아니지. 군인으로 간 아들들도, 공장으로 간 딸들도, 한국에 살고 있는 모두가 불쌍하지."
"그럼, 내 키가 얼른얼른 자라게 도와 주세요."
"도와 주고 말고지. 하느님도 네가 제일 착하다고 하실 거야."
"아니에요. 제일로 착한 건 싫어요. 보통으로 착하면 되어요."
"그래그래, 아기소나무야."
달님은 한 번 더 목이 메려는 것을 꾹 참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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