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의 '땅과 자유', 권정생 2주기 추모의 밤 열어
지난 5월 15일 대구 범어동에 위치한 어느 숯불갈비집 2층에 있는 공간00(구 녹색평론사 사무실)에서 아동문학가 권정생 선생의 2주기를 추모하는 작은 모임이 열렸다. '땅과 자유'라는 인터넷 카페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이들이 모여서 권정생 선생의 작품을 나눠 읽는 낭독회를 열고, 평소 권정생 씨와 가까이 지내면서 겪은 이야기들을 나눴다.
이 모임을 주선한 정수근 씨는 2007년 5월 17일 이승을 떠난 권정생 씨를 기억하며 "그분이 살아오신 삶을 생각하면 먼저 눈시울부터 붉어지는 것은 평생을 가난하게 살며 항상 하찮은 존재들과 함께했던 한 ‘진실한 인간’의 표상을 보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시작에 앞서 이들은 권정생의 작품 <강아지똥>을 소재로 한 애니메이션을 감상했는데, 처지를 슬퍼하며 울고 있는 강아지똥에게 수레에서 떨어진 흙덩이가 "하느님은 쓸모없는 것은 아무것도 만드시지 않았다"고 위로하는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정수근 씨는 이 영화가 <길>이나 <파이란>이라는 영화를 떠올리게 한다고 했는데, 가련한 인생들이 희망을 찾아서 아름답게 분투하는 모습을 본 것 같다.
안동에서 교편을 잡으면서 권정생 씨와 친밀한 관계를 나누었던 김용락 교수는, 이 애니메이션이 고증과 사실에 충실하지 않다고 아쉬워했다. 마을을 둘러싼 산도 백두산처럼 크고, 작품이 만들어진 1961년에는 달구지 모습도 사실과 다르고, 안동에 전등도 들어오지 않았다고 한다. 한편 최근 <랑랑별 때때롱> 출간으로 가진 북리뷰에서 어떤 사람이 "동화책을 쓸 때마다 선생이 아이들을 위해 이 책을 다 쓸 때까지 죽지 않게 해달라고 하느님께 빌었다고 하지만, 선생은 그런 분이 아니다. 한때 선생이 하느님께 매달렸던 시절이 있었지만 이오덕, 전우익 선생 등을 만나고 나서는 교회도 안 다니시던 분"이라는 것이다. 김용락 교수에 따르면, 이미 권정생 씨는 종교에 걸림이 없이 가련한 사람에게 주목했다는 것이다.
<우리들의 하느님>을 쓰고 나서도 개신교에선 '하느님'이란 말을 썼다고 비난하면서 책을 사보지 않았고, 오히려 가톨릭 수녀들이 그 책을 많이 사서 읽었다고 한다. 또한 권정생 씨 사후에 일직교회에서는 없던 종을 새로 사서 달았다고 하면서, 유명세를 타고 이러는 것은 정직하지 못한 태도라고 비판했다.
김용락 교수는 자신이 추모시로 쓴 '너 왜 그렇게 사노?'를 낭독했다.
권정생 어린이문화재단
현판식 한다는 연락받고
강의 급 휴강 하고
안동 시내 유품전시장까지 내리 달렸다
그 사이 못 참고
학생들 학교 뒷산 올라 담배 피우다
3월 이른 봄 산에 산불 번져
소방차 10대 헬기 5대가 뜨는 생난리가 났단다
이 소식 식장에서 폰으로 전해듣고
황망히 떠오른 권정생 선생님 생각
너 그렇게 살지 마라
너 왜 그렇게 사노?
한편 이 자리에 참석한 유창렬 씨는 "어느 현자가 '여러분은 이 사회에서 얼마나 더 위험한 사람이 되었습니까?'라고 물었다는데, 우리가 얼마나 불온한지가 중요하다"면서 권정생 씨는 이 체제에 정말 위험한 사람이었다고 말했다. 현이동훈 씨는 <도토리예배당 종지기 아저씨>를 읽고와서 평등한 삶에 대해 이야기했고, 어느 참석자는 <몽실언니>를 이야기하며 "위로받아야 할 사람에게 말은 위로가 안 된다. 우리가 그들처럼 불행해지거나 그들을 불행에서 건져내야 한다."는 말을 끄집어 냈다. 또한 이 <몽실언니>가 1992년에 MBC 드라마로 방영된 것을 기억해 내기도 했다.
학교에서 교편을 잡고 있다는 한 참석자는 <하느님의 눈물>에 실린 '아기소나무'란 작품을 읽어주었다. 세상에서 제일 착하게 해주겠다는 달님아줌마의 말에 "보통으로 착하면 된다"고 하던 정말 착한 아기소나무이야기다. <어머니 사시는 그 나라에서는>을 읽어준 참석자도 있었는데, 긴 낭독에도 사람들은 숙연히 들었다.
세상의 어머니는 모두가 그렇게 살다 가시는 걸까.
한평생
기다리시며
외로우시며
안타깝게……
추우셨던 어머니
고되게 일만 하신 어머니
진눈깨비 내리던 들판 산고갯길
바람도 드세게 휘몰아치던 한평생
그렇게 어머니는 영원히 가셨다.
먼 곳 이승에다
아들 딸 모두 흩어 두고 가셨다.
버들고리짝에
하얀 은비녀 든 무명 주머니도 그냥 두시고
기워서 접어 두신 버선도 신지 않으시고
어머니는 혼자 훌훌 가셨다.
어머니 가실 때
은하수 강물은 얼지 않았을까
차가워서 어떻게
어머니는 강물을 건너셨을까
어머니 가신 거기엔 눈이 내리지 않는 걸까
찬바람도 씽씽 불지 않는 걸까
그들이 읽은 시와 동화에는 모두 아픔과 작은 것에 대한 애잔한 사랑이 듬뿍 담겨 있었다. 장애를 가진 김운용(스테파노)씨는 서툰 솜씨였지만 마음을 담아 '청계천8가'라는 노래를 들려주었다. 정수근 씨는 자리를 마무리하면서 "좋은 책을 보고 필자를 만나면 실망할 때가 많다. 권정생 선생은 두 번 뵙고 왔는데, 글을 보는 것보다 느낌이 더 좋았다"고 했다. 마침 옆 사무실에 지율 스님이 오셔서 막판에 잠깐 합석했다. 그들이 읽은 시와 동화에는 모두 아픔과 작은 것에 대한 애잔한 사랑이 듬뿍 담겨 있었다. 김운용(스테파노)씨는 서툰 솜씨였지만 마음을 담아 '청계천8가'라는 노래를 들려주었다. 고성준 씨는 자리를 마무리하면서 "좋은 책을 보고 필자를 만나면 실망할 때가 많다. 권정생 선생은 두 번 뵙고 왔는데, 글을 보는 것보다 느낌이 더 좋았다"고 했다. 마침 옆 사무실에 지율 스님이 오셔서 막판에 잠깐 합석했다.
천성산 생명살리기에 나서 단식을 했던 지율 스님은 건강해 보였다. 지율스님은 권정생 씨를 기억하며 "단식을 끝내고 조탑동에 찾아갔을 때, 권선생이 '위험해 보인다. 건강에 신경써라'고 하던데, 제가 보니 선생이 더 위험해 보이더라고요"하며 웃음을 지었다. 그 만남 이후 2년 뒤에 권정생 씨가 이승을 떠났는데, 지율 스님은 "먼저 가서 다행이지. 그때 나도 따라 갔어야 하는데, 그러면 4대강 개발이고 뭐고 안 봐도 되는데..."하며 말끝을 흐렸다. 요즘 지율 스님은 2달째 자전거 여행 1달째 도보로 낙동강 유역을 돌며 사진을 찍고 있다고 한다. 지율 스님은 현재 50여건의 소송을 걸고 있는데, 천성산 단식 당시에 시비를 걸었던 정부당국자나 언론사를 상대로 한 것이다. 최근 법원에서는 조선일보에 화해권고결정을 내어 명예훼손을 이유로 '정정보도'하도록 했다.
이번 낭독회를 준비한 '땅과 자유'는 "모심의 자세로, 살림의 길을" 찾는 젊은이들의 모임이다. <녹색평론> 평론을 읽고, 이반 일리히를 연구하고, 땅을 상품으로 전락시킨 세상을 전복하는 꿈을 꾸면서, 최근엔 농사도 배우면서 공동체를 갈망하는 사람들이다. 작년 5월엔 권정생 생가를 찾아갔는데, 올해는 이렇게 낭독회를 가지며 권정생을 생각하며 어떻게 살 것인지 고민하는 자리를 마련한 것이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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