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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풍랑을 두려워하지 말라!"[특별기고 - 김용태] 적폐 청산, 혼란은 필요하다
김용태  |  editor@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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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3.16  16:5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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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이상의 혼란과 갈등은 안 됩니다. 이제는 국민 대통합의 새 시대를 열어야 합니다. 서로 용서하고 화합하면서 일치의 길을 모색해 나갑시다.”

대통령 탄핵 이후에 여기저기서 슬슬 들려오는 목소리들이다. 굉장히 그럴듯해 보이고 당연한 말처럼 들린다. 보통 혼란과 갈등은 나쁜 거고, 용서와 화합과 일치 이런 것은 좋은 거니까 맞는 말 같다.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지금 저 말을 그대로 받아들이기에는 왠지 많이 찜찜하다. 왜 그럴까?

사실 저 말마디 자체야 별 문제가 없어 보인다. 하지만 저 말이 지금 이 시점에서 갖게 되는 그 상황적 의미가 사실 찜찜하다. 이 시점에서 저 말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게 되면 어떤 의미가 파생되어 나오는가? 이제 우리가 용서하고 화합하고 일치해야 할 대상에는 그동안 우리가 한마음으로 청산하고자 했던 그 적폐의 대상들까지도 포함될 수 있는 여지가 생기는 것이다. 또 한편으로는, 앞으로 적폐청산을 외치는 사람들은 혼란과 갈등을 부추기는 자로 간주될 수 있는 여지도 생겨 버린다. 대통령 탄핵이라는 민주주의 혁명을 이끌었던 저 촛불의 함성이 자칫 앞으로는 혼란과 갈등의 요소로 간주될 수도 있다. 그 의도가 어떻든 간에, 괜찮아 보이는 저 말마디 속에 이처럼 커다란 두 가지 함정이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할 수 있다.
“아무리 그래도 혼란과 갈등, 분열 이런 것은 차라리 없는 게 좋은 것 아니야?”
하지만 과연 그런 걸까? 정말로 더 이상의 혼란과 갈등은 무의미한 것이고, 앞으로 있어서는 안 되는 그런 것인가?

박근혜 대통령 탄핵은 이 땅의 적폐청산과 공동선 회복을 위한 긴 여정에서 이제 겨우 의미 있는 한 걸음을 뗀 것에 불과하다. 그것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아직도 밝히고 허물고 치워야 할 것들이 너무나 많다. 청산되지 않은 친일의 잔재들, 식민과 독재의 시대를 거치면서 세뇌된 잘못된 가치관들, 그 속에서 서식해 온 부정하고 부패한 권력들, 그리고 그들이 저지른 온갖 악행들, 그 밖에도 수를 헤아릴 수 없는 온갖 적폐들, 그 모든 것들을 철저히 드러내어 허물고 치워 버려야 한다. 그런 다음에야 비로소 이 땅을 더 나은 세상으로 만들 수 있는 온갖 좋은 것들을 바로 세울 수 있다.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 새 옷에서 조각을 찢어 내어 헌 옷에 대고 꿰맬 수는 없다. 청산되지 않은 적폐들 위에 다시 뭔가를 세운다는 것은 결국 모든 것을 허사로 돌리는 것에 불과하다. 따라서 철저하게 허물고 철저하게 다시 세워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은 필연적으로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다.

   
▲ 박근혜 탄핵은 이 땅의 적폐청산과 공동선 회복을 위한 긴 여정에서 이제 겨우 의미 있는 한 걸음을 뗀 것에 불과하다. (이미지 출처 = flickr.com)

이 시대의 모든 적폐들을 청산해 나가는 일은 결코 순탄한 작업이 아니다. 평화롭기보다는 오히려 혼란스럽다. 안정적이기보다는 불편하고 성가시고 어렵다. 일치와 화합이기보다는 갈등과 분열로 보인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혼란의 과정을 생략할 수는 없다. 우리는 오히려 이 혼란의 과정을 적극적으로 선택해 나가야 한다. 땅을 갈아엎지 않고서 어찌 새로운 씨앗을 뿌릴 수 있겠는가! 따라서 허물어져야 할 것들이 완전히 허물어질 때까지 우리는 계속 더 혼란스러워야 한다.

사실 이 나라가 이토록 망가진 이유는 마땅한 혼란의 과정을 거부한 채, 소요 없는 안정과 반성 없는 봉합만을 추구한 때문이라 할 수 있다. “가만히 있어라!” 이 말은 수백 명의 목숨을 앗아 간 저 세월호의 끔찍한 선내 방송만이 아니다. 모두가 더불어 살아가는 더 나은 세상을 위한 몸부림을 파괴적이고 무질서한 범죄행위로 규정하고 차단하고 금지시켜 온 이 땅의 권력자들이 늘 내뱉어 온 말이다. 그리고 이 말이 지금 침몰 직전에까지 이른 대한민국이라는 배 위에 탄 우리 모두에게 또 다시 울려 퍼지고 있는 것이다. “더 이상의 혼란과 갈등은 안 됩니다. 지난 일은 다 잊고 우리 새롭게 시작합시다.”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요구를 단호히 거부해야 한다. 우리는 더 혼란스러워야 한다. 그래야 우리는 새롭게 다시 태어날 수 있다. 창조는 혼돈 속에서 이루어지고, 참된 회심은 부서지고 꺾인 마음속에서 자라며, 부활은 십자가를 통해 실현되는 것이다.

죄로 물든 세상은 노아의 홍수라는 대혼란을 거친 뒤에 비로소 새로운 세상으로 거듭나고, 이집트에서 종살이를 했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시나이 광야의 혼란과 시련을 거친 뒤에야 비로소 파라오의 종이 아닌 하느님의 백성으로 새롭게 태어나게 된다.

만일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시나이 광야의 여정이 생략됐더라면 그들은 틀림없이 가나안 땅에 제2의 이집트를 건설했을 것이다. 그들이 그토록 싫어서 도망쳐 나왔던 그 모습으로 다시 돌아가 버리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이 시대 우리가 적폐청산의 과정 안에서 발생할 수밖에 없는 혼란과 갈등을 피해 버린다면 우리는 또 다시 부패한 권력의 종살이로 돌아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십자가라는 커다란 혼란과 갈등과 분열을 앞에 두고 베드로는 예수님을 막아선다. “맙소사, 주님! 그런 일은 주님께 결코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마태 16,22) 이러한 베드로에게 예수님은 말씀하신다. “사탄아, 내게서 물러가라. 너는 나에게 걸림돌이다. 너는 하느님의 일은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구나!”(마태 16,23) 과연 하느님의 뜻에서 멀리 있는 이 땅의 어두운 영들은 끊임없이 속삭인다. “십자가는 무의미하다. 더 이상의 혼란은 피하라!” 이는 거짓 예언자들의 입을 통해 세상에 울려 퍼지는 메시지이기도 하다.

   
▲ 예수는 세상에 불을 지르러 왔다고 말했다. (이미지 출처 = Pixabay)

그러나 예수님은 말씀하신다. “나는 세상에 불을 지르러 왔다. 그 불이 이미 타올랐으면 얼마나 좋으랴? 내가 세상에 평화를 주러 왔다고 생각하느냐? 아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오히려 분열을 일으키러 왔다. 이제부터는 한 집안의 다섯 식구가 서로 갈라져, 세 사람이 두 사람에게 맞서고 두 사람이 세 사람에게 맞설 것이다.”(루카 12,49.51-52)

이 시대 교회의 모습은 혼란을 피하라며 예수님을 막아서는 베드로가 아니라 세상에 불을 지르고 분열을 일으키는 예수님의 모습과 같아야 한다. 적당한 중립이 아니라 복음적 선명함으로 더욱 환하게 불타올라야 한다. “내 편에 서지 않는 자는 나를 반대하는 자고, 나와 함께 모아들이지 않는 자는 흩어 버리는 자다.”(루카 11,23)라고 말씀하신 예수님처럼, 교회는 이 시대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지, 무엇이 선하고 무엇이 악한지, 무엇이 하느님의 뜻이고 무엇이 하느님의 뜻과 멀리 있는 것인지를 선명하게 드러내는 거대한 횃불과 같아야 한다. 그러면서 이 험난한 세파 속에서 살아가는 모든 이들에게 ‘더 이상의 풍랑은 있어서는 안 된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 어떤 풍랑이 와도 두려워하지 말라’고 선포해야 한다. 우리가 바라봐야 할 것은, 우리를 집어삼킬 듯이 닥쳐오는 저 험난한 풍랑이 아니라 우리 곁에서 우리와 함께 계시는 예수님이다. 영광스러운 변모의 타볼 산에서 모세도 사라지고 엘리야도 사라지고 영광의 빛도 다 사라져도 결코 사라지지 않고 내 곁에 남아 계신 바로 그 예수님이다.

마찬가지로 지금 이 시대에 우리가 바라봐야 할 것은, 당장의 혼란과 갈등과 분열이 아니라 우리가 추구하고 지켜 나가야 할 저 소중한 가치들, 인간을 진정 인간답게 만들어 주고 세상을 보다 더 아름답게 만들어 주는 저 참다운 가치들이란 사실을 교회는 이 세상에 선포해 나가야 한다. 이것이 이 시대에 우리 교회가 세상에 던져 주어야 할 기쁨과 희망의 메시지리라!

주님께서 우리 모두에게 말씀하신다. “용기를 내어라. 나다. 두려워하지 마라!”(마태 14,27) 이 말씀 받들어 우리 모두가 다 같이 마음속에 작은 촛불 하나 밝혀 두고서 두려움 떨쳐 버리고 참된 부활을 향한 저 혼란 속으로 기꺼이 뛰어들 수만 있다면 우리가 염원하는 참 세상은 반드시 오고야 말 것이다.

   
 
김용태
신부(마태오)
천주교 대전교구 도마동 성당 주임, 대전교구 정의평화위원회 위원장
(박정희와 박근혜를 진심으로 좋아하는 노인들이 비교적 많은 본당에서 사목하면서 열심히 그분들을 복음화시키고자 노력하고 있음~^^. 창조는 혼돈 속에서 오고, 부활은 십자가에서 오는 것이라서 하느님 보시기 좋은 공동체로 거듭나기 위해 혼란과 갈등을 적극적으로 선택하고 있는 중. 많이 좋아지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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