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남기부터 이어진 투쟁, 최순실로 불붙어

박근혜 대통령을 중심으로 한 국정문란 사건이 드러나고, 결국 헌정 사상 첫 번째 대통령 파면 결정이 나오기까지 천주교 신자들의 행동과 의견 제시도 꾸준히 계속돼 왔다.

언론을 통해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본격 알려지기 전인, 2016년 10월 10일 서울 광화문광장에는 1000명 넘는 신자들이 모여 ‘불의한 정권의 회개와 민중을 위로하는 시국미사’를 봉헌했다.

이 미사는 경찰의 물대포 진압으로 쓰러진 백남기 씨가 투병 끝에 숨진 사건에 대해 정부의 책임을 묻는 성격이 강했지만, 이미 이날 발표된 성명에서 이들은 “최순실 권력형 비리”를 지적했으며 대통령에게 “책임을 지고 물러나라”고 요구했다.

이어 10월 중순부터 국정농단의 실체가 드러나기 시작하자 가톨릭교회의 가장 눈에 띄는 반응은 성명 발표와 시국미사였다.

10월 28일 가톨릭대 등 천주교계 대학교와 대신학교에서 시작된 시국선언은 연말까지 계속됐다. 11월 4일 박 대통령의 두 번째 사과 대국민 담화가 나온 뒤에는 천주교정의구현 전국사제단을 시작으로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더 커졌다. 대통령의 사과에 진정성이 없고, 그 뒤에 나온 행동을 볼 때 권력을 포기할 생각이 없다고 본 것이다.

시국미사는 전국 곳곳에서 이어졌다. 11월 4일에는 광화문광장에서 서울대교구 가톨릭대학생연합회가 시국미사를 봉헌하며 대통령 사임을 촉구했고, 이러한 미사는 광주, 대전, 마산, 부산, 수원, 안동, 원주, 인천, 전주, 청주, 춘천 등 전국 각 교구의 중심지뿐 아니라 로마에서도 봉헌됐다.

정동 프란치스코 교육회관과 수원교구 비전동 성당, 전주교구 호성만수 성당 등 대통령 사퇴를 요구하는 현수막을 내건 교회 시설도 있었다. 정의평화민주 가톨릭행동은 1월 하순부터 ‘참 민주주의를 위한 기도운동’을 벌였다.

▲ 수원교구 비전동 성당(왼쪽)과 전주교구 호성만수 성당에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사진 제공 = 최재철, 송년홍 신부)

대통령의 퇴진 여부를 놓고 다투는 사안의 엄중함 때문에 주교회의의 입장 표명도 점점 수위가 높아졌다.

지난해 11월 1일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는 시국선언문을 발표해 “대통령은 자신의 과오를 뉘우치고 민주주의를 회복하려는 진지한 자세로 국민의 뜻을 존중하여 책임 있는 결단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으며, 관련자들에 대한 엄정하고 투명한 수사, 공명정대한 재판을 요청했다. 한편으로 정평위는 교회 자신이 “그동안 예언자직을 온전히 수행해 왔는지를 겸허히 반성”한다며, 신자들이 현 사태에 관심을 갖고 참여하고 국정 정상화를 위해 기도해야 한다고 밝혔다.

탄핵 소추안의 국회 표결을 앞둔 12월 7일에는 이례적으로 주교회의 사회주교위원회가 ‘한국 천주교회의 입장’을 내놓았다. 사회주교위는 “대통령과 소수 측근의 국정농단 사태로 국민 주권과 법치주의 원칙이 유린되는 반헌법적이고 반민주적인 현 상황을 깊이 우려한다”며, “국민의 대통령 퇴진 요구는 정당하며, 국회는 당리 당략보다 국가와 국민을 걱정하라”고 입장을 밝혔다.

그리고 탄핵심판 선고를 하루 앞둔 3월 9일 주교회의 의장 김희중 대주교는 호소문을 발표해 “우리 모두 헌법재판소의 판결을 화해와 일치의 자세로 수용하자”고 촉구했다. 김 대주교는 “탄핵을 둘러싼 첨예한 대립과 갈등”, “민심으로 위장하여 사법 근간을 흔드는 부끄러운 폭력”을 걱정하며 “건국 이래 최대의 위기는 국민의 냉철하고 성숙한 민주주의 의식으로만 극복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물론 한국 천주교 신자 모두가 한목소리로 대통령 퇴진을 원한 것은 아니다. 대한민국수호천주교인모임(대수천) 운영위원인 서석구 변호사(빈첸시오)는 대통령 대리인단에 합류해 탄핵심판 변론에 참여했으며, 여형구 신부(서울대교구 원로사목자)는 2월 11일 탄핵 반대 집회에서 발언했다.

▲ 2016년 11월 7일 광주 남동 5.18기념성당에서 시국미사 봉헌 뒤 거리에 나선 신자들. ⓒ정현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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